관음마을 풍경. 마을이 단아하고 깨끗하다 |
지난 6월 중순, 곡성군 오산면 관음마을에서 열린 ‘한복 입고 이팔청춘 마을 패션쇼’에서다. 패션쇼에는 서울에서 유학 온 학생의 학부모와 청년 활동가들이 도우미로 참여했다. 어르신들의 옷과 머리의 매무새를 만져주고, 화장도 해줬다. 어르신들은 ‘젊은 날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며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멈춤 줄 몰랐다.
“처음엔 어르신들이 손사래를 쳤어요. 다 늙어서 무슨 패션쇼냐고? 근데, 한복을 가져와서 회관에 걸었더니…. 아따 이쁜 거 하시면서, 서로 입어 보겠다고 줄을 섰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르신들이 한복을 골라 입어 보면서 좋아하셨어요. 이 나이에 패션쇼를 해본다면서, 모두가 깔깔깔 웃으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박오남 관음마을 이장의 말이다. 패션쇼를 도울 젊은이들을 불러오고, 간단한 간식거리를 준비한 것도 이장이었다. 패션쇼 때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어르신들한테 나눠주고, 단체사진을 크게 뽑아서 마을회관에 거는 일도 이장이 할 예정이다.
한복입고 이팔청춘 패션쇼. 패션쇼는 관음마을 회관 앞에서 열렸다 |
산골에서 패션쇼가 열리게 된 배경을 물은 데 대한 박 이장의 대답이다.
패션쇼뿐 아니다. 작년 가을엔 산골에서 ‘무시?배추 경진대회’도 열었다. 집집마다 수확한 무와 배추를 갖고 나와 자웅을 겨뤘다. 상품도 박 이장이 마련했다. 행복한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주민들이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 일 미루고 달려드는 박 이장이다.
청이마을 흰머리소녀 갤러리. 마을회관 벽면을 활용해 만들었다 |
갤러리 한쪽에 ‘관음마을 규약’도 걸려 있다. 웃으면서 인사하기(반갑습니다, 반갑소), 상대방 말을 끝까지 들어주기(아∼ 그렇구나), 쓰레기가 보이면 무조건 줍기 등 세 가지다. 관음마을은 전라남도의 ‘청정전남 으뜸마을’로, 산림청의 ‘녹색마을’로 지정돼 있다.
마을이 깨끗하다. 풍경도 아름답다. 집 안팎으로 여름꽃이 활짝 피어있다. 박 이장의 열정과 주민들의 마음이 한데 버무려진 결과다. 관음사의 주지 대요스님은 마을주민들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마을주민과 스님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살맛나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요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성덕산 관음사(觀音寺)도 마을의 자랑이다. 관음사는 17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서기 301년 성덕보살이 금동관세음보살을 모셔 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백제가 불교를 받아들인 때(서기 384년)보다도 앞선다.
관음사는 고전소설 〈심청전〉의 모태가 된 절집이기도 하다. ‘성덕산관음사사적기’에 나오는 홍장 설화에 근거한다. 장님 아버지를 둔 효녀 원홍장이 불사를 위해 시주됐고, 스님을 따라 나선 홍장은 중국 진나라 사신을 만나 황후가 됐다. 고국을 잊지 못한 홍장은 불탑과 불상을 만들어 보냈고, 그 가운데 금동관음보살상을 옥과에 사는 성덕보살이 발견해 모셨다. 그 절집이 관음사라는 얘기다. 홍장의 아버지 원량은 딸 덕분에 눈을 떴고, 95살까지 살았다는 것이다.
소설 〈심청전〉의 내용과 빼닮았다. 장님인 아버지를 극진히 모신 심청,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 황후가 된 심청이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는 내용이 그렇다. 관음사의 연기 설화를 심청전의 원형이자 배경으로 보는 이유다.
관음사 금랑각. 작은 계곡 위로 놓여 있다. 다리를 겸한 누각이다 |
수령 200년 된 느티나무 고목도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절집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다 지켜봤을 나무다. 한국전쟁 때 화마에서 살아남았다고 전한다. 마을과 주민을 지켜주는 나무로 통한다. 길섶에는 ‘계란꽃’으로 알려진 개망초가 지천으로 피었다. 연못에는 수련과 노랑어리연이 가득 피어 있다.
관음마을의 느티나무 고목. 마을에서 절집으로 가는 길에 있다 |
관음마을의 연지. 수련과 노랑어리연이 피어 있다 (6) |
원통전 앞에는 큰 물고기를 팔에 끼고 있는 어람관음상(魚籃觀音像)이 있다.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어람관음석불이라고 한다. 작은 계곡 위로 놓은 금랑각(錦浪閣)도 별나다. 태안사의 능파각처럼 다리를 겸한 누각이다. 바다가 아닌, 산골 절집의 누각에 ‘금빛 파도’를 가져다 붙인 이유를 짐작해 본다.
마을과 절집, 그리고 주민들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고있는 ‘청이마을’ 관음마을이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