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한 도공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청자를 굽고 있는 모습. 강진군 제공 |
남도도자는 일본의 아리타로 건너가, 유럽 전역에 전파되면서 전세계로 확산됐다. 아리타는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조선인 도공이 도자문화를 크게 발전시켰다. 일본은 자국의 도자역사에 영향을 준 조선의 주요 가마터 중 두 곳을 남도의 강진, 무안이라고 기록했다.
● 전통에서 현대로… 찬란한 도자문화
남도가 갖고 있는 ‘도자문화’의 역사적 가치는 후대에도 계승되고 있다. 영암의 구림리 요지(국가사적 338호)에선 통일신라시대(7~8세기)때 만들어진 시유도기(유약을 바른 도기)가 최초로 발견됐는데, 이는 한국 도자역사를 다시 쓰게 만든 사건이었다. 영암지역에서 제작된 국내 최초의 시유도기는 일본의 시유도기보다 200년 가량 앞선 것이었다.
고려시대 강진은 청자의 본향이었다. 신비로운 비색과 수려한 상감문양으로 한반도 도자역사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는 전세계에 고려라는 이름을 알린 K-콘텐츠의 핵심이었다.
무안은 강진(청자)·여주(백자)와 함께 국내 3대 도자기 발상지 중 한곳으로 한반도 도자역사의 기둥이다. 조선전기에 들어 나타난 무안분청은 특유의 자유분방한 멋으로 일본에선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현대로 들어 남도의 도자문화는 한국 최초의 생활도자 업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942년 목포 산정동에서 사업을 시작한 행남자기는 1세대 생활도자의 선두주자였다. 행남자기는 남녀노소 불문 모두가 사랑하는 ‘국민 도자’로 이름을 날리며 오랫동안 ‘혼수 필수템’으로 군림했다.
그랬던 행남자기가 80년간의 세월을 뒤로하고 2021년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남도도자 역시 찬란한 문화와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 현재 그 명성이 위태롭기만 하다. 보고 음미하는 도자기에서 실생활에서도 쓸 수 있는 도자기로 활용폭을 넓혔으나,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산업을 키우는 먹거리산업의 기능으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도자문화의 주도권은 타 지역에게 뺏기고 말았다. 지난 2001년 경기도 이천, 여주, 광주 3곳은 도자벨트로 집적화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를 수 있는 ‘2001경기도세계도자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경기도는 도자엑스포를 통해 600만명의 국내·외 관람객을 끌어왔고, 1조4700억원대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뒀다.
●전남도자엑스포, 올해부터 시작
경기도에 주도권을 빼앗긴 전남은 남도 도자역사의 재정립과 산업·세계화를 위해 ‘엑스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엑스포 개최를 위해 의기투합한 목포시, 강진군, 무안군, 영암군은 ‘전남세계도자기엑스포’(가칭) 유치를 준비하고 있다. 서남권 일대의 흩어져 있는 도자문화를 하나의 벨트로 묶어 ‘도자메카’의 지위를 다시 찾겠다는 각오다.
이들 4개 시·군은 전남세계도자엑스포 공동 개최를 위한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10월까지 국제행사 승인 기준에 따른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지역별 특성에 따른 박람회장 기본구상, 다른 지자체의 도자 비엔날레·엑스포 등과의 차별성 등을 꾀하기 위한 용역을 진행중이다.
전남도 역시 ‘남도도자의 르네상스’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역사에 비해 인지도가 낮았던 전남 도자문화의 역사성을 다시 알리기 위해 지난 16일 추가경정예산안에 관련 예산을 확보했다. 전남도는 올해 도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도자산업 관련 포럼도 개최할 계획이다.
●도자기·반도체 모두 ‘세라믹’
전남도자엑스포 유치를 위해서는 방향성과 목표 설정이 매우 중요하다. 먼저, 타 도자 관련 축제와는 차별성을 마련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은 최대 숙제다. 전남도자엑스포는 도자역사를 집적화시키고 도자산업의 고도화까지 담을 수 있는 전통과 미래의 엑스포로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를 위해서 전통도자 영역에서 생활도자 등의 세라믹산업으로의 확장이 우선돼야 한다.
이를 위한 조례상의 근거는 마련돼 있다. 지난해 10월 전남도의회에서 통과된 ‘전남도 세라믹 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안’에는 첨단세라믹과 생활세라믹을 ‘세라믹산업’으로 묶고 전남도가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첨단세라믹은 반도체·이차전지 등에 사용되는 소재로 신성장산업이며 생활세라믹은 전통도자·생활도자 등으로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제품이다.
세라믹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지난 2022년 12월 기준, 전국 세라믹 관련 사업체 3459곳은 67조4400억원 가량의 생산액을 올렸다. 이중 전남은 241곳(전국대비 7%)에서 1조6663억원(전국대비 2%)의 생산액을 기록했다.
전남의 산업구조를 보면 전통세라믹(전통도자·생활도자) 비중이 더 높은 상황이다. 전남의 첨단세라믹 업체(59곳)는 1조4000억원의 생산액을 보인 반면, 전통세라믹 업체(182곳)는 2600억원의 생산액을 기록하면서 업체와 생산액 부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다만, 입지가 우수한 영산강 유역은 미래 발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현재 국내 도자기 생산업체 상위 10개사 중 7개는 영산강 권역에 있다. 근로자 10명 이상의 생활도자 업체는 전국에서 무안이 가장 많다. 양질의 황토로 유명한 무안은 지난 2021년 기준 도자산업으로 연간 37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경기도 이천도자산업특구의 매출액(88억원)보다 4배 많아 산업화 가능성이 높다.
남도도자의 찬란한 역사성과 입지적 우수성을 세라믹으로 확장시켜 전통과 미래를 아우를 수 있는 국제적인 엑스포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나광국 전남도의원은 “중국산 저가 자기에 국산 생활자기류가 산업화 가치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며 “전남도가 질좋고 풍부한 원료 주산지 입지를 최대한 살려 도자산업을 고용창출과 경제효과가 큰 세라믹 산업군으로 분류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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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황지 기자 hwangji.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