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람 기자 |
모교 선배인 이한열 열사와 김부열 열사를 언급하는 학생 A군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지난 2019년, 지금은 고인이 된 전두환씨가 재판 출석 차 광주지법에 왔다. 당시 광주 동산초에 다니던 A군은 친구들과 함께 학교 복도로 나와 재판에 출석하는 전씨를 향해 ‘전두환은 물러가라’를 외쳤다. 해당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큰 화제가 됐는데, 특히 동산초가 6월 항쟁에 참여한 이한열 열사 모교라는 사실도 밝혀져 학생들의 행동이 더욱 의미있게 조명됐다.
하지만 동산초에는 이 열사를 기억하는 기념비나 작은 추모 공간조차 없었다. A군은 이 열사가 모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역사수업 때 짧게 들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언론보도 이후에야 알게 됐다.
“교내 기념비는 항쟁 기간 희생당한 모교 선배들을 기억하게 하는, 후배들의 큰바위얼굴입니다.”
동행 취재 차 참여했던 교원역사탐방에서 모 지역 역사학자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역사학자는 열사를 대하는 지역 교육계의 무심한 태도를 지적했다. 5월이 다가오면 광주지역 각급 학교들은 5·18계기교육을 진행하거나 추모 행사 진행 등 분주해진다. 광주시교육청은 5·18 정신의 전국화·세계화를 강조하지만, 정작 모교 출신 희생자를 파악하지 못해 명예졸업장 수여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도 있었다.
다행히 A군이 다니는 조대부중엔 김부열 열사를 기리는 추모비가 마련돼 있었다. 굳이 5월이 아니더라도 기념비를 활용한 일상적인 계기교육과 학생회 행사 등이 이뤄지고 있었다. 후배들도 선배 열사들의 정신을 자연스레 배우며 민주주의 의식을 다져갔다. 5월 주간 때마다 이뤄지는 일회성 계기교육보다 훨씬 교육적 효과가 큰 셈이다.
소년 어니스트는 어머니로부터 마을 앞 절벽 위의 ‘큰바위 얼굴’에 관한 전설을 들었다. “언젠가 큰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사람이 나타날 거야.”
어니스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큰바위 얼굴을 올려다보며, 큰바위 얼굴을 닮기 위해 노력했다. 오랜 세월 동안 큰바위 얼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그가 기다리던 큰바위 얼굴이 아니었다.
노년의 어니스트가 동네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던 중 누군가 외쳤다. “보세요! 어니스트가 큰바위 얼굴과 똑같아요!”
19세기 미국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소설 ‘큰바위 얼굴’은 무엇을 보고 사느냐에 따라 사람의 얼굴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수많은 청소년들은 자기 안의 큰바위 얼굴을 보며 꿈을 키워 왔다. 누군가는 주위 어른들을 통해, 또 누군가는 책이나 TV, 인터넷을 통해 내면에 큰바위 얼굴을 새겨 넣는다.
학교 안에 세워진 한 뼘짜리 기념석이 미래세대들에게는 거대한 큰바위 얼굴이 될 수 있다. 5·18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모든 선배들을 기리는 공간이 교내에 조성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