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기획특집>“농산물 아닌, 농촌을 팔아야겠다 맘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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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기획특집>“농산물 아닌, 농촌을 팔아야겠다 맘 먹었죠”
전남을 농촌융복합산업 실리콘밸리로 만들자 5)담양 두리농원
고향서 27년 농업 외길 인생
흙속에서 거둔 농산물만 생산
음식점 등에 쌈채소 독점납품
농산물 판로확대 전환점 맞아
농업교육관 조성, 농업인 교육
  • 입력 : 2023. 06.07(수) 10:15
  • 박간재·김은지 기자
김상식 두리농원 대표 부부
두리영농조합법인 친환경교육원
담양 두리농원 친환경교육원전경
두리농원을 찾아 교육을 받고 있는 농고학생들.
“농산물이 아닌, 농촌을 팔아야겠구나”

담양 수북에서 30년째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상식(59) 두리영농조합법인 대표. 농산물만으로는 승부할 수 없다고 의기소침해 질 찰나 그의 머릿속에 떠오를 아이디어였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즉시 각종 쌈채소 등을 재배해 가까운 광주 식당을 파고 들었다. 지난 2008년이다. 광주 시민들이라면 삼겹살집 식사에 상추, 쑥갓, 당귀, 고추 등 수십가지 야채를 가지런히 담아 쌈채소를 맛본 적 있을 터다. 그 쌈채소가 바로 김 대표 하우스에서 나온 야채들로 광주 40여곳 식당에 독점 납품했다. 그때 깨달은 게 있다. 단순한 농산물만을 판매할 게 아니라 농촌이라는 상품을 판매해야 겠다고. 즉시 대출도 받고 돈을 끌어모아 한옥 교육관을 지었다. 당시 전남도가 한옥에 필이 꽂혀 있을 때다. 그 교육관이 지금은 광주·전남을 넘어 전국 귀농업인들의 교육관으로, 친환경농업교육과 해외산업연수생 위탁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농산물 체험과 한옥민박체험도 곁들이며 농촌융복합산업 선진지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그를 만나러 가는 내비게이션이 담양 수북면 시골길로 안내한다. 모를 심으려는 농부들의 트랙터 소리가 요란하고 하우스 안에서는 농작업을 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분주하다. 마을에 당도하니 여러 채의 기와집이 나온다. 만석꾼을 거느린 양반가문 집을 닮았다. 김 대표 대신 이제 대학을 졸업했다는 둘째 딸이 해맑은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아버지가 곧 도착한다고 연락왔어요.”

쌈채소수확
컬러방울수확
●27년간 고향을 지킨 농업의 장인

젊은시절 잠깐 직장생활한 이후 한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차분한 성격 덕택에 큰 고난 없이 농업에 매진해 왔다. 80년대 초반 알로에 등이 인기가 있던 당시 풀무원, 황성주 생식(이롬) 등과 계약재배를 하며 큰 돈을 만졌다. 이후 1만 평에 쌈채소 등을 재배하며 광주전남 식당에 독점 납품했다. 김 대표는 “처음으로 식당에 납품하며 갑질을 해봤다”고 웃었다. 그만큼 물량이 부족해 식당마다 서로 많이 달라고 아우성 쳤기 때문이었다.

쌈채소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지역농가와 함께 영농조합법인을 결성했다. 공동생산, 공동정산을 기본으로 전북 장수 고랭지에까지 계약재배를 이어갔다.

한때 하우스 40개 이상을 운영했지만 현재는 15개 동에 방울토마토, 녹즙케일, 멜론 등을 재배하고 있다. 체험행사는 김 대표 부인이 직접 장아찌만들기, 염색체험 등 교육을 담당하며 농촌융복합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다. 부인은 체험뿐 아니라 판매, 유통을 담당하며 거래처 관리에 매진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김대표 부부가 새농민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숨쉬는 맑은 채소 생산…농사는 흙을 기반으로 이뤄져야”

그의 농촌에 대한 사랑은 심오한 철학에서부터 비롯됐다. 농업은 모름지기 흙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믿음이 그것. 수경재배 등 공중에 띄우거나 양액재배 등으로 키우는 농산물은 진정한 흙속에서 거둔 농산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농업이 자동화, 기계화 되다보니 화학성분으로 기를 경우 결코 건강한 먹거리가 될 수없다”며 “토양속 양분을 먹고 자란 농산물이야 말로 최고의 건강식이며 손으로 쓱쓱 문질러서 먹을 수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판로확대에 애로를 겪는 생산농가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보통 농가에서는 좋은 제품은 농산물 도매시장으로 내다 팔고 떨이 등 남은 제품을 친인척들에게 나눠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귀띰했다. 그는 “맛있는 농산물을 지인, 친척들에게 먼저 선물하면서 입소문 마케팅에 나서야 한다”며 “맛있는 농산물을 먹어 본 그들이야말로 입소문을 내주는 홍보대사를 맡게 된다”고 말했다.

천연염색 체험 프로그램
●욕심내지 않고 확장해 가는 게 비결

부농 대열에 올랐지만 그는 절대 오만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를 보니 두 개가 보이고, 두 개가 보이니 세 개가 보이더라”라며 “하나하나 경험을 쌓아가며 유통망 등을 주의깊에 살펴 봤으며 절대로 욕심부리지 않고 소규모로 시작해 조금씩 늘려갔다”고 말했다.

최근 귀농귀촌 열풍에 따른 정부와 지자체의 무분별한 지원에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귀농을 한 뒤 농촌에 연착륙 하는 농가를 대상으로 지원해주는 정책에는 적극 찬성한다”며 ‘하지만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덥썩 지원부터 해주는 건 둘 다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머리로 농사를 지으려 말고 현실에 부대끼며 운영할 것을 조언했다.

현재 교육관에서는 스몰웨딩도 열리고 있다. 부모님 일손을 덜겠다며 귀향한 두 딸도 함께 일을 거들고 있다.

그는 “욕심부리지 않고 농사를 짓는 일이야말로 농업인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라며 “농업인들이 농촌에서 성공할 수있도록 지도편달 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대표의 차분한 성격때문이었을까. 30년 가까운 경험에서 우러난 농업에 관한 철학을 듣고난 느낌이 마치 ‘강호의 고수’를 만나고 가는 듯 흐뭇해 진다. 서산 멀리 한뼘쯤 걸린 태양이 유난히 평안해 보인다.
박간재·김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