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타적 유전자·손필영>인간의 언어를 빌린 기계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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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이타적 유전자·손필영>인간의 언어를 빌린 기계 언어
손필영 시인·국민대 교수
  • 입력 : 2023. 05.31(수) 14:22
손필영 시인·국민대 교수
지난 2월 인공지능 챗GPT가 쓴 자기계발서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이 출간됐다. 뉴시스
새로운 학기가 긴장과 꽃샘추위로 시작되었지만 어느덧 학기를 마감하는 기말고사를 앞 둔 초여름이 되었다. 올해 3월 학기가 시작되고 등장한 ChatGPT로 학교는 어수선했다. 학생들이 레포트나 여러 가지 수행과제를 ChatGPT를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 걱정하며 표절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아직은 ChatGPT에 여러 가지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학생들이 무조건 신뢰하지 않는 듯하다. 실제로 개발사 OpenAI는 ChatGPT가 때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부정확하거나 터무니없는 대답을 하는 것을 인정했다. 필자도 몇 번 경험했는데 ChatGPT에게 맞지 않은 정보라고 지적하면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더 노력하겠다는 말로 답한다. ChatGPT가 가장 잘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장 잘 못하는 사과라는 농담도 주위에 돈다. 그런데 이 사과는 책임이 없다. 의미를 지닌 언어가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 인간세계의 규칙이지만 이렇게 언어가 소리로만 남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 의도와는 달리 상대방이 교묘히 다른 말로 대답함으로써 의미를 다른 것으로 치환해 버리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AI가 그런 의도된 능청스러움까지 지능으로 탑재한다면 정말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일찌기 이오네스코는 ‘대머리 여가수’에서 언어가 무의미하게 사용되는 현실을 허무하게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부조리극으로 분류된다. 부조리극은 세계대전을 겪은 알베르 까뮈가 ‘시지프스 신화’에서 인간의 조건을 ‘부조리’라고 말한 것을 받아 마틴 에슬린이 전통적으로 극의 중심이었던 개연성이나 의미를 없애고 이미지와 상황으로만 이루어진 극들을 지칭하면서 탄생했다. 노벨상을 받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대표적 부조리극이다. 실제로 극에 대머리 여가수가 등장하지 않은 이 연극은 언어의 무의미성을 드러내 소통이 부재하며 인간의 유일한 존재성이 상실된 것을 보여준다. 가까운 사이의 부부도 서로 아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존재로 진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사이이다. 그리고 개인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이름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이나 모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소통을 상실한 의미 없는 소리만 지르고 있는 상황을 보여 준다.

마틴 부부는 말없이 마주 보고 앉는다. 서로 조심스럽게 미소 짓는다./ 마틴 (이후의 대화는 단조롭게 늘어지는 목소리로 이루어져서 얼핏 굴곡이 없는 노래처럼 들린다.) 저, 실례입니다만, 아무래도 전에 어디서 뵌 것 같은데요./ 마틴 부인 글쎄, 저도 전에 어디선가 뵌 거 같네요./ 마틴 혹시 맨체스터에서 우연히 뵙지 않았나요?/ 마틴 부인 그럴 수 있죠. 제가 맨체스터 출신이니까. 하지만 거기서 뵀는지 안 뵀는지 말씀 못 드리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마틴 거 참 신기히네요. 저도 맨체스터 출신이에요./ 마틴 부인 정말 신기하네요. (중략) 스미스 아, 세, 이, 오, 우, 아, 세, 이, 오, 우, 아, 세, 이, 오, 우./ 마틴 부인 비, 시, 디, 휘, 기, 리, 미, 니, 피, 히, 시, 티, 뷔, 지, 쥐./ 마틴 물탄 술, 술탄 물./ 스미스 부인 (기차를 흉내 내며) 칙칙, 폭폭, 칙칙, 폭폭, 칙칙, 폭폭, 칙칙, 폭폭, 칙칙, 폭폭./ 스미스 그./ 마틴 부인 쪽./ 마틴 아./ 스미스 부인 냐./ 스미스 이./ 마틴 부인 쪽./ 마틴 이./ 스미스 부인 야./ 모두들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서로의 귀에다 고함을 지른다. 어둠 속에서 점점 빠른 리듬으로 대사가 들린다. (후략) (오세곤 역, ‘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이오네스코의 뛰어난 통찰력이 드러난 이 극은 주로 소통불능이라는 측면에서 언급되기에 서로 의미가 맞지 않는 자기주장만 하는 정치를 풍자할 때나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사회의 갈등을 비유할 때 언급된다. 언어의 무의성과 소통의 부재와 존재의 상실 등도 비극이지만 필자가 지금 이 극을 언급하는 이유는 인간끼리의 소통 부재보다 더한 비극적 상황의 도래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틀린 정보를 언어라는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틀린 경우에도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며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인간의 특징인 언어를 이용한 무책임성이 몰고 올 비극에 대해 생각한다. ChatGPT는 지도학습과 강화학습을 통해 대화의 문맥을 기억하고 논리적인 글을 만들 수도 있으나 훈련데이터에 의한 편향된 알고리즘으로 랩을 만들 수 있다. ChatGPT가 대화자가 요구하는 답변을 하지 않거나 틀린 답변을 하고 난 뒤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같은 답을 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다. 특히 편향된 사고에 입각한 답변일 경우 이에 의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부끄러움도 없고 편향된 시각에 대해 돌아봄도 없는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이오네스코가 제기한 무의미한 대화보다 더한 비극적인 상황을 몰고 올 것이다. 편리함과 효율성을 가장한 인공지능 앞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할 우리의 의무감만 커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