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기획시리즈>‘기념탑’ ‘이름 딴 교실’… 학교가 역사 기억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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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기획시리즈>‘기념탑’ ‘이름 딴 교실’… 학교가 역사 기억하는 법
●5·18 43주년 - 학교 내 기념공간 조성하자 <6> 광주일고
학생독립운동 기념탑 매년 참배
5·18 관련 5명은 기념 공간 없어
명예졸업 이맹영 “오월 계승해야”
  • 입력 : 2023. 05.15(월) 18:46
  •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들이 교내 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광주제일고등학교 제공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인 광주제일고등학교 교정에는 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기념 역사관이 조성돼 있다. 학생들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기념탑을 통해 자연스레 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선배들을 기리고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다.

반면 5·18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한 선배들의 이야기는 후배들에게 생소하다. 이는 교내에 관련 기념 공간이 없는 것과 무관치 않다. 고등학생이었지만 국가 폭력에 맞서 당당히 싸웠던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15일 찾은 광주일고. 학교 정문과 운동장 사이에 위치한 학생독립운동기념탑 주변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그곳을 거닐거나, 나무 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몇몇은 기념탑 앞에 멈춰 탑에 새겨진 문구와 그림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광주제일고등학교 교내 설립된 학생독립운동기념탑. 강주비 기자
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광주 지역 학생들이 주도해 일으킨 항일독립만세운동이다. 3·1만세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일제 강점기 3대 민족운동 중 하나로 꼽힌다.

100여 년 전의 길고 무거운 역사지만, 학생들은 이를 어렵게 받아들이지만은 않았다. 기념탑을 중심으로 학교 차원의 계기교육 및 추모 행사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일고 1학년 나하윤(16)군은 “학생독립운동에 대해 잘 몰랐는데, 입학할 때 반별로 직접 기념탑을 찾아 참배하고 교장선생님이 이 탑이 어떤 탑인지 자세히 설명해 줬다”며 “점심시간이나 등하굣길에 기념탑을 보며 그때 배운 학교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제 광주일고는 매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교내 기념탑을 찾아 참배하고,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학생독립운동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듣는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또 학생독립운동이 시작된 11월에는 전교생들이 기념탑을 찾아 열사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시간을 갖는다. 기념 역사관도 교내에 설립돼 있어 활용성·접근성이 높다.

광주제일고등학교가 지난 2021년 독립·민주화 등에 앞장선 선배들의 이름을 딴 특별교실을 만들었다. 사진은 특별교실 중 하나인 ‘임선호실’. 강주비 기자
더불어 지난 2021년에는 학생독립운동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선배들의 이름을 딴 특별교실을 만들어 학생들이 이들을 본받도록 했다. ‘송홍’실, ‘장재성’실, ‘임선호’실 등 7개 실이 그것이다. 해당 교실 벽면에는 선배들의 얼굴과 관련 기록물이 걸려 있다.

그러나 광주일고 선배들이 적극 참여했던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시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광주일고에는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나섰다가 강제 퇴학당한 이맹영씨를 비롯해 김용관씨, 오춘환씨, 이홍재씨, 정움동씨, 탁상준씨 등 5명의 동문이 5·18 관련자(사망·부상·구속)로 파악된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제일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맹영씨는 가두방송을 하다 강제 퇴학당했다. 지난 2020년 광주제일고등학교는 이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고, 이를 계기로 이씨의 인터뷰가 교지에 실렸다. 사진은 이씨의 인터뷰가 실린 광주제일고등학교 교지. 강주비 기자
가두방송을 하다 퇴학당한 이씨의 경우 지난 2020년 명예졸업장을 받아 교지에 인터뷰가 크게 실리면서 잠깐 화제가 되긴 했다.

이씨는 광주일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0년 5월, 시위대 차량에 올라 시내 전역을 누비며 가두방송을 했다. 이후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3학년에 진학하지 못한 채 강제 퇴학당했다. 이후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씨는 광주일고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이 소식을 실은 광주일고 교지에는 ‘기억해야 할 선배님, 이맹영 동문’이라는 문구가 크게 적혔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3학년 최승우(18)군은 “현재 3학년들은 입학 당시 선배(이씨)가 명예졸업장을 받았다는 소식이 실린 교지를 받아서 (이씨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아래 학년들은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신 선배가 있다’ 정도만 알거나 아예 모를 것이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하다 강제 퇴학당한 광주일고 이맹영씨(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지난 2020년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이맹영씨 제공
교직원들도 학생독립운동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학교의 온도 차에 공감하는 모양새다. 광주일고 관계자는 “워낙 많은 교육활동이 있기에 5·18 주간 교육만으로는 학생들이 크게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체감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외부 활동이 어려운 학교 특성상 교내에 기념 시설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학생들이 역사를 배우고 이해하는데) 분명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일고 명예졸업자 이씨는 후배들이 선배의 ‘오월정신’을 계승해 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이씨는 “학생들이 진실을 바로 알고 자유를 외치며 투쟁했던 당시 선배들과 그 정신을 계승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당시 시위에 참여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많다. 교내에 작은 기념 시설 등이 마련된다면 이들을 알리고, (학생들에게) 오월정신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