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일의 ‘색채 인문학’> 보라색은 도덕적으로 선과 악 사이에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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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박현일의 ‘색채 인문학’> 보라색은 도덕적으로 선과 악 사이에 존재
(196)색채와 시대, 세대
박현일 문화예술 기획자/철학박사·미학전공
  • 입력 : 2023. 04.25(화) 15:24
●색채와 종교

‘구약’에는 퍼플이 가장 비싼 색이라고 씌어 있다. ‘구약’의 하느님은 모세에게 사원의 커튼과 사제의 의복 색을 정해주었다. 파란색을 띤 퍼플과 빨간색을 띤 퍼플 그리고 진홍색을 쓰되 금빛이 들도록 하라!

보라는 신앙과 미신의 색이다. 마법사의 보라색은 퍼플의 전통 속에 있지만, 사제는 퍼플 옷을 입어야 한다고 모세(Moses)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포했다.

보라는 금식 기관의 색이며, 이 시기의 모든 가톨릭 성직자들은 보라색 옷을 입고 미사를 드린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년~1965년) 이후에는 장례미사도 검정색이 아니라 보라색으로 거행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 천주교 : 天主敎, 이 교회는 사도들의 으뜸인 성 베드로(St. Petrus)를 유일한 계승자로 받드는 기독교의 교파)의 교리에 의하면, 주교(主敎)의 소매는 가장자리만 퍼플이며, 최고의 관직에 오른 자는 퍼플의 큰 사각형을 옷 위에 달고 다닐 수 있었다. 보라색은 가톨릭교회의 전례에 따라 참회를 뜻하며, 고해성사를 진행할 때 신부는 보라색 영대를, 고해성사실의 커튼도 보라색이다.

추기경은 교황으로부터 자수정 반지를 받는데, 이는 다시 한번 ‘겸손’을 뜻한다. 자수정은 참회와 금식을 나타내는 색이므로 2월에 속한다.

보라는 신학의 색이고, 가톨릭교회는 보라색을 가진 유일한 공공기관이다. 주교는 보라색 단추, 추기경은 빨간색 단추가 달려 있다. 색은 성직자들의 서열을 표시하는 수단이다. 또한 대학교수들이 제복(색채와 복장 참고)을 입었던 시대에 신학 교수들은 보라색 모자를 착용했다.

보라는 허영의 색이다. 복장 규정이 있는 중세에는 허영이 설교의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 그래서 기독교 상징체계에서 보라는 겸손의 색이다. 권력의 색인 퍼플의 모순을 왕은 권력으로 다스리지만, 추기경과 교회는 겸손으로 다스린다.

개신교에서는 오늘날까지 보라가 교회의 색이다. 개신교 총회가 열릴 때, 하얀 바탕에 보라색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게양한다.

기독교회화 작품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그리고 마리아가 그려져 있다. 이런 경우 마리아는 파란색 옷을 입고, 그리스도는 빨간색 옷을 입고, 성부는 어두운 빨간색이나 보라색(퍼플 레드)을 입고, 성자는 하얀 비둘기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배경으로는 초록색을 사용하였다.

보라색은 도덕적으로 볼 때 선과 악 사이에 존재한다.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사형으로 중죄를 다스리는 7가지 중에 하나이다. 보라는 빨강과 파랑 사이를 오가는 색이어서 서로 상반된 두 감정이 양립하는 색이다. 또 보라는 검정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으므로 데카당스의 색이다.

아톤먼트(Atonement)라는 이 색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죄를 이미지시킨 밝은 회색 기미가 있는 보라를 말한다. “크리스트교는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예수가 십자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예수는 인류의 죄 대신 죽음으로, 하나님께 화회를 함으로써 인류의 죄는 속죄되고, 죽음이 승리를 얻어 부활했다고 전해진다.”

마네(Manet)라는 이 색은 인상파 화가 마네를 이미지시킨 연한 파란 기미가 있는 보라색을 말한다. “마네는 감미로운 색채와 세련된 화풍으로 인상파의 중심인물이 되었으며, 후에 모네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