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오전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사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전씨는 31일 오전 10시께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5·18 피해자와 유족 등 단체 대표와 만남을 가졌다.
짧은 묵념 후 곧바로 전씨는 광주에 오게 된 심경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전씨는 고개를 숙인 채 “제게 사죄할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이 자리를 비롯한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늦게 찾아뵙게 돼서, 더 일찍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서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군부 독재까지 너무나 많은 희생과 아픔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 전두환 씨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하지 못하고 오히려 민주주의가 역으로 흐르게 했다”며 “정말 군부 독재 속에서 두려움 속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용기로 군부독재에 맞섰던 광주시민 여러분들은 영웅인데 오히려 더 고통에 있게 하고 그 아픔을 더 깊게 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전했다.
전씨는 또한 “양의 탈을 쓴 늑대들 사이에서 항상 제 죄를 숨기고 가족들이 죄를 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저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 이 사실을 항상 외면한 채 살아왔다”면서도 “광주시민 여러분들이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정말 죽어 마땅한 저에게 사죄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울먹거리며 말했다.
전두환씨의 손자인 전우원씨가 31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 유족 및 피해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사진은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가 기자회견을 마치고, 5.18민주화운동 유족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는 모습. 장아현 수습기자 |
정성국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장은 “전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5·18이 일어난지 이제 43년이 됐다. 다른 가족들도 용기를 내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고등학생 시민군 故 문재학군의 어머니인 김길자씨도 “큰 용기를 내 여기까지 와 감사하고, 부모의 마음으로 광주를 처음으로 온 것은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이제부터 차분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심정으로 우리 5.18의 진실을꺼내서 화해의 길로 나가야한다”고 털어놓았다.
상무대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던 김관씨는 “온갖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돼 80년 그 이후로 저의 젊음과 청춘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20대 초반에서 지금 60대 중반이 되었지만 제 인생은 존재하지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화해와 용서의 손을 잡아줄 준비가 됐다. 오늘을 계기로 많은 당사자 분들이 나오셔서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5·18에 관한 물음이 쏟아진 가운데 전씨는 가족들에게서 배운 5·18민주화운동이 진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할아버지를 ‘학살자’라고 정의내렸다.
전씨는 “어렸을 때부터 저도 (5·18에 대해) 궁금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뿐만 아니라 할아버지께도 많이 물어봤다”며 “하지만 집안 분위기가 대화 주제를 바꾸거나 침묵을 하는 식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이 폭동이고, 북한군들의 소행이고, 가족들은 피해자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광주에서 용기내 싸운 시민들을 안 좋게 이야기를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일은 다신 있어서는 안 될 대학살이었고 그 주범은 나의 할아버지인 전두환이다”고 조용히 답변했다.
현장에서는 오월 어머니들의 눈물 섞인 호소가 이어지자 전씨는 큰 절을 올리며 사죄의 뜻을 내비쳤다.
오월 어머니들도 울먹이며 “용기내줘서 고맙다”거나 “건강을 챙기라”며 전씨를 꼭 안거나 손을 붙잡았다.
만남을 마친 전씨는 5·18기념공원에서 4000여명의 유공자 이름이 적힌 추모승화공간을 둘러본 후 국립5·18민주묘지로 이동해 5·18 최초 희생자인 청각장애인 구둣공 김경철과 공식 사망자 중 가장 어린 ‘5월의 막내’ 전재수의 묘소 등을 참배한다.
김혜인 기자·장아현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