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태종> 용서와 화합의 길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기고·김태종> 용서와 화합의 길
김태종 5·18진상조사위 조사관
  • 입력 : 2023. 03.30(목) 16:04
김태종 조사관
매국노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이완용’일 것이다. 어찌 우리 역사에 매국노가 이완용 혼자만 있으리오마는 유감스럽게도 그가 대표선수다.

과문한 탓인지 이완용의 후손이 “나의 할아버지는 매국노”라고 고백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던 나에게는 “나의 할아버지는 학살자”라는 전우원 씨의 증언(?)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더 나아가 그는 우리 가족은 부정한 돈으로 호의호식하고 있으며 자신은 죄인이라고 자백까지 하고 있다.

5·18은 이제 43주년을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 “덮고 가자”, 심지어는 “묻고 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민낯이 보여야 덮을 것이 아닌가. 실체를 모르고 무작정 묻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 진상규명이 최우선이다. 본질적인 ‘사실’(A fact)은 하나이지만 다양한 시선에 의해 ‘진실’(The truth)은 여러 개가 될 수 있다. 가해자의 진실, 피해자의 진실, 광주의 진실, 서울의 진실 등이 밝혀져야 한다. 그날의 진실은 국민들의 눈과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역사의 진실 앞에 ‘피로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는 고백해야 한다. ‘사랑의 고백’처럼 세상의 모든 고백은 어쩌면 무모하고 따라서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장병으로 참여한 계엄군들은 대검 사용 등 강경진압, 조준사격, 확인사살, 가매장 등 진실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신군부 책임선에 있는 이가 고백한 적이 있는가. 그때 우리가 정권을 잡기 위해 너무 심하게 했다고… 호랑이 등에 올라탄 우리도 뛰어 내릴 수 없었다고….

광주시민도 고백해야 한다. 우리도 공수부대한테 징하게 저항했어. 육교 위에서 벽돌을 던지고, 목숨 걸고 트럭으로 돌진도 했지….

화해는 또 절제를 필요로 한다. 진실을 고백하고 참회하면 이를 대승적으로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 사소한 불만을 끊임없이 추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변에서 ‘화해주’ 마시다가 술이 지나쳐 또 된통 싸우는 경우를 종종 본다. 단가 <사철가>에 나오는 가사처럼 “한 잔 더 먹소” 할 때, “고만 먹게”하는 절제의 지혜가 필요하다.

고백하고 참회할 때 용서와 화합의 길은 열린다. 아쉽게도 양심 고백자 전우원의 할아버지 전두환은 참회록 대신 왜곡으로 점철된 회고록을 썼다. 역사는 거울이다. 한국은 여지껏 참회와 청산의 역사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적폐가 쌓인다.

화합과 화해는 정략이나 술수가 아니다. 진실과 고백과 참회에 바탕을 둘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