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대도시 뭄바이에 사는 세 여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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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대도시 뭄바이에 사는 세 여인의 삶
파얄 카파디아 감독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 입력 : 2025. 05.12(월) 10:57
파얄 카파디아 감독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포스터.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파얄 카파디아 감독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오랜 만에 인도 영화를 접했다. 우선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All WeImagine as Light)’이란 타이틀이 근사하다. 빛을 상상한다는 것은 어두움과 날선 현실을 대립각으로 장치해두었음을 얼핏 예상하게 한다. 막상 영화를 접하고 보니, 도시의 생활과 소음으로 분주한 도시의 풍경을 롱샷으로 마무리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였다. 낯선 인도 영화에 배어 있는 인도스러움(필자에게 인도는 종교의 근원지이자 타지마할 묘지처럼 왕실과 상류층에게 부여된 과도한 화려함을 선입견처럼 갖고 있다)을 찾기보다는 인도인의 현실 속에서 그들만의 생활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점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일 만큼 단조로웠다.

뭄바이는 도시의 냄새가 있다. 매캐한 매연과 콘크리트 건물 구석에 쿰쿰함이 배어있는 음습함.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세 간호사 프라바(배우 카니 쿠스루티), 아누(배우디브야 프라바), 파르바티(배우 차야 카담)는 모두 꿈을 좇아 도시로 모여든 인물들이다. 결혼했던 독일인 남편이 돌아오지 않은 채 살고 있는 프라바, 대다수가 힌두교도인 인도인들은 이슬람교도 남자친구를 둔 아누가 가십거리다. 파르바티는 20년 넘게 산 아파트지만 소유주인 남편이 세상에 없다는 이유로 강제퇴거 위기에 놓인다. 이들에게 있었던 도시의 꿈은 빛 한줄기 들이치지 않는 어둠일 뿐, 빛은 낮잠 후에 꾸는 백일몽에 불과하다. 인도 사회에서 아내는 소식이 끊긴 남편을 불만 없이 기다려야 정상이고, 젊은 여성이 집안끼리 점지한 남성이 아닌 자와 데이트하는 건 비정상이다.

남편이 죽으면 여성의 주거권이 사라지고, 남자친구가 사는 동네에선 신념과 성정 모두에 맞지 않는 부르카로 얼굴을 가려야 안전하다. 파얄 카파디아 감독에게 밤은 불안의 총체다. 인간의 근원적 고독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어둠. 프라바가 한밤중 독일에서 온 전기밥솥을 끌어안고 남편을 향한 분노와 그리움을 표출하며 처절함을 그려낸다. 뭄바이의 밤은 젊은 청춘에게 쏘는 눈총으로 어느 장소도 사랑을 나누게끔 내어주지 않는다. 파르바티에게 밤은 더욱 혹독한 현실감만 안겨줄 뿐이다. 그래서인지 감독은 낮잠 속에서 또는 낮잠 후에 꾸는 백일몽의 시간을 몽환적으로 표현해낸다.

도시의 삶은 꿈과 기억을 포함한 시적인 가능성으로 가득하다지만 뭄바이에서의 삶은 이들에게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이 뭄바이를 떠나 파르바티의 고향으로 가서 휴식을 즐기는 동안 그야말로 현실감을 잊어도 좋을 만큼 빛의 상상을 끌어들인다. 그만큼 감독은 빛과 어둠, 상상과 현실을 몽환적으로 뭉뚱그리면서 39세 여성 감독의 감성으로 움트게 한다. 세 연령대 여성의 감정을 사실적 흔적을 통해 깊은 층위로 표현하고자 낮과 밤의 시각적 템플릿을 사용했던 의도로 되짚어진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종결로 감독의 의도가 객석에 잘 전달이 됐을까 싶다. 별다른 스토리가 없는 듯 시간의 흐름에 맡긴 듯 다큐멘터리인 듯 하지만 돌이켜보면 분명 이야기도 이야기의 굴곡도 있었다. 그런데도 인과관계 없이 춤을 추는 한 남자의 느닷없음이나 별 결말 없이 끝난 지리멸렬함을 두고 영화적이다, 예술이다 언급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인도 영화의 속성을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인도 영화의 특성은, 인물들 간의 갈등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다가도 갑자기 모두들 춤추고 노래한다거나 코미디가 섞이기도 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무협 영화가 갑자기 스릴러로 변모하는 등 장르가 뒤섞이는 경우가 많다. 많은 플롯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상영시간이 3시간 넘도록 길어지므로 혼잡스럽고 지루한 편이다. 이런 특성을 갖는 인도영화를 ‘마살라(혼합 향신료) 영화’라 하는데 인도인들에게는 익숙하지만 마니아 층이 아닌 한 우리에게는 버겁다. 실상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나라다. 매년 1000여 편(할리우드의 10배)을 제작함에 따라 ‘볼리우드(봄베이+할리우드)’라 일컫는다. (봄베이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지명, 1995년 뭄바이로 이름을 되찾았다.) ‘당갈’(2016)을 비롯해서 전세계 수출 300만 달러를 넘는 작품도 만들어 내놓을 만큼 역사도 깊다. 근래 합작이 아닌 순수 인도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2023)로 마살라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다. 그 영향이 큰 듯 싶다.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에 2024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이 주어졌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