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86-1> 무분별 가지치기… 몸통만 남은 가로수 흉물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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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86-1> 무분별 가지치기… 몸통만 남은 가로수 흉물 전락
● ‘가로수 수난시대’… 관리 부실
병해충 무방비 포자·벌레 서식
“도시미관 해쳐 보기 흉해” 항의
“가로수 별 관리법 등 기준 필요”
  • 입력 : 2023. 02.12(일) 18:22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광주시내 도심 가로수가 가지치기로 수난을 겪고 있다. 사진은 전남대 굴다리에서 임동 사거리 사이 메타세쿼이아 가지치기. 김양배 기자
도시 미관 향상과 오염물질 저감·열섬효과 완화 등을 위해 식재된 가로수들이 겨울철만 되면 몸살을 앓고 있다. 낙엽이 떨어진 후부터 새싹이 트기 전까지 진행하는 ‘가지치기’ 때문인데, 대부분의 나무들은 수종을 고려하지 않은 가지치기법으로 몸통만 덩그러니 남아 흡사 전봇대 같은 모습이 된다. 전문성이 결여된 채 무차별적으로 베어지고 훼손되는 가로수에 시민들은 ‘흉물스런 가로수를 보지 않게 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운전 방해 ‘싹둑’·낙엽 많아 ‘톱질’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을 보면 정말 안쓰럽죠. 이 가로수들은 단순히 도로 위를 넘어왔다는 이유로 저렇게 다 잘렸어요. 마음이 참 안 좋습니다.”

최근 찾은 광주 서구 광암교 인근의 도로에는 '반쪽만 남은 가로수'들이 즐비했다. 갓길에 심어진 수백 그루의 벚나무들은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절반 이상이 잘렸다. 절단 부위에는 상처를 치료하는 도포제도 발라지지 않아, 포자 등 병해충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흉측하고 기괴한 모습에 지나다니는 시민들은 '가로수에게 미안해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광천동 주민 조시훈(38)씨는 “지인들과 함께 광주천변을 산책할 때면 항상 이 나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나무가 왜 이런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가지가 다 잘린 거였더라”며 “이렇게 절반만 가지치기 된 나무는 또 처음 본다. 가로수를 심어 도시 미관이 좋아져야 하는데, 괜히 역효과만 났다”고 아쉬워했다.

비슷한 기간 찾은 북구 운암동 인근의 가로수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지와 잎을 잃은 채 몸통만 남은 가로수들이 즐비했고, 흡사 ‘닭발·전봇대’와 같은 모습에 나무의 생장마저 걱정됐다.

이곳 가로수들은 잎이 하수구를 막거나 전선에 엉킬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가지치기를 당했다.

시민 최복남(70)씨는 “유동인구가 많은 인근 아파트나 학교 쪽 가로수들을 보면 죄다 이런 식이다. 옷을 싹 다 벗겨놓은 모습에 괜스레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며 “예전에는 나무 그늘 아래서 동네 사람들끼리 모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 옛말이 됐다. ‘나 편하자’고 나무를 다 잘라버리지 않나. 나무와 사람이 공존하는 더 좋은 방법이 강구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시내 도심 가로수가 가지치기로 수난을 겪고 있다. 광주 서구 광주천변 광암교에서 동천교 사이 벗꽃나무의 도로쪽으로 뻗은 나무가지가 무분별하게 잘렸다. 김양배 기자
지난달 김중태 내일이 빛나는 광주 나무병원장이 광주 서구 광암교 인근의 강전정 된 나무들을 가리키며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규정·법규·지침 미비

무분별한 가로수 가지치기는 규정·법규·지침의 미비함에서 비롯된다. 가로수 관리 규정은 산림청의 ‘가로수 조성 및 관리 규정·매뉴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가지치기 방식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칠 뿐, 가지를 얼마나잘라야 하는지 등과 같은 내용은 없다. 가지치기는 가지를 잘라내는 양에 따라 약전정과 강전정으로 나뉘는데, 이를 구분짓는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대부분 비용·시간이 절감되는 ‘강전정’을 고수한다. 강전정은 새순이 나기 전인 1~3월 가지 대부분을 잘라내는 것을 말한다.

강전정이 가지치기의 한 방법임에도 문제가 되는 건, 가로수에 독이 되기 때문이다.

김중태 내일이 빛나는 광주나무병원장은 “강전정으로 잘린 가지 절단면은 병해충에 무방비로 노출돼 부패가 일어난다. 부패로 속이 썩은 가로수들은 바람이 세게 불거나 비가 오면 도로나 인근 건물을 덮쳐 사고를 야기하기도 한다”며 “광주·전남 대부분의 가로수들은 획일화된 강전정을 당하고 있다. 가로수는 탄소중립과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만큼, 수종별 가지치기 방식을 세분화하는 등 보다 촘촘한 관리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단체는 과도한 가지치기를 근절하기 위해 행정당국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진우 ‘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대표는 “국제수목관리학회에는 (가지치기 시) 나뭇잎의 25% 이상을 제거하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 나무의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이유에서다”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제 표준이 있음에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걸 인지하고 가르칠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올바른 가지치기’를 위해 △국내 실정에 맞는 가지치기 안내서 제작 △나무의사 등 전문 교육·인증 제도 운영 △강전정·약전정 품셈 기준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