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부터 이어진 꿀벌 집단 소멸 현상이 올해에도 이어지면서 양봉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장성군 북이면에서 양봉업에 종사하는 이재영씨가 텅빈 벌통을 보여주고 있다. |
2일 한국양봉농협에 따르면 최근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 3182명의 조합원 가운데 78% 이상이 꿀벌 소실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규모를 따지면 전체 사육 규모의 63%에 해당하는 벌이 사라진 셈이다.
해남군에서 양봉을 키우고 있는 김상재(62)씨는 40여년 간 양봉업에 종사 했지만 올해 같은 일은 처음이라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씨는 “보통 지금쯤이면 곧 입춘(2월4일)을 앞두고 월동에 들어갔던 벌들을 깨워 시설 하우스로 보낼 준비를 마쳐야 할 때”라며 “하지만 벌통을 열어보면 벌이 줄어 있거나 아예 없어진 경우도 있어 막막한 심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맘때면 1개 소비에 4000마리 꿀벌이 들어 있어야 한다. 올해는 4000마리는 커녕 3분의1도 못미치는 정도의 벌만 들어 있다”며 “작년에도 갑자기 많은 벌들이 사라지긴 했지만 올해가 좀 더 심각한 상황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에도 절반에 가까운 꿀벌을 잃었던 김씨는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작년에 이어 올해 농사까지 망쳤다는 생각이 든다. 봄까지 지금 상황이 이어진다면 내년 농사는 접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어려운 상황을 털어놨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이어진 꿀벌 개체 수 급감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전문가들은 그 배경에 ‘기후변화’를 꼽는다. 꿀벌이 월동에 들어가는 겨울철 기온이 이전보다 따뜻해져 ‘벌통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올해 국내 꿀벌 전체 봉군 수 270만개 가운데 적게는 50%, 많게는 60~70% 이상의 피해가 예측된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피해 규모의 30% 내외를 한참 웃도는 수치다.
한국양봉농협 관계자는 “현재 전국 각지 양봉농가로부터 피해 현황을 받고 있는데, 지난해 동기 대비 그 건수가 훨씬 많다”며 “현 상황의 원인으로 기후변화 등 복합적인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봉군에 투입된 의약품에 대한 내성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만큼 우선적으로 꿀벌 기생충인 응애 관리를 중점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꿀벌에 피해가 적고 양봉산물에 잔류가 없거나 적은 친환경 꿀벌 동물용의약품 개발이 시급하다”며 “당장 양봉농가의 피해가 극심한 만큼 양봉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 이번 소멸 피해를 시급히 재해로 지정해서 농가를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각성을 인지한 자치단체는 발빠른 대책을 내놓고 있다. 강진군이 지난해 11월 월동 전 피해 조사를 실시한 결과 50% 전후 소실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강진군은 유밀기까지 이상기후 현상이 지속 된다면 봉군 붕괴 현상이 가중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따라 지난해 강진군은 꿀 생산량 급감과 자재값 상승으로 이중고를 겪는 농가들이 최소 생산 기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회생지원금 11억원을 긴급 투입했다. 이번 월동 피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추가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도 곧 사라질 위험에 처한 꿀벌보호를 위한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말 농촌진흥청, 농림축산검역본부 등 관계기관과 함께 ‘월동 꿀벌 피해 대책반’을 꾸렸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상황만 지켜보더라도 지난해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며 “꿀벌 소멸 현상의 경우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 피해 수준을 파악한 뒤 월동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이번 달 말~내달 초까지는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