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84-2> ‘우수 지역업체’…시공능력만 따지고 안전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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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84-2> ‘우수 지역업체’…시공능력만 따지고 안전 뒷전
●안전 없는 지역업체 참여 조례
지역 건설경기 활성화 전국 도입
공사 인·허가권 쥔 지자체 요구에
원청 “강제성 없지만 무시못한다”
‘우수기업’에 화정동 사고 낸 업체
  • 입력 : 2023. 01.08(일) 18:48
  •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
지난해 1월 14일 광주 서구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특수구조대원들이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잔해를 치우러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지역건설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지역업체 시공참여 조례가 부실업체 참여를 유도해 공사현장에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월 발생한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를 일으킨 책임자로 당시 원도급사인 HDC현대산업개발(현산)과 철근콘크리트 골조 하도급사인 A업체 관계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A업체는 콘크리트 타설 공정의 불법 재하도급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광주 소재의 해당 업체는 서구청에서 영업정지나 등록말소 처분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8일 현산 등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0월 화정동 신축아파트 건설과 관련해 광주 서구와 지역전문건설회사 협력업체 참여 양해각서(70% 달성)를 체결했다. 현산은 철근·콘크리트 하도급 계약 당시 내부적으로 등록된 업체 중 광주업체를 우선 배정해 입찰을 실시했고 그 결과 A업체가 선정됐다. 이후 현산은 분기별로 지역업체 참여비율을 서구에 보고해 왔다.

지역건설산업의 공동도급·하도급 비율을 높이는 시공참여 조례는 전국 각 지자체별로 시행 중이다. 지자체는 건설사업자에게 지역건설사업체의 하도급 비율을 70% 이상 달성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광주시에 따르면 주로 공동주택과 같은 대규모 공사의 사업계획승인을 받을 때부터 관할 관청에서 이러한 조례를 언급하며 지역업체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착공 이후에도 연간 2회 대형공사장을 방문해 공정분야별로 분류된 우수지역업체 목록을 배포해 하도급 참여율을 높이도록 권고하는 중이다.

문제는 광주시가 건설사업자에게 배포하는 업체 추천목록(2022년 7월 기준)에 화정동 사고로 기소된 A업체가 기재돼 있을 정도로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광주시의 업체 추천리스트는 국토부에서 매긴 순위에 따라 제작됐지만 그 기준이 ‘시공능력평가액’으로만 돼있어 안전관리능력 여부는 알 수 없다.

결국 해당 조례 때문에 부실시공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 역시 ‘지역업체를 시공에 참여시키는 데 강제성은 없지만, 지자체 권고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종합건설업체 관계자는 “대형공사장에서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온 협력업체를 쓰고 싶지, 잘 모르는 신생업체나 영세업체를 누가 선호하겠나. 조례의 취지는 공감이 가지만 참여율 70%까지 충족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사업의 핵심절차인 인·허가를 해주는 지자체에서 지역업체를 써달라 하는데 이를 안 지키면 승인을 내주지 않는 사례도 발생하는 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건설노동자들도 부실시공과 임금체불 등을 우려해 무분별한 지역업체 시공 참여를 반기지 않는 입장이다. 때문에 일방적인 지역업체 우선입찰을 축소하고 지역경기 활성화를 위한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송성주 전국건설노조 광주·전남지부 사무국장은 “지역업체 중에 기술력이 충분하지 못하거나 자금난을 겪는 곳이 많은데 그중에서 최저가 입찰을 하게 되면 곧바로 부실시공이나 임금체불 등이 발생할 수 있어 민간사업자뿐만 아니라 노동자 입장에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제했다.

송 국장은 이어 “조례의 취지대로 지역경기를 활성화하고 싶다면 대형공사가 많이 이뤄지는 타 지역에서 우리 지역업체가 수주하고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조례가 시행되고 있어 지역 간 입찰장벽이 높아 결국 광주지역의 파이를 수백 개의 업체가 나눠먹어야 하는 실정이다”면서 “안전하고 공정한 공사를 위해서는 조례를 축소시키고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