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군민속씨름단 선수들이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영암군은 영암민속씨름단 운영 존치여부를 놓고 공론화를 진행하고 있다. 영암군 제공 |
민족 스포츠로 1980년대 이만기, 강호동 등 걸출한 스타를 배출하며 전성기를 맞았던 프로씨름이 해가 거듭될수록 추락하고 있다. 대회가 열려도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들만의 스포츠가 돼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행히 영암군과 구례군이 남녀 씨름단을 운영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잇단 선수들 이적과 운영 부실로 존폐 기로에 내몰리는 양상이다.
영암군은 지난 2017년 민속씨름선수단(감독 김기태)을 유치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겠다는 모토로 출범했지만 현재는 부실운영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구례군도 사정은 마찬가지. 재계약 기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간판선수들이 타지역 씨름단으로 하나 둘씩 이적하고 있다. 씨름단을 운영하는 구례군의 미온적 대응도 한몫 하고 있다. 씨름단 측은 기초교육을 통해 자체선수를 발굴·육성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영암민속씨름단, 선수들 잇단 이적
"민속씨름단 존폐를 놓고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타지자체 팀으로 이적하는 선수들이 늘고 있어 여기에서 계속 운동을 해야할 지 고민입니다."
영암 민속씨름단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지난 15일 찾은 민속씨름단 연습장. 선수들이 모래판 위에서 겨루기를 하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영암군은 지난 2017년 민속씨름단을 유치하며 스포츠마케팅을 통한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씨름단 운영을 위해 위원장을 포함한 군의원 2명, 군 소속 공무원 3명, 민간인 10명 등 15명으로 영암군청 씨름단운영위원회를 꾸렸다. 단장은 부군수, 부단장은 업무담당 과장으로 지정해 씨름단 운영 총괄업무 및 단원 지휘 감독을 하도록 조례도 제정했다.
하지만 곳곳에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씨름단장인 부군수와 부단장인 실과 간부 및 팀원들이 예산집행 등 실무를 지휘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사실상 예산집행 기관과 관리감독 기관이 동일하다보니 세부 훈련일지 등 지도관리가 전무한 상태다. 감독이 작성한 훈련일지를 보면 동일한 내용으로 작성됐을 뿐 훈련목표·기록·전반적인 평가기록 등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씨름단 간판인 장성우와 오창록이 내년 1월 MG새마을금고씨름단으로 이적을 공식화 했다. 장성우는 개인 통산 백두장사 8회, 천하장사 2회를 차지했으며 오창록도 개인통산 한라장사 12회를 거둔 핵심전력이다. 주력 선수들이 이적한 데는 민속씨름단 폐지 여부를 놓고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어 뒤숭숭한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영암군은 핵심 선수들의 이적은 선수 개인의 결정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손석채 영암군 스포츠산업과장은 "영암민속씨름단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실업팀으로 선수들이 민간기업 씨름단으로 가겠다는 데 막을 방법은 없다. 계약금과 연봉을 감당할 수 없기때문"이라며 "선수 이적은 개인의 판단일 뿐 민속씨름단 공론화 때문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영암민속씨름단 경제효과 의문
민속씨름단은 그동안 62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올해만 19개(장사 13회·전국체전 금메달 2개·단체전 4회) 우승 타이틀 기록하는 등 자타공인 '국내 최강 씨름구단'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영암군은 민속씨름단 성적을 바탕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운영했다. 지역 특산품인 달마지쌀, 매력한우, 대봉감 등이 TV 중계로 홍보가 돼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줬다고 보고 있다. 영암군은 민속씨름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군민들은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 미미했다는 의구심을 지우지 않고 있다.
민속씨름단이 창단됐던 2017년부터 2021년까지 6년간 관광객 방문율과 특산물 수치를 보면 2017년 12월 기준 관광객 35% 감소, TV 중계로 홍보됐던 지역 특산물 92%, 달맞이 쌀 3% 증가했다.
관광객 감소는 지난 3년간 코로나19 이후 축제 취소·연기 등에 따른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농특산물 판매 증가 역시 코로나19 영향 덕택으로 추정된다.
군에서는 민속씨름단 창단 6년 동안 지역 인지도 제고와 농·특산물 홍보 등 지역경제에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공론화'를 통해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결국 영암군 민속씨름단은 '군정 홍보 첨병'과 '혈세 낭비'로 의견이 양분되며 존폐 기로에 섰다.
3년 전 조례 개정을 통해 씨름단 설치 유효기간 규정을 삭제한 영암군은 민선 8기 들어 다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씨름단 운영의 지속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영암군은 민속씨름단 존치 여부 결정을 위해 전문수행기관을 선정할 계획이다. 설문조사와 군민참여단 토론 등을 거쳐 오는 12월 말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민속씨름단 운영 공론화는 전문수행기관을 선정하고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한 뒤 운영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공론화 위원회는△민속씨름단 운영 찬성 또는 반대 의제 설정 △군민참여단 구성 종합토론회 마련 △공론화 시행 및 결과 발표 등을 맡는다. 1차 표본(설문·인식) 조사, 군민참여단 구성 및 최종 권고안 도출 등 절차를 거친다.
손석채 영암군 스포츠산업과장은 "민속씨름단 운영 공론화를 위해 광주시와 목포시 등 타 지자체 사례를 벤치마킹 할 예정"이라며 "공론화를 통해 민속씨름단 운영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군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보겠다"고 말했다.
●구례 선수단 잇단 이적에 사기 저하
"재계약이 늦어지면서 스타 선배 4명이 좋은 조건으로 팀을 옮겼습니다. 모래판에서 부대끼던 때가 그립습니다."
7명의 여자 선수들로 구성된 구례군반달곰씨름단 소속 한 선수의 푸념이다.
지난해 구례군반달곰씨름단에서는 7명 중 4명이 타 지자체로 옮겼다. 이적 선수는 △이연우(화성시청) △양윤서(영동군청) △김지한(괴산군청) △김다영(괴산군청) 등이다. 이적한 4명 모두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반달곰씨름단을 알리는데 일조했던 간판급 선수들이다.
이연우는 1위 1회, 2위 3회, 3위 1회를 기록했으며 양윤서는 1위 5회, 2위 2회의 성적을 냈다. 2위를 거둔 바 있는 김지한은 현재 부상 재활 중이며 김다영은 1위 1회, 2위 1회, 3위 2회 입상했다.
선수들의 잇단 이적 요인은 '늦은 재계약 방식'을 꼽는다.
타지자체 팀으로 이적한 B 선수는 "반달곰씨름단의 경우 군에서 관리하다 보니 재계약 시기가 매년 11~12월로 늦어지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선수들 모두 먼저 영입 제의를 하는 곳으로 떠나는 게 현실이다. 늦게까지 미루다가 자칫 계약이라도 안된다면 선수생활도 끝날 수도 있지 않겠느가"라고 말했다.
반달곰씨름단은 지난 2011년 9월 전국 최초 여자 첫 1호 실업팀으로 창단됐으며 그동안 스포츠산업과에서 운영·관리해 왔다. 성적도 늘 앞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 대통령기 전국장사씨름대회에서 체급 전 매화급과 국화급을 석권한 바 있다.
주력선수 잇단 이적에 대해 구례군측 역시 선수 개인의 선택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용헌 구례군 스포츠산업과장은 "4명의 이적 사유는 고향 인근 지역인데다가더 많은 연봉을 제시해 떠나게 됐다. 전국대회 출전 등을 고려해 행정상 재계약 시기를 조절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선수 개개인의 판단을 막는 건 어렵다"며 "지난해 4명이 이적했지만 올해 3명을 영입해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례군 "자체선수 발굴·육성"
간판선수 이적으로 반달곰씨름단의 전력저하가 우려 됐지만 자체 선수육성으로 반전을 꽤하고 있다.
반달곰씨름단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선수를 발굴, 육성하고 있다. 올해 초 구례 자연고 학생 여자선수 3명을 발굴해 지도하고 있다. 구례 지역 초등학교 3곳을 대상으로 씨름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씨름에 재능있는 선수들을 발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김송환 구례반달곰씨름단 감독은 "남자 씨름의 경우 초등생 때부터 육성되는 반면 여자씨름은 고등학교 체육교사의 권유로 씨름에 입문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며 "여자씨름 선수층이 탄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선수를 발굴해 키워가는 게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본기가 갖춰진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 대회의 질도 더 높아진다"며 "지금은 씨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할 시기다. 이기는 씨름이 아닌 기초를 다지는 교육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