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근 조합장 |
추석을 앞둔 전국의 들판에는 고개 숙인 벼가 수확을 기다린다. 우리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이 있다. 인품이 높은 사람일수록 겸손함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느낌이 다르다. 마치 '풍년'인데 '흉년보다 못한' 상황에 직면한 농업인의 탄식에 다 익은 벼들이 고개를 숙인다는 말로 들린다. 쌀값이 45년 만에 최대치로 폭락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 그런데 쌀값만 역주행하고 있다. 급기야 벼랑 끝에 선 농업인들은 한 해 동안 피땀 흘려 키운 자식 같은 벼를 갈아엎었다. 만장을 들고나와 삭발하며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한 FAO(세계식량기구)는 세계가 기후변화와 팬데믹 등으로 식량 위기가 임박했음을 경고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식량 공급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식량자급률이 20.2%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이다.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 식량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밀 가격이 80% 이상 폭등해 국내 식자재 가격도 치솟고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쌀값 폭락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쌀 공급 증가다. 작년 2021년 쌀 생산량은 388만 톤, 소비는 361만 톤으로, 27만 톤이 남았다. 전국 RPC(미곡종합처리장)에는 누적 131만 톤의 재고가 쌓여 있다. 둘째, 우리나라는 TRQ 물량 41만 톤을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년 감소하는 쌀 소비도 결정타이다. 1991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16.3kg이었으나 2021년 말에는 56.9kg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변동직불제를 대신해 시장격리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올해 3차에 걸쳐 37만 톤의 쌀을 격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쌀값 하락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공매하여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꼴이 되어 버렸다. 이에 추가적인 시장격리가 필요하다는 농업인들의 요구에 정부는 시장격리가 쌀에만 너무 많은 특혜를 주는 제도이며 예산이 낭비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공기의 가격은 136원에 불과하다. 편의점 즉석밥 1개 2,100원,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값 4,500원에 비교하면 말문이 막힌다. 육류 소비는 매년 늘어나 지난해 말 1인 연간 소비량이 55.9kg로 56.9kg인 쌀과 올해 안에 역전이 확실시되고 있다. 배달앱 '배달의 민족'에 따르면 MZ세대의 간식 주문 순위 1위는 아메리카노, 40대와 50대에서 1위는 짜장면이다. 전 세대 간식 순위 10위 안에 김밥조차 설 자리가 없다. 쌀이 주식이란 말이 무색하게 되었다.
쌀은 국민건강 증진에 분명 도움이 된다. 가족 중에 밀가루 음식을 먹기만 하면 배탈을 하는 식구를 위해 간단한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 그릇에 우리밀과 수입밀을 따로 넣고 놓아두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우리밀에서는 유충이 생기고 며칠 후 벌레가 날아다녔다. 이후 벌레를 수입밀로 옮기고 투명 덮개를 덮고 관찰했다, 벌레는 수입밀을 먹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 이것은 밀이 수입하기까지 각종 농약, 제초제, 방부제, 표백제, 착색제 등 우리 몸에 해로운 화학물질로 뒤범벅됨을 보여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시중에 유통되는 빵을 서랍 속에 넣고 한 달이 지나 발견했을 때 전혀 부패하지 않은 빵을 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벌레도 먹지 않는 수입밀이 우리 몸에 얼마나 해로운지 모른 채 매일 먹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소비 확대를 위해 밥쌀용을 가공용(분질미)으로 전환해 밀가루를 대체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밀가루 제품 1kg의 가격은 수입밀은 1,880원, 우리밀은 3,640원이다. 쌀가루는 5,480원이다. 물론 가격도 가격이겠지만 이미 밀가루 맛에 익숙해진 소비자의 입맛을 대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농협도 쌀 소비 확대를 위해 품질을 개선하고 유기농으로 재배된 '거북선에 실린 쌀' 하이아미를 생산해 지역학교와 기관에 공급하고 우리 지역 쌀 먹기에 나서고 출향 인사들에게 고향 쌀 먹기 운동을 전개하는 등 쌀 소비 증진에 안간힘을 써 보지만 역부족임을 절감한다.
최근 물가상승은 매우 가파르다. 이러한 시국에 쌀값이라도 떨어지면 장바구니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쌀값 폭락에 따른 피해는 결국 국민 모두의 몫이다.
평생을 고개 한 번 못 들고 살아온 농업인들은 쌀값 폭락으로 절망 속에 추석을 맞이해야 한다. 정부는 쌀값 안정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농업인의 눈물을 닦아 줘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모든 국민이 쌀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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