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중현> 안전핀 하나 뽑는 것도 디테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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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기고·고중현> 안전핀 하나 뽑는 것도 디테일이 있다
고중현 광주 남부소방서 119재난대응단장
  • 입력 : 2022. 05.02(월) 21:06
  • 편집에디터
고중현 단장
영화 '타짜'가 개봉한 지 벌써 16년이나 되었다. 십수년이 지났음에도 어제 본 것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까지도 여러 매체에서 회자 되는 수많은 명장면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최고로 손꼽는 장면은 단연 주인공 '고니'가 '아귀'와의 절체절명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아귀의 손목을 날리는 장면이지만, 소방관으로서는 오히려 그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이 더욱 흥미롭다. '고니'는 '아귀'의 손목을 날려버린 후 도박 수익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폐 무더기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데, 이를 본 '정 마담'은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시도하지만, 안전핀이 뽑히지 않아서 소화기를 땅에 던져버린다.

소화기의 사용법은 다음과 같다. 안전핀을 뽑고 노즐을 잡은 후 불에 가까이 이동하여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분말을 골고루 쏘면 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소위 알아주는 명문대를 나온 '정 마담'이라 할지라도 소화기 안전핀 하나 제대로 뽑지 못할 수 있다. 소화기 사용법 보급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내용을 간소화하다 보니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과 관련하여 외국 격언 중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말이 있다. 풀이하자면 세부 사항에 소홀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그런즉 안전핀 하나 뽑는 것에도 준수해야 할 디테일이 있다. 안전핀을 뽑을 때는 소화기를 바닥에 놓고 몸통을 왼손으로 누르고 오른손으로 뽑거나, 소화기 몸통을 왼팔로 감싸 안고 오른손으로 안전핀을 뽑아야 한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소화기 손잡이를 움켜쥐고 안전핀을 뽑으면 안 된다는 것인데, 소화기의 구조상 손잡이를 움켜쥔 채로는 손잡이가 눌리지도 않고, 안전핀이 뽑히지도 않게 된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라고 했다. 한 문장짜리 소화기 사용법을 안다고 해서 확실히 아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까지 확실히 아는 것이,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곤경에서 구해내는 길이 될 것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