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임란 '첫 의병장' 월파 유팽로 '愛國' 깃든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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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임란 '첫 의병장' 월파 유팽로 '愛國' 깃든 마을
곡성 합강||유팽로, 호남연합의병 출범||금산전투서 고경명과 순절||일본군 호남 진입 차단하고||이순신 수군 전세 역전 토대||||마을 앞 흐르는 옥과천과 ||순창의 섬진강 물이 만나는||배산임수… 풍수지리 명당
  • 입력 : 2022. 01.27(목) 15:10
  • 편집에디터

마을의 담장 벽화. 유팽로의 창의를 주제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돈삼

'합강(合江)'이란 지명이 여기저기에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를 가리지 않는다. 두 갈래 이상의 물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형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 한 곳이 곡성 합강이다.

마을을 옥출산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옥과천과 순창에서 흘러 내려온 섬진강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배산임수의 지형 그대로다. 마을 앞들에 있는 둥글고 작은 독메산의 이름을 따서 '도리산(道裡山)'으로도 불린다. 옥과군 수대곡면, 창평군 수면을 거쳐 지금은 '골짝나라' 곡성군의 옥과면에 소속됐다.

예부터 산과 물이 만나면 음과 양이 모이고, 음양이 어우러지면 생기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 자리가 명당이라는 얘기다.

곡성 합강은 의미가 더 깊다. 군계(郡界)이면서 도계(道界)에 해당된다.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과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의 경계를 이룬다. 마을주민들이 날마다 도계를 넘나든다.

산 깊고 물 좋은 마을에 빼어난 인물이 없을 리 없다. 월파 유팽로(1554∼1592)다. 유팽로는 임진왜란 때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 금산전투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성균관에 머물던 유팽로는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바로 의병을 일으켰다. 동래성이 일본군한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달려갔다. 그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시야가 좁은 탓에 일상이 불편했지만, 의병으로 나서는 데에 1분 1초도 주저하지 않았다.

유팽로는 고향으로 가는 길목, 순창읍성 앞에서 수백 명의 장정들을 만났다. 고을을 통째 일본군에게 바쳐 상금을 받으려던 무리들이었다. 유팽로는 이들을 달래고 설득해 의병의 깃발을 같이 들었다. 4월 20일이었다.

옥출산 자락의 창고에 숨겨둔 병기와 군량미도 꺼냈다. 일본군의 침략을 예견한 유팽로가 마련해 둔 것이었다.

'전라도의병 진동장군(鎭東將軍) 유팽로'라고 쓴 대청기를 높이 든 군사는 임진왜란의 첫 의병이었다. 최초 의병장으로 알려진 홍의장군 곽재우보다도 이틀 빨랐다. 유팽로는 의병을 동악산 청계동에서 훈련시켰다. 이종사촌 형인 남원의 양대박도 이때 합류했다.

도산사, 월파 유팽로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돈삼

유팽로는 전라도의 다른 의병장들과 힘을 합쳐 담양 추성관에서 호남연합의병을 출범시켰다. 의병의 숫자가 600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연합군이었다. 총대장에 고경명을 추대하고 유팽로는 좌부장, 양대박이 우부장을 맡았다. 이름하여 '담양회맹군'이다.

6월 11일 담양을 출발한 호남연합의병은 크고작은 싸움에서 이기며 북쪽으로 달렸다. 곡창지대를 염두에 두고 전주 침공을 준비하던 고바야카와군 본진을 금산성에서 맞닥뜨렸다. 1차 금산전투다.

이 싸움에서 유팽로는 고경명 등과 함께 순절했다. 그의 나이 39살이었다. 유팽로는 고경명, 김천일과 함께 '호남 3창의'로 불린다.

금산전투에서 호남의병은 큰 희생을 치렀다. '조선왕조실록'(선조 수정실록)은 유팽로와 고경명의 최후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정렬각. 충신 유팽로와 열부 원주김씨를 기리는 정려가 모셔져 있다, 이돈삼

'종사관 유팽로는 말이 건장해서 먼저 나가다가 그의 종에게 '대장은 모면하였는가?' 물었고, '아직 못 나왔다'는 얘기를 들은 그는 급히 말을 채찍질하여 어지러운 군사들 속으로 들어갔다. (…중략…) 고경명이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말을 달려 빠져나가라'고 하였다. 유팽로는 '어떻게 대장을 버리고 살기를 구하겠는가?'라며 안영과 고경명을 보호하다가 적중에서 함께 전사하고…."

금산전투를 분기점으로 호남에서 의병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호남을 차지하려는 일본군의 계획도 무산됐다. 호남의병의 창의와 희생은 임진왜란의 흐름까지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이순신이 바다에서 맘놓고 싸워 이길 수 있는 토대도 제공했다. 그 선봉에 유팽로가 있었다.

합강마을에 유팽로를 모신 사당 도산사가 있다. 유팽로가 나고 자란 자리에 들어섰다. 충신 유팽로와 열부 원주김씨에게 임금이 내려 준 정려도 여기에서 만난다. 부인 원주김씨는 남편의 시신을 거두고 자결했다. 유팽로의 묘는 남원시 대강면 직동마을 앞산에 있다.

마을 담장에는 유팽로를 주제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의병을 일으키는 유팽로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금산에서 달려온 그의 애마, 옥출산 앞들에서의 군사훈련, 절의를 지킨 부인 원주김씨, 금산전투와 유팽로 등에 대해서도 그려져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지난 2006년 '참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 때 받은 상금(1500만원)으로 그렸다고 한다. 마을이 유팽로 역사촌을 연상케 한다.

벽화로 만나는 의마. 금산에서 유팽로의 목을 물고 내려온 이야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돈삼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입면 송전리에 '의마총(義馬塚)'도 있다. 말 모형과 함께 커다란 묘가 만들어져 있다. 유팽로를 태우고 온 애마의 묘다. 말이 유팽로의 목을 물고 300리를 달려와 장사를 치르게 한 다음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을사람들이 충직한 말을 기려 조성했다고 한다. 1986년 옥과면 유림들이 말 무덤을 보수하고 비석도 세웠다. 유팽로와 부인은 물론 그의 애마한테도 예우를 다하고 있는 마을, 곡성 합강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