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다산이 사랑했던 정원 되살린 '달빛 아래 마을'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다산이 사랑했던 정원 되살린 '달빛 아래 마을'
강진 월하마을||월출산 옥판봉 남쪽에 위치||다산 정약용이 초의선사에||'백운동도'를 그리게 한 뒤||시와 엮어 '백운첩' 완성||강진군, 자료 토대로 복원||귀농·귀촌인 늘어 전원마을로||'민박·체험' 푸소 프로그램도
  • 입력 : 2021. 12.30(목) 16:20
  • 편집에디터

겨울날 월하마을 풍경. 귀촌인과 외지인들이 늘면서 전원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이돈삼

코로나19와 함께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날마다 부산했던 마음도 조금은 차분해진다. '남도답사1번지' 강진으로 간다. 월출산 자락에 자리한 월하마을이다. 백운동정원과 강진차밭으로 조금은 알려진 마을이다.

마을과 백운동정원은 국립공원 월출산의 옥판봉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속한다. 백운동정원은 담양 소쇄원, 완도 부용정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꼽힌다. 문화재청에 의해 명승으로 지정됐다.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일반적으로 정원은 마을과 적당히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숲속에 들어앉거나 계곡을 낀다. 대나무와 동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곳도 있다. 백운동정원은 숲속 계곡을 끼고 있다. 원래의 모습을 잃고 사라졌던 것을, 자료를 토대로 복원했다.

백운동정원은 월출산 아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월출산 자락의 드넓은 차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서 만나는 동백숲속이다. 마을에서 멀지 않지만, 마을과 완연히 구분되는 게 특징이다.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백운동(白雲洞)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돼 구름으로 올라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고려 때 백운암이 있던 자리에 원주 이씨 이담로(1627~1701)가 처음 지었다. 호를 '백운동은(白雲洞隱)'으로 쓴 걸로 봤을 때 은거하는 삶을 즐겼던 것으로 짐작한다. 1692년 전후 여기에 들어와 정원을 경영하며 거문고와 서책을 홀로 즐겼다고 한다.

이담로가 살던 집은 백운동에서 6㎞가량 떨어져 있다. 지금의 성전면 금당리다. 이담로는 손자 이언길과 함께 20여 년간 원림을 일궜다. 이담로가 백운동을 지은 연유와 풍광을 적은 글이 <백운세수첩>에 전해지고 있다.

'백운동은 월출산의 옛 백운사 아래 기슭에 있다. 앞쪽으로 석대가 있어 올라가 굽어볼 수 있고, 뒤로는 층층바위가 옥처럼 서 있다. 소나무와 대나무에 덮인 길은 희미한데, 맑은 시내에 어리비친다. 이 시냇물을 끌어와 아홉 구비를 만들었더니, 섬돌을 타고 물소리가 울린다. 냇가 바위 위에 백운동(白雲洞)이란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실제, 냇가 바위에 '白雲洞'(백운동)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하얀 눈이 내린 뒤여서 글자도 더 선명해졌다. 이 표지석을 토대로 백운동정원의 위치가 확인됐다. 다산 정약용이 쓴 <백운동 12경>과 초의선사가 그린 <백운동도>를 토대로 강진군에서 복원했다.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인으로 살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도 백운동을 찾았다. 다산은 1812년 가을 제자들과 월출산에 갔다가 백운동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산은 초당에 돌아와서도 백운동의 아름다운 풍경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다산은 <백운동 12경>이라는 시를 지었다.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자신이 쓴 시와 함께 <백운첩>으로 엮었다. 다산은 유배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백운동을 잊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운동은 선비들이 문화를 교류하며 풍류를 즐기던 정원이었다. 정약용, 초의, 이시헌 등이 차를 만들며 즐겼다. 백운동이 우리나라 차 문화의 산실로 불리는 이유다. 안뜰에 계곡물을 끌어들여 만든 구불구불한 물길에 술잔을 띄우고 술을 마시는 유상곡수(流觴曲水)의 흔적이 보인다. 술잔 대신 댓잎으로 만든 배를 띄워본다.

백운동정원 전시관도 들어서고 있다. 정원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변이다. 정원의 조성 배경과 역사, 조형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질 지상 1층, 지하 2층 규모의 전시관이다.

강진차밭. 월출산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돈삼

강진차밭. 월출산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돈삼

강진차밭. 월출산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돈삼

강진차밭. 월출산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돈삼

강진차밭. 월출산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돈삼

백운동정원 인근에 태평양에서 운영하는 차밭도 있다. 월출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10여만 평의 차밭이다. 기암괴석의 산과 어우러져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잠시 마스크를 벗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호흡하기에 좋다. 입장료도 따로 없어 더 좋다.

차밭을 가로지른 길이 월하마을로 이어진다. 산새 소리가 동행하며 발걸음을 고샅으로 이끈다. 돌담에 올라앉은 사위질빵의 마른 꽃잎이 겨울바람에 가붓가붓 흔들린다. 마당에 비치는 겨울햇살이 다사롭다.

농악벽화. 어깨가 절로 들썩이면서 발걸음까지도 가볍게 해준다. 이돈삼

농악벽화. 어깨가 절로 들썩이면서 발걸음까지도 가볍게 해준다. 이돈삼

농악벽화. 어깨가 절로 들썩이면서 발걸음까지도 가볍게 해준다. 이돈삼

농악놀이를 주제로 한 담장 벽화도 정겹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달 상징 조형물도 눈에 들어온다. '달 아래 첫 동네'라는 별칭에 걸맞게 넉넉함이 배어나는 골목이다.

월하리는 월하(月下), 안운(安雲), 죽전(竹田) 등 3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마을이 월출산 남쪽에 있다고 '월하'다. 안운은 월출산 아래 따뜻한 자리에 들어섰다고, 죽전은 마을을 둘러싼 대밭이 있었다고 이름 붙었다.

고향에서 살겠다고 다시 돌아온 귀촌인들이 많다. 풍경과 인심에 반해 들어온 외지인들도 꽤 된다. 군데군데 새집이 들어서고 지어지면서 전원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가까이에 달빛한옥마을도 있다. 하룻밤 묵으면서 농촌을 체험하는 '푸소(FU-SO)'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한영 차문화원도 있다. 1920년에 백운옥판차를 선보인 이한영(1868~1956)의 차를 잇고 있다. 이한영은 다산 정약용의 제자였던 이시헌의 후손이다.

무위사 풍경.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아름다움이 배어있는 절집이다. 문화재가 많아 '보물창고'로 통한다. 이돈삼

무위사 풍경.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아름다움이 배어있는 절집이다. 문화재가 많아 '보물창고'로 통한다. 이돈삼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무위사도 호젓하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가 '세상에 이처럼 소담하고 한적하고 검소하고 질박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소박함은 가난의 미가 아니라 단아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고 썼던 그 절집이다. 문화재가 많아 '보물창고'로 통한다.

국립공원 월출산 자락의 역사와 문화, 사람과 자연을 두루 만날 수 있는 마을, '달 아래 첫 동네'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백운동정원의 경계에 들어있는 옛집. 동백나무와 어우러져 '백운초당'으로 불린다. 이돈사

백운동정원의 경계에 들어있는 옛집. 동백나무와 어우러져 '백운초당'으로 불린다. 이돈사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