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문화담론·이재욱>소확행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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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 문화담론·이재욱>소확행의 역설
이재욱-만렙백수 협동조합
  • 입력 : 2020. 07.09(목) 13:03
  • 편집에디터
이재욱 만랩백수 협동조합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소확행은 몇 년 전부터 청년층 사이에서 당연하게 쓰이는 단어이다. 소확행은 80년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에서 처음 등장하여 30년이 지나 한국에 안착했다. 막 구운 빵을 손으로 뜯어먹는 것, 반듯하게 갠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등 무라카미는 이렇게 소확행을 표현했다.

삶 속에서 조금씩 행복을 찾아 나가라고 하는 소확행은 경쟁과 일상에 지친 한국인들의 상황과 잘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소확행은 청년층에게 잊고 지내던 일상 속의 행복을 상기시켜주는 기분 좋은 단어가 되었다.

소확행 이전에 욜로(YOLO)가 있었다. 한 번뿐인 인생 마음껏 즐기자는 의미의 욜로도 청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그러나 욜로 하다가 골로 간다는 등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자 자정작용을 거치게 되었다. 소확행도 본인의 행복을 강조하는 욜로의 가치관을 담고 있지만 '소소한 행복'이라는 포장으로 비판을 피해가고 있다. 자신의 실체를 교묘히 가리고 서서히 스며드는 '소확행'을 욜로보다 더 경계해야 한다. 나쁜 것인지 알 수 없게 나쁜 것이 제일 위험하다.

소확행은 청년들에게 타협하는 삶을 강요한다. 소확행이라는 단어에 길든 청년들은 본인의 불편한 현실을 개선하기보다는 타협하며 합리화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소확행은 본인의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논거를 아름답게 강화해준다. 소소하게 행복을 찾는 것, 가난하지만 만족하며 사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라고 착각하게 한다.

아기돼지 삼 형제에서 첫째가 지은 집을 기억하는가? 늑대의 숨 한 번으로 날아간 지푸라기 집은 마치 소확행의 모습 같다. 첫째 돼지처럼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닥칠 문제와 스트레스를 알고서도 소확행 속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위로하며 안심한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유혹적이고 달콤하다. 그 달콤함은 당장 우리를 괴롭히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듯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스트레스 여전히 남아있다.

현재 삶에 만족하고 사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경계해야 할 것은 소확행 같은 새로운 가치관이 이상적인 삶의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힐링에서 욜로로 욜로에서 소확행으로 이어지는 가치관의 변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소확행과 워라밸 등 수없이 생성되는 새로운 키워드에 항시 경계하고 안분지족과 칠전팔기의 가치관 사이에서 현명한 저울질을 해야 한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