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연권 색향미야생화연구소장. |
군민들이 비장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 4월 11일 권향엽 국회의원, 김순호 군수, 장길선 의장, 김창승 서시교대책위원회 상임대표 등이 구례군의회 광장에서 성명서 발표와 함께 서시교 지키기 1만 명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서시교는 구례군민의 다리다. 철거하거나 3m 이상 숭상할 이유가 없다. 서시천에 소급 적용한 하천 기본계획을 재조정하라” 주장하며 정부를 규탄하였다. 서시교대책위원회 중심으로 1만 명 서명을 받아 국정감사와 국가권익위원회 중재를 신청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창승 상임대표가 “발이 백 개라도 부족하고 손이 천 개라도 아쉽다”고 서명운동을 부탁하였다. 부끄러웠다. 소극적이고 관망만 해서는 죄인이 되겠구나 싶었다. 주변 군민부터 서명받기 시작했다. 우체국 등 공공기관도 방문했다. 장사로 바쁜 상인들을 위해 가게를 찾았다. 서시교 존치에 대하여 설명하고 서명을 요청했다. 모두 흔쾌히 서명하며 힘을 실어줬다. “서시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지요” “마을에서 서명했습니다” “며칠 전 5일 장에서 서명했는데 아직 만 명이 못 되었는지요?” 걱정스럽게 묻는 분도 있다. “서시교는 생업의 다리인데 빙 둘러서 가라 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등 서시교 철거에 반대에 입을 모았다. 민심이 천심이라 했거늘 민심이 흉흉하다.
하천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해 서시교를 3m 이상 숭상이나 우회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익산국토관리청·영산강유역환경청 입장이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게 국가가 할 일이다. 백번 천번 맞는 말이다. 현 방안이 맞다 확신한다면 군민들을 설득하고 수긍할 수 있도록 절차를 밟아 나가야 한다. 반대가 심해도 먼 미래를 보고 실행해야 한다. 그게 정부의 책무다. 국가에서는 과도하도록 안전을 강조하고 군민들은 생활의 편리성을 원하고 있어 접점을 찾기 어렵다. 애먼 구례군 관계자들만 군민과 정부 사이에서 고전분투하고 있다.
군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투쟁에 나섰다. 토목공학 교수와 전문가를 찾아 자문결과 현 위치에서 1m 미만 숭상이나 존치 등 대안을 제시했다. 지난해 103일 동안 아침마다 서시교 다리에 나와 존치를 호소하던 할머니들의 눈물이 말라버렸다. 공청회도 두 번이나 가졌으나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서로의 주장이 다르고 견해차가 커 답답하고 안타깝다.
법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고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하는 공동생활의 기준이다. 하천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이란 말인가. 하천법이 완전무결한가 살펴봐야 한다. 군민 생활에 부합되지 않는 법을 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몇 번을 반문해 본다. 법의 위력 앞에 굴복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수해의 원인을 강우량에만 보고 둑과 다리를 높인 것은 도둑이 오지 말라고 담만 높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섬진강댐과 주암댐 수위 조절을 AI 시스템 구축으로 운영하고 준설작업 등 다른 대책은 정녕 없다는 것인가.
관청(官廳)은 백성의 소리를 잘 들으라는 곳이다. 들을 청(聽)은 ‘귀(耳)’로 ‘임금(王)’에게 말을 듣듯이 잘 들으라는 의미고 ‘열(十)’과 누운 ‘눈(目)’은 열 개의 눈으로 살피라는 의미다. ‘한(一)’과 ‘마음(心)’은 한마음으로 백성의 이야기에 공감하라는 뜻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7조에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구례군민들이 원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인데 본인들이 편하고 책임지지 않는 일만 하려고 한다. 군민의 말을 외면하고 있다. 아니다.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법대로 하겠다는 변명만 하고 있다.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공무원들은 자리를 옮길 때까지 문제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정부 고위관료들과 공무원들은 물러나면 그만이나 군민들은 평생 이곳에서 살아간다. 자손들도 마찬가지.
구례군민들은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 1963년 1만 가구에서 10원씩 10만 원을 모금했다. 현재 가치로 1천만 원 정도다. 1967년에도 20원씩 20만 원을 모금해 투쟁경비로 사용하여 1967년 12월 29일 제1호로 지리산국립공원을 지정받았다. 이러한 정신은 지금 서시교 지키기 1만 명 서명운동에서 발휘되고 있다.
서시교대책위원회는 구례 5일 장, 행사장과 읍면 이장 회의를 찾아 호소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낮이고 밤이고 달려갔다. 공공장소, 약국 등 27개소에 서명지를 비치하였다. 온라인 폼도 개설하여 향우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이제 9부 능선을 넘어 조금만 더하면 목표달성이 될 것 같다.
서시교는 하루에 6000대 차량이 이동하는 교통 요충지다. 투쟁이나 거래 대상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이어주는 연결선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대화로 같이 살아가는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우문현답’의 지혜를 빌려보자. 서시천과 섬진강 현장에 답이 있다. 명쾌한 해답이 있을 것이다. 서시교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길 간곡히 바란다. 전문가들의 세밀하고 냉철한 분석을 바탕으로 군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하천법을 개정하여 주기를 고대한다. 진정한 소통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상생 협력의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