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 이하곤과 강진 백운동 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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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담헌 이하곤과 강진 백운동 원림
박주성 글로벌평화연구소장·정치학 박사
  • 입력 : 2020. 04.22(수) 13:44
  • 편집에디터
2019년 3월 11일 '강진 백운동 원림'이 명승 제115호로 지정됐다. 은일 선비들은 백운동 원림, 소쇄원과 같이 별서를 짓고 심신을 수양했다. 차,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 오동나무 등을 심고 곡수에 술잔을 띄워 시를 짓고 차를 마셨다. 신선이 머문다는 정선대(停仙臺), 봉황 같은 이를 기다린다는 대봉대(待鳳臺)와 같은 정자를 짓고 성리를 명징하며 제월지도(霽月之道)을 궁구했다.

필자는 지난해 백운동 원림을 두번 찾아갔다. 여름에는 봉사단체 회원들과 방문해 가야금 연주를 들으며 차를 마셨다. 가을에는 국제학술회의를 끝내고 회원들과 찾았는데 담벼락의 빨간 홍시, 유상곡수, 아담한 정원과 월출산 풍경에 반한 여교수님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소녀 감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조선말에는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가 이곳을 찾아 경치를 감상했다.

그러나 더 일찍 이곳을 찾아 시를 쓰고 여행기를 남긴 선비가 있었으니 바로 담헌(湛軒) 이하곤(李夏坤·1677-1724)이다. 문무를 겸비한 그는 한양 권문세가 자제로 진사시에 장원을 하기도 했다. 당시 엽관의 세태를 염오하며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을 주유하며 다수의 여행기를 남겼는데 그 중 하나가 학술적 가치가 높은 남도여행기 '남유록(南遊錄)'이며 필사본이 전남대 고서실에 소장돼 있다. 담헌은 장인 송상기가 강진에 유배를 가게 되자 장인을 위로할 겸 남도여행을 기획했다. 몇 년 전 낙향한 진천 초평리를 떠나 1722년 10월13일 청주에서 발정(發程)한 그는 연산, 여산, 삼례, 전주, 금구, 김제, 태인, 천원을 지나 11월4일 장성에 도착했다. 5일에는 무등산과 나주, 6일에는 강진에 도착해 장인을 여러 차례 찾아뵙고 위로했다. 강진의 만덕사와 세심암, 백양촌, 남당촌, 청조루와 장흥의 보림사, 공북루와 진남루, 부춘정, 천관산과 각 절, 해남의 녹우당, 대흥사를 방문했다. 7년 전 윤두서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흉금을 터놓고 사귀었던 그는 공재의 기일 10일전에 녹우당에 들러 공재의 아들 윤덕희와 만나 유작화첩을 감상하고 이를 시로 남겼다.

강진에 머물며 주위를 여행하던 그는 당시 강진에 대해 '강진 땅은 비옥하여 살기좋고 가을에는 수확이 풍성하네, 사람들은 모두 제주말을 타고 출입하며 상에 오르는 음식은 주로 덕진 숭어라네'라고 평했다. 11월27일 귀로에 오른 담헌은 백운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담헌은 백운동 원림에 대해 "병영에서 15리 가면 월남마을에 이르게 되는데 월출산 남쪽에 있어서 월남이라 한다. 옛날 월남사가 있어 제법 승경이었으나 지금은 폐허가 돼 일반인이 살고 있다. 여기서 서쪽으로 5리를 가면 백운동이 있는데 승정원 정자(正字) 이언렬의 별장이 있다. 도착하니 동네 구릉은 아늑하고 깊으며 동백나무가 많은데 바야흐로 붉은 동백꽃들이 만개하였다. 정원 가운데 계곡의 물을 끌어들여 구비 돌아가는 곡수를 만들어 놓았다. 대개 지난날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던 곳이었으나 언렬이 죽은 후 폐허가 되었다. 남쪽에 작은 언덕이 솟아있고 큰 소나무를 줄지어 심어 놓았다. 소나무 아래에 단(지금 停仙臺·정선대)을 만들어 놓아 그곳에 앉아 월출산 구정봉의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으니 더욱 기이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담헌은 원림에 들어가 두루 구경한 후 적적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백운동에 말 멈추고 대문 들어가니 정원에는 소나무 가득 차 있네(駐馬白雲洞 入門松滿庭)/동백꽃 흐드러진 나무 잔설 쌓였는데, 주인잃은 숲속 정자만 외롭네(花開餘雪樹 人去獨林亭)/곡수가 그친지 그 몇 해던가? 쓸쓸한 대나무 숲은 홀로 푸르른데(曲水何年廢 脩篁只自靑)/퇴락한 단 지팡이 짚고 올라서니 마음속 심회 더욱 쓸쓸 할 뿐이네(古壇來拄杖 幽意更冷冷)'.

이제 백운동 원림이 명승으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많은 예술인과 지식인들이 모여 남도의 예술을 즐기고 고학(古學)을 토론하는 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