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제기됐던 '1980년 5월 광주의 참극의 배경에는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있었다'는 주장이 38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여러 정황들을 통해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에 제기된 내용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10·26사건 직후 '다단계 쿠데타'를 꾀한 신군부가 민중세력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과정에서 광주를 최적지로 택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광주 사전기획설'이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지난 8일 광주 동구 기록관 다목적강당에서 '5·18 광주는 기획되었나'를 주제로 광주정신 포럼을 열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전두환 신군부의 정권찬탈 과정에 대해 "당시의 정치사회적 조건상 독특하게 12·12에서 5·17에 이르는 상당기간에 걸친 '다단계 쿠데타'라는 특수성을 보인다"며, 이를 5단계로 설명했다.
손 교수에 따르면 신군부는 △1단계(79.10.26~12.12) 군 장악 사전모의·준비 △2단계(79.12.12~80.4.14) 군 장악 뒤 권력구조 재편 △3단계(80.4.14~5.17)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 겸임 기점으로 행정부 전반 장악 △4단계(80.5.17~5.27) 비상계엄 확대·무력으로 민중세력 굴복 △5단계(80.5.27~8.27) 실권장악 뒤 유신헌법에 의해 대통령 추대 등의 과정을 보인다.
손 교수는 "신군부의 권력장악이 다단계 쿠데타라면, 그것은 80년 5월 광주가 우연히 터져나온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는 정권을 장악, 억압적 정치제제를 지속하기 위한 다단계 쿠데타와 관련해 마지막 장애물인 정치권과 민중세력을 굴복시키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신군부의 다단계 쿠데타가 철저히 '기획'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일부인 80년 5월 광주도 넓은 의미에서 '기획된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손 교수는 신군부가 처음부터 광주를 표적삼았다기보다, 다단계 쿠데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략적 선택'한 것으로 봤다.
이와 관련해 손 교수는 5·17비상계엄확대조치의 양상을 근거로 들었다. 신군부는 이 조치에서 김종필·김영삼·김대중 등 이른바 3김에 대한 공격을 가해 정치에서 몰아내지만 대응법은 각각 달랐다. 김종필은 부정축재혐의로 체포해 정계은퇴시키고, 김영삼은 가택연금시킨다. 하지만 김대중은 사회혼란과 학생·노조 배후조정 혐의로 연행해 구속시켰다.
손 교수는 이같은 민주화운동 진영인 김영삼과 김대중을 각기 다르게 처리한 것을 두고 신군부가 민주화진영에 대해 '분리통치전략'을 편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대중 구속은 유신 말기인 1979년 10월 박정희 정권에 저항해 들고 일어난 부산·마산과 달리 침묵했던 광주가 80년 5월 신군부에 맞서는 '변수'를 초래했다. 손 교수는 광주의 저항을 보고받은 신군부 핵심지도부가 '강경진압'을 지시했고, 이로 인해 광주의 비극이 시작됐다고 봤다.
더욱이 같은 기간 서울 영등포 등지에서도 학생시위가 산발적으로 일어나지만, 신군부가 광주처럼 잔혹하게 대응하지 않은 점을 토대로 이때 '목표로서의 광주'가 설정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포럼에 토론자로 나선 이건상 전남일보 편집경영총괄본부장도 손 교수의 발언에 동조했다.
이 본부장은 "김대중의 구속은 그를 둘러싼 재야 시민사회, 호남의 지역기반, 과격한 좌파 이미지의 덧칠 등 다양한 노림수가 존재한 조치로 신군부의 권력 장악을 위한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면서 "신군부는 이후에도 유혈사태를 염두에 둔 11공수 투입, 광주시민들의 평화적 요구사항에 대해 무력진압이라는 초강경 수단 등을 선택해 저항세력의 최후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포럼 참석자들은 향후 출범할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광주 사전기획설'을 뒷받침할 자료·증언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손 교수는 "김대중 구속 등 5·17비상계엄확대조치 자체가 광주의 소요를 유도해 이를 잔인하게 진압함으로써 시민사회 등에 '본때'를 보이고자 신군부가 의도적으로 기획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설득력이 약하다"며 "진상규명 작업을 통해 밝혀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