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살인' 박대성 무기징역…유족 “너무 약한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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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묻지마 살인' 박대성 무기징역…유족 “너무 약한 처벌”
순천서 길 가던 10대 여성 살해
“술집 등서 추가 살인 대상 물색”
만취 '블랙아웃' 상태 인정 안돼
피해자父, 사형 선고 탄원서 제출
  • 입력 : 2025. 01.09(목) 16:23
  • 순천=민현기 기자
박대성(31)씨가 순천 도심 길거리에서 10대 소녀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4일 오전 순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법원이 자신의 신변을 비관해 일면식도 없는 10대 여학생을 무참히 살해한 이른바 ‘묻지마 살인범’인 박대성(31)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계획된 범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유족들은 “너무 약한 처벌”이라며 울분을 터트렸지만 박씨는 재판내내 머리를 만지는 등 집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상반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9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김용규 부장판사)는 살인 및 살인예비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대성에 대한 1심 선고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박씨는 지난해 9월26일 오전 0시 40분께 순천시 조례동 한 도로변에서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주변 인기척까지 확인한 뒤 10대 여학생 A양의 뒤를 쫓아가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박씨는 1차 범행 이후에도 흉기를 소지한 채 2차 범행을 목적으로 홀로 영업장을 운영하던 여성들만 골라 술집에 들러 맥주를 시키거나 노래방을 찾아 업주를 방으로 부르는 등의 방식으로 살인을 시도한 혐의도 받는다.

이날 왼쪽 가슴에 노란 명찰이 부착된 수의를 입고 선고 재판에 출석한 박씨는 긴장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박씨 특유의 긴 앞머리를 수차례 손으로 만지며 몸의 중심을 좌우로 움직이는 등 재판에 집중하지 않았다.

재판이 시작돼 재판부가 공소사실을 확인하자 박씨는 그제서야 귀를 기울였다. 박씨가 지난해 11월 첫 공판기일에서 부인했던 살인 예비 혐의를 인정하면서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별다른 이유 없이 단지 길을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 피해자 A양을 상대로 살인 범죄를 저지른 뒤에도 칼을 허리춤에 숨기고 피해자들이 운영하는 술집과 노래방에 들어갔다. 한 업소에서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등의 말을 하기도 했고, 한 피해자와 대화하거나 이동할 때 바지춤에 있는 칼을 손으로 잡는 모습이 CCTV에 객관적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들이 운영하는 주점과 노래방은 주변의 다른 영업장과 달리 늦은 시간에도 영업을 하고 있었고, 주변을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던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이미 살인 범행을 감행한 이후에도 추가 살인 범행에 나아가기 용이한 대상을 물색했고 구체적으로 범행 대상을 특정했으나 다른 손님이 있다는 등의 우연한 사정으로 인해 계획을 실행하기 어렵다고 보고 단념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박씨가 줄곧 주장했던 술에 취해 기억하지 못하는 ‘블랙아웃’ 상태도 인정되지 않았다. 술에 취해 기억을 하지 못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범행을 위한 준비 행위, 은폐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던 사실이 명확하게 인정되기 때문에 인지 기능이나 의식 상태에 법률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장애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랑하는 가족의 외동딸이자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자 했던 피해자는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어린 나이에 무참히 목숨을 잃었고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피고인의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또 수사 과정에서 수사관의 질문에 관해 웃음을 보이거나 농담을 하는 모습도 보여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성찰하는 모습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감 사유에 대해서는 “범행 대상을 특정하고 범행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비추어 볼 때 계획적 범행인 동시에 순간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이며 사전에 치밀한 계획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긴 어려운 점, 여러 차례 형사 처벌을 받았지만 벌금형을 초과하는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은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기준을 밝혔다.

선고 재판을 마친 뒤 A양의 유족들은 쉽사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검찰이 박씨에게 구형했던 법정최고형인 ‘사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앞서 유족들은 세번째 치러진 공판기일에서 오열하며 주저앉는 등 재판부에 엄벌을 촉구하며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A양의 아버지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탄원서도 냈는데 너무 약한 처벌이 내려진 것 같다”며 “무기징역이 무슨 의미가 있고 전자장치 부착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울분을 토했다.
순천=민현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