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박찬규> 장 담그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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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아침을열며·박찬규> 장 담그는 날
박찬규 에코특수가치연구소 이사
  • 입력 : 2025. 02.19(수) 18:24
박찬규 에코특수가치연구소 이사
겨울이 가는가 싶더니 혹한의 날씨가 이어지면서 피부로 추위를 느끼는 남도의 겨울날이 며칠째 계속됐다. 농촌에서는 통상적으로 2월 초부터 농사일을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늦추위가 와서 며칠 동안은 꼼짝도 할 수 없는 날이 지속됐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일찌감치 논갈이를 시작했을 때인데 올해는 예년보다 최소한 보름 정도는 시기가 늦어지는 것 같다. 필자도 예년 같으면 과일나무 전지를 마치고 밑거름을 주어야 할 타이밍인데 올해는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다. 한편 필자가 귀촌하고부터 매년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장을 담그는 일이다. 귀촌하던 해 이후 지금까지 날씨와 상관없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실행하고 있는 일이다. 어머니 생전에 매년 장 담그는 노하우를 전수받은 탓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재래간장의 명인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매년 담고 있다. 장은 주재료인 콩을 구입하는 것부터 정성을 들여야 한다. 곡물 중에서도 유전자 변형이 가장 빈번한 콩을 구매하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 3년 전까지는 우리나라의 재래종 콩을 직접 재배하여 메주를 썼는데 현재는 동네에서 재배하고 있는 콩들을 눈여겨보았다가 직접 구입하여 메주를 쓰고 있다. 솥에서 콩을 삶아내는 과정은 손이 많이 가지만 기계로 쪄서 건조기에 말리는 방식에 비해 메주를 직접 성형하여 만드는 만큼 더욱 깊고 구수한 맛을 낸다. 삶아진 콩은 전통 방식으로 온돌방에서 발효시키며 온도와 습도를 맞추어 메주가 자연스럽게 숙성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일주일 정도 띄운다. 온돌방의 자연 발효 과정은 메주 특유의 풍미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발효 중 생성되는 유익균이 우리 몸에 주는 이로움이 크다.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익균은 특히 장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 메주에 있는 사포닌 성분은 암세포 억제에도 효과를 주며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항산화 성분은 면역력을 높여주고 노화를 예방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그래서 된장과 재래간장은 오늘날 주부들에게 가장 환영받고 있는 식품 중 하나이다. 온돌방에서 띄운 메주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2개월 정도 건조시킨 후 장을 담는다. 지금도 필자는 어머니가 고집한 정월 보름 전후의 말일 날에 장을 담는다. 깨끗한 약수물이나 지하수를 사용하며 5년 동안 간수가 빠진 천일염 그리고 재래종 콩으로 빚은 메주만을 사용하여 장을 담는다. 이때 염도 조절이 중요한데 필자의 경우에는 염도를 19도 ~ 21도를 유지하여 담는다. 염도가 높으면 장을 가른 후에 된장과 재래간장이 짜서 낭패를 보며, 염도가 낮으면 된장과 간장이 변질될 수 있어 적당한 염도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장 담그는 풍습이 많이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우리나라의 반찬 중에서도 발효의 대명사인 된장과 간장이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는 현실에 전통의 맛을 잃을까 우려된다. 된장과 간장은 발효식품의 대명사로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매일 먹는 음식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의 풍미까지 더해준다는 점에서 전통의 맛을 살릴 필요가 있다. 콩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데 콩으로 메주만 쓰는 것이 아니라 두부도 만들고 콩비지, 콩나물, 두유, 청국장, 된장, 간장, 효소 등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콩의 원산지가 우리나라인 만큼 콩을 이용하여 만드는 식품의 가짓수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를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된장은 콩을 재료로 메주를 띄워 만든 우리 고유의 발효식품으로서 음식 맛을 내는 중요한 조미료 역할을 한다. 콩과 소금만을 주원료로 하여 일정한 발효 기간을 거치면서 만든 세계 최장의 발효식품인 우리나라의 재래된장은 가히 최고라 평가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 전통의 재래된장을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식탁에서부터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현대를 살아가는 주부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