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집에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는 은행 달력이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
은행 달력에 대한 고객들의 수요가 높은 반면 달력 제작 부수는 전과 비교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에 신년 달력 배포가 시작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모든 물량이 소진되고 무료로 배포되는 은행 달력이 중고거래사이트에서 웃돈을 주고 거래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16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주요 은행들은 최근 각 지점을 통해 2025년 달력 배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막 12월의 절반을 넘긴 시점에도 은행에서 달력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이날 광주 서구 금호동·치평동 일대의 은행 영업점 7곳을 둘러본 결과, 신년 달력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단 2곳뿐이었다. 그마저도 인기가 높은 탁상용 달력은 모두 소진된 상태였으며 얼마 남지 않은 벽걸이 달력도 물량 소진을 앞두고 있었다. 은행들은 달력 배부가 종료됐음을 알리기 위해 영업점 입구에 ‘2025년 달력 소진’ 등의 문구를 내걸었다. 한 은행은 입구뿐만 아니라 창구 칸막이마다 ‘달력 소진’ 문구를 붙여두기도 했다. 이미 물량이 소진됐음에도 달력을 찾는 고객들의 문의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한 은행원은 “12월 2일부터 달력 배부를 시작했는데 3일 만에 모든 물량이 소진됐다”며 “달력을 찾는 고객들이 많은 지점이라 재고가 소진되자마자 다른 지점에서 달력을 소량 가져와 추가 배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원은 “금융권 달력을 집에 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로 인해 은행 달력 수요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벽걸이 달력보다 탁상용 달력의 인기가 높아 빠르게 재고가 소진됐으며 현재는 벽걸이 달력만 소량 남아있는 상태다”며 “은행들이 비용 절감 및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달력 제작 규모를 줄이면서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실제 은행들이 연례행사처럼 배부하는 달력의 제작 규모는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감소했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이 지난해 제작해 배포한 2024년 달력은 약 635만9000부로, 지난 2019년 790만6000부와 비교해 4년새 19.6%(약 154만7000부)가량 감소했다. 특히 2021년(590만2000부)과 2022년(590만3000부)에 제작 물량이 크게 줄어든 바 있다. 은행은 모바일 캘린더 사용이 늘면서 종이 달력 수요가 과거에 비해 감소한 데다가, 환경보호 등 ESG 경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달력 제작 부수를 늘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달력 제작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제작 규모를 줄임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이처럼 달력 물량 감소로 인해 금융권 달력이 ‘귀한 몸’이 되자 은행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달력이 중고거래플랫폼에서 웃돈을 주고 거래되고 있다. 중고거래플랫폼 ‘당근마켓’을 살펴본 결과, 은행 등 관공서에서 배부하는 무료 달력들이 2000~5000원 등 다양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거래가 완료된 게시글보다 판매 중인 게시글이 더 많았지만, 탁상용 달력이나 우리은행의 ‘아이유 달력’ 등 인기가 높은 달력은 판매가 완료된 상태였다. ‘달력 무료나눔’ 역시 인기가 높아 이미 거래가 완료됐거나 ‘예약중’인 경우가 흔했다.
중고거래플랫폼 이용 고객들이 각종 정보를 주고받는 ‘동네생활’ 커뮤니티에는 은행 달력을 찾는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약 한 달 전부터 현재까지 ‘은행 달력 언제부터 나눠줄까요’, ‘벽 달력 받을 수 있는 곳 아시나요’ 등 신년 달력에 관해 묻는 질문 글이 작성돼 있었다. 해당 게시글에는 언제부터 달력을 받을 수 있는지, 어느 은행에 달력이 남아있는지 같은 정보를 알려주는 댓글이 달렸다.
무료로 배포되는 각 기관의 신년 달력이 일종의 소액 벌이로 전락하면서 정작 달력이 필요한 저소득층이나 모바일 캘린더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이 달력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부 강모(49)씨는 “거실 장 위에 탁상용 캘린더를 올려두고 가족 및 개인 일정을 적어놓는 편이라 은행에 온 김에 신년 달력을 받아 가려고 했는데, 지난주에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종이 달력은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게 필수적인데 은행 달력 물량이 줄어들고 무분별하게 달력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정작 정말 필요한 이들이 달력을 구하지 못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나다운 기자 dawoon.na@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