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윤영백>직업계고 생태계를 살려야 광주가 산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교육의 창·윤영백>직업계고 생태계를 살려야 광주가 산다
윤영백 광주여상고 교사
  • 입력 : 2024. 11.24(일) 16:25
윤영백 광주여상고 교사
오늘부터 직업계고 원서 접수가 시작된다. 모집인원을 채우려고 초비상이다. 평소 교과 지도와 담임만으로도 버겁게 살아가는 직업계고 교사들은 2학기엔 영업사원으로도 산다. 학생을 배정받는 인문계고와 달리 학생 모집의 몫이 단위 학교로 던져진 탓이다.

낯선 교무실에 들어서는 일, 보험 판매 직원을 보는 듯한 시선을 견디는 일은 늘 힘들다. 고입 예비생들의 진학 기본값은 ‘인문계’이다. 직업계고는 인문계고 갈 성적이 안 되는 학생의 선택지 정도로 여기는 데다 직업계고에 대한 정보 부족, 편견까지 쌓인 터라 정보를 채우고 편견을 비워야 선택지의 마지막 자리라도 오를 수 있다.

기본값을 바꾸려고 허우적거린다. 학생 취향을 좇아 학과를 열었다 닫거나 당장의 성과를 위해 교육의 기본을 허무는 악순환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동은 갈수록 주는데 직업계고를 만든 뜻조차 흐려져 직업계고 생태계는 점점 황폐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직업계고는 아직 OECD 평균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 고졸 인재만으로 충분한 정부 기관, 기업, 각종 산업현장이 수두룩한데 너도나도 일단 인문계로 흐른다. 이런 구조가 굳으면 일하는 젊은이가 텅 비고 막대한 비용이 대학 간판을 위해 누수되며, 고졸은 열악한 조건을 감당하는 싸구려 인력으로 각인된다. 이런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지난 7일 교육부 취업통계조사에 의하면 올해 직업계고 졸업자 6만3005명 중 1만6588명이 취업했다. 4명 중 1명꼴. 유지취업률은 66%였는데, 취업자 34%가 1년도 안 되어 그만 두었다는 말이다. 직업계고 진학률은 해마다 치솟고 있다. 특히 광주는 전국 2위로 53.8%에 이른다. ‘이제 대학진학도 직업계고에서!’라고 홍보하는 지경이다.

기회를 평등(equality)하게 주는 것만으로 사회가 건강해지기 힘들 때, 공평한 결과(equity)를 보장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직업계고 생태계를 튼튼하게 만드는 최고의 정책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광주는 가장 모범적인 조례를 만든 곳이다. ‘광주광역시 고등학교 졸업자 고용촉진 조례’에 의하면 ‘정원이 20명 이상인 공기업 등은 매년 신규 채용 인원의 100분의 20 이상’ 고졸자를 ‘우선’ 고용해야 한다. 고졸자를 차별하지 않는 수준(equality)을 넘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지역 사회에 정착하도록 ‘우선’ 보장(equity)하겠다는 것이다.

시청 1층에는 ‘빛고을 직업교육 혁신지구 지원센터’가 있다. 2022년 10월 5일 열었는데, 강기정 시장도 참석한 가운데 청사진을 발표했다. 고졸 인재를 양성해서 좋은 일자리와 이어주고, 그들이 광주에 정착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

수도권 명문대에 보낸 학생 숫자로 지역을 뽐내겠다는 엉터리 발상보다 고졸 인재를 교육하고 일자리까지 보장해서 지역을 살리겠다는 비전이 훨씬 건강하고 현실적이다.

하지만 조례도 사업도 모두 구호에 머물고 있다. 올해 광주 직업계고의 관외 취업은 64.7%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인재는 많은데, 광주에 일자리는 없다는 뜻. 상업계 특성화고인 우리 학교만 보더라도 국가직 공무원을 비롯 국민연금공단, 도로교통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등 굴지의 공기업이나 금감원, KDB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비좁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는 학생만 매년 40명을 넘지만, 최근 5년 동안 광주시 산하 공기업이나 출자기관에 취업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게다가 관내 취업으로 통계 잡힌 학생들도 광주에서 뽑힌 것이 아니라, 국가 공기업의 광주 지사로 발령받은 경우다.

지난 3년간 광주광역시 산하 공기업 등에서 총 470명을 채용했는데, 고졸 채용 기관은 19개 중 3개에 불과했고 채용 인원은 단 21명이다. 이마저 경비, 청소, 조리 등 특정 직군으로 치우쳤다. 또한 20세 이상을 채용하거나 대학 과목을 요구하거나 대졸만 취득가능한 자격증을 필수로 거는 경우가 많다. 형평(equity)은 커녕 고졸 지원이 애초 불가능하여 기회의 평등(equality)마저 무너진 상태. 조례는 집행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학벌주의로 조롱당하고 있다.

최근 시의회와 시청 담당자들을 면담하였는데, 조례를 ‘정치적 수사’ 쯤으로 여기거나 역차별로 생각하는 눈치다. ‘블라인드 하자면서 고졸을 어찌 우선 채용하냐’고도 했는데, 평등과 형평을 대립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는 기술적 문제에 불과하다.

전국 공기업들은 이미 이런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 왔으며, 승진할 때도 고졸 사원을 차별하지 않는다. 마음만 있다면, 광주가 당장 배우기만 하면 된다. 물론, 지자체의 노력만으로 생태계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지자체조차 하지 않으면서 무엇을 바꾸겠는가?

주사위가 던져졌다면 이제 말을 움직이면 된다. 조례는 이미 던져졌다. 직업계고 생태계를 살려야 광주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