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광주 남구 사동 광주천변 인근 인도에서 시각장애인 김민석씨가 흰지팡이로 앞에 놓인 장애물을 인지하며 길을 걷고 있다. 정상아 기자 |
특히 광주지역에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길의 방향을 안내해 주는 점자블록과 위치·방향을 안내해 주는 점자, 음성 안내 기기 등의 설치가 부실해 혼자 외출하는 게 어렵다는 지적이다.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가 지정한 ‘흰 지팡이의 날’인 15일 오전 시각장애인 김민석(58)씨와 동행해 광주 도심을 걸어보면서 그들이 보행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살펴봤다.
“오랜만에 꺼냈더니 어색하네요.”
김씨는 익숙하지 않은 듯 흰지팡이를 손에 쥔 채 어색하게 펼쳤다.
평소 복지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김씨는 밖에 혼자 나서는 일이 드물어 흰지팡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서 복지관으로 이동하는 길은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고, 점심도 활동지원사나 복지관 직원들과 복지관 인근에 있는 식당에 가서 먹기 때문에 온전히 홀로 거리에 걸어 다니는 건 몇 년 만에 처음이다.
긴장한 듯 보이던 김씨는 흰지팡이로 앞 도로를 서너 번 두드리더니 이내 자신감이 붙었는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복지관을 지나 광주천변쪽 인도로 진입한 김씨는 이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바닥을 더듬어봐도 점자블록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인도에는 점자블록이 거의 설치되지 않았을뿐더러 바닥에 깔린 벽돌 일부는 들떠 있거나 움푹 파여 울퉁불퉁한 상태였다.
시각장애인에게 길의 방향을 알리는 점자블록이 없다보니 앞으로 쭉 걸어가던 김씨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가며 자신의 위치를 헷갈리는 모습이었다.
중반부에는 도로와 인도를 경계 짓던 단차도 사라져 방향을 헷갈린 김씨가 차도로 내려가면서 주행하던 차량과 부딪힐뻔한 아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기자의 도움으로 겨우 방향을 잡은 김씨는 다시금 흰지팡이를 바닥에 두드리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금세 다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근처 판매 업체에서 내놓은 자재용 팔레트가 놓여 있었다. 무릎을 몇 차례 부딪히고 나서야 팔레트 앞을 벗어난 김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이후 양림교 부근에 도착하기까지 김씨는 풍선 입간판과 주차된 승용차, 볼라드(자동차 진입 통제 말뚝), 아무렇게나 놓인 공유킥보드 등 각종 장애물로 인해 안전을 위협받았다.
15일 오전 광주 남구 사동 광주천변 인근 점자블록이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시각장애인 김민석(58)씨가 장치를 이용해 횡단보도 위치를 찾고 있다. 정상아 기자 |
장애인등 편의법과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점자블록은 횡단보도의 진입 부분에는 해당 폭만큼, 횡단보도까지 유도하는 부분은 진행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김씨와 함께 걸을 때 보인 대부분의 횡단보도 앞에는 점자블록이 없거나 규정에 어긋난 엉터리 유도블록이 전부였다.
점자블록이 없는 탓에 김씨는 횡단보도 위치를 안내해주는 장치를 꺼내 들었지만 이마저도 고장난 상태라 횡단보도에 설치된 음향신호기 버튼을 눌러 겨우 횡단보도를 찾을 수 있었다.
20분 남짓한 짧은 거리를 걸었을 뿐인데도 온몸이 땀과 비로 뒤덮힌 그는 우여곡절 끝에 복지관으로 되돌아온 후에도 한참이나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김씨는 “길을 걸으려면 흰지팡이를 짚고 땅이 울리는 진동과 소리를 듣고 느껴야 하는데, 오늘처럼 비가 내리거나 차가 옆으로 지나다니는 인도를 걸을 때면 시간도, 체력도 배로 소요된다”며 “혼자 안 걸어 다니는 버릇을 들이다 보니 이렇게까지 도로 관리가 미흡한지 몰랐다. 앞이 안 보여서 다른 사람보다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많은데, 우리의 안전과 권리 보호를 위해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상아 기자 sanga.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