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역사 속 지역 미술행사·기획전시 ‘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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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짧은 역사 속 지역 미술행사·기획전시 ‘고군분투’
새로쓰는 예향 지리지<3>큐레이터
시립미술관·비엔날레 등장 계기
90년대 전문학예분야 인식 생겨
2000년대 지역대학에 학과 신설
미술관 증가에 전공 1세대 늘어
“대규모 전시 기획 능력엔 의문”
  • 입력 : 2024. 08.25(일) 18:00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 모습.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잘 만든 전시’ 하나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시대다. 흥행한 전시는 곧 도시의 이미지를 만든다. 광주가 아시아 미술의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한 단계로서 예술활동의 다원화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그 중심적 역할에는 광주의 풍경을 예술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안하며 창작자와 별개로 또 다른 창조적 저자성을 갖는 ‘큐레이터’가 있다. 굵직한 미술행사, 다양한 기획전시가 이어져 온 광주 아트씬에서 고군분투했던 큐레이터 발자취를 되짚어 본다.

● 첫 ‘단독건물’ 광주시립미술관

단순히 작품을 진열해 놓는 것을 넘어선 전시 ‘큐레이팅’ 개념이 광주화단에 등장한 것은 광주시립미술관이 개관하고 광주비엔날레가 창설된 1990년대다. 1992년 광주시립미술관은 당시 북구 운암동 광주문화예술회관 자리에 국공립미술관 중 최초로 개관했다. 그 전에 전일빌딩 내 ‘전일미술관’이나, 동구 황금동 옛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내 ‘미술전시관’, 조선대 미술대학 내 ‘조선대미술관’ 등의 개관 사례는 있었지만, 광주에서 전시를 위한 단독 건물로서 미술관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광주시립미술관 개관은 곧 전시기획, 미술품 보존, 지역 미술사 연구 등을 수행하는 전문 ‘큐레이터’가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특히 광주시립미술관은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설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크게 일조했는데, 지역에는 대규모 미술 박람회에 투입할만한 전문인력이 전무해 광주시립미술관은 조직위원회를 꾸리고 소속 학예연구사를 파견하는 등 광주비엔날레 창설을 주도했다.

● 2000년대 큐레이팅 개념 등장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최 이후, 광주화단에 현대미술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여전히 광주미술은 동양화 의재 허백련, 서양화 오지호로 대표되던 시기였다. 광주미술의 정체성인 오월회화를 체계적으로 조명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1999년 박물관 및 미술관광진흥법이 개정되면서 전문 학예사 자격의 개념도 생겼다. 광주화단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이 점점 대두됐다. 이에 2000년대 들어 지역대학 미술학과에 미학·미술이론 관련 전공이 새로 신설됐다.

이후 광주에 여러 사립·구립 미술관이 들어섰고 대학 전공 1세대들은 미술현장을 빠르게 채워나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비엔날레재단, 광주시립미술관 등 기관 자체적으로 미술이론 및 실기강좌를 통해 다양한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전문적으로 미술을 향유하고자 하는 인구도 늘었다. 광주미술의 스펙트럼은 점점 넓어졌다.

광주 1세대 큐레이터 장경화 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광주화단에 ‘큐레이팅’ 개념이 등장한 역사가 짧기도 하고 대규모 미술 이벤트를 기획할만한 자본이 부족하다는 것이 마지막 넘지 못하고 있는 문턱이다”며 “전문 큐레이터가 수적으로 늘어났지만, 블록버스터급 메가 전시를 기획할만한 전문인력이 등장했는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화단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은 단순히 전시, 교육, 연구, 미술품 보존 등을 넘어 글로벌 문화 마케팅, 미술인 육성, 미술인구 저변 확대, 도시 브랜딩 등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아시아 미술의 중심지로 광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굵직한 미술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연계해 광주 출신 큐레이터 인력들의 현장경험 기회를 늘리고 역량을 키우기 위한 개인의 노력도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지난 2022년부터 진행한 전문인 역량강화 과정. ACC 제공
●광주화단에 ‘대안공간’ 등장

미술관을 벗어난 독립큐레이터의 등장은 광주화단을 더 다채롭게 했다. 이른바 예술씬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안하면서 실험적인 미술을 주도하고 미술관과 상업 갤러리를 표방하지 않는 ‘대안공간’이 광주에도 등장한 것이다. 그 출발은 대인시장이었다. 2008년 즈음 대인예술시장에 예술인들이 모였다. 지역 전통시장이라는 공간성과 싼 집값, 동구 예술의거리와 지리적 인접함 등이 특징이었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이러한 대인시장의 특성에 주목해 ‘복덕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빈 점포를 창작공간으로 리모델링하고 아트마켓, 공연 등을 열면서 ‘시장과 예술의 만남’을 이끌었다. 예술이 콘셉트가 된 대인시장에 2009년 광주 1세대 대안공간 ‘미테-우그로’가 문을 열면서, 예술인을 비롯해 많은 독립큐레이터들이 이곳에서 경험을 쌓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미테-우그로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전시, 세미나, 워크숍 등을 열었고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태국, 일본, 네팔 등 해외 국가들과 국제교류를 진행하면서 문화공간의 모범 사례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 경험을 쌓은 독립큐레이터들은 오버랩, 지구발전오라, 뽕뽕브릿지 등의 또 다른 대안공간을 조성했다.

광주 대표 대안공간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을 운영하는 정헌기 대표는 “광주에 대안공간이 늘어난 결정적 계기는 대인시장 내 조성된 아트씬이었다. 이는 큐레이터들이 미술관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한 단초가 됐다”며 “비엔날레라는 국제적인 미술행사처럼, 이미 광주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미술도시로서 기능하고 있다. 민관 가리지 않고 학예인력이 강화되어야 할 이유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