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126-1>새벽부터 한밤까지 잠들지 않는 ‘사교육 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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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126-1>새벽부터 한밤까지 잠들지 않는 ‘사교육 광풍’
●‘호남 사교육 1번지’ 광주 봉선동 집중해부
오전 7시 카페 과외로 하루 시작
‘불법’에도 학교시험 앞두고 성행
밤시간 학원 마친 자녀 귀가 행렬
  • 입력 : 2024. 06.30(일) 18:01
  •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
학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지난달 26일 광주 남구 봉선동 학원가 일대에서 친구들과 함께 귀가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광주 봉선동 일대가 ‘호남 사교육 1번지’로 불리고 있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등은 ‘광주의 대치동’이라 불리는 봉선동 과밀학급 문제를 교육 현안 1순위로 꼽는다. 이들은 봉선동 사교육 문제가 학습권 침해, 부동산가격 상승 견인, 입시경쟁 과열, 학교서열 조장 등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봉선동 학교를 다니기 위한 위장전입은 광주 맘(mom) 카페 등에서 대수롭지 않게 언급될 정도다. 높은 학력 스트레스 탓에 봉선동 일대 소아 정신과는 매일 오픈런 수준으로 많은 학생의 상담,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본보는 봉선동의 기형적인 사교육 쏠림 현상을 들여다 보고 나아가 균형 잡힌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아침과외’로 시작하는 하루

“시험기간에는 일상이에요. 중·고등학교 6년 간 이렇게 공부해왔어요.”

지난달 26일 오전 7시. 봉선동 중심지인 쌍용사거리를 조금 지나 프렌차이즈 카페가 보인다. 이른 아침에도 카페는 꽤 분주했다. 카페 한 구석에는 선생으로 보이는 한 남성과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수학문제집을 가운데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남성은 학생에게 문제 풀이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여학생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필기하고, 가끔 질문도 던졌다. 이내 8시가 되자 학생은 카페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의 차량에 탑승했다.

남성 A씨는 “학생들이 수업 하기 전 정신을 깨우기 위해 과외를 한다. 보통 중간고사 등 시험 한달 전이나, 고3 수험생들 대상으로 관리한다”며 “학생들도 아침을 일찍 시작해 피곤해 해도 만족도가 높다. 아침에 과외로 하루를 시작하면 저녁까지도 집중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보통은 온라인으로 하거나 집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학생은 부모님이 현강(현장강의)을 원해서 카페에서 한다. 학교 인근에서 수업하면 학생들도 바로 등교해서 시간을 아낄 수도 있다”며 “불법인줄 몰랐다. 이 지역에서는 다들 이렇게 한다”고 덧붙였다.

고등학생 기말고사를 앞둔 6월이 되면 봉선동 학부모 사이에선 ‘아침과외’ 전쟁이 치러진다. 내신 관리 차원에서 시험 대비를 위해 아침부터 등교 전 불법 과외가 성행하는 것. 보통은 집이나 정해진 장소에서 진행하는 화상수업이 일반적인데, A씨처럼 현장강의를 원하는 학생은 학교 인근의 카페 등에서 대면 과외도 이뤄진다.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주소지 관할 교육감에게 교습장소 등을 신고해야 되는데, 일반 카페나 스터디카페는 정해진 장소가 아니어서 엄연한 불법이다. 현행법상 교습소 설립·운영을 위해선 신고자와 교습자의 인적 사항, 교습소의 명칭과 유치, 교습비 등을 교육감에 신고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날 수업한 과외선생 A씨도 봉선동 학원가 출신이다. 아침과외는 단가도 더 높다. 일반 시간대 과외는 대학생 기준 시간 당 3만원이지만 아침과외는 시간 당 2만원을 더 받는다. 졸업 후에도 용돈 벌이를 위해 불법도 성행하는 사교육 광풍에 올라 탄 것이다.

지난달 26일 밤 광주 남구 봉선동 학원가 일대에서 학부모들이 학원 수업을 마친 자녀들을 태우기 위해 차량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건호 기자
●꺼지지 않는 ‘봉선동의 밤’

같은 날 오후 10시께. 교복을 입은 한 여자아이가 도로변에 서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부모를 기다리고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학생은 단어를 외우는 중간중간 하품을 하며 내려오는 눈꺼풀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던 학생은 자신을 데리러 온 차량이 나타나자 가방을 고쳐 매고 차에 탑승했다. 그 뒤로 도로에는 수십대의 차량이 비상등을 켠 채 도로변에서 학원을 마치고 나온 아이들을 태워 이동했다. ‘광주의 대치동’이라고 불리는 봉선동 학원가에서 매일 밤 펼쳐지는 광경이다.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어린 자녀의 컨디션 관리를 위해 픽업하는 일은 부모들에게 당연한 일상이다. 학원 버스 차량과 부모들의 불법주정차 행렬도 흔하게 보였다. 학원이 끝나기 대략 한 시간 전부터 주정차를 시키고 근처 카페에서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들 때문에 남구청에서 수시 주정차 단속을 벌이는 곳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과열된 교육열에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광주 서구에서 봉선동 학원으로 아이를 등원시킨다는 김모씨는 “주변에서 과도한 학습에 틱 장애가 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봤다”며 “솔직히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들 때가 많지만 다들 이렇게 하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도 “아이 영어 교육에만 매달 200만원 가까이 지출된다”며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교육비가 부담이 안된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