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광주 남구 봉선동 학원가 일대에서 학부모들이 학원 수업을 마친 자녀들을 태우기 위해 차량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건호 기자 |
●학생 수 적은데 학원 수 ‘1위’
30일 광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광주에서 가장 학원이 많은 곳은 291개의 남구 봉선동으로 나타났다. 광산구 수완동, 서구 풍암동, 북구 운암동, 서구 금호동이 뒤를 이었다. 모두 광주의 대표 ‘학원가’로 알려진 곳들이다.
다만 봉선동은 다른 곳과 대비되는 특징이 있다. 통상 학원 수는 학생·학교 수와 비례하기 마련인데, 봉선동은 학생·학교 수가 많지 않은 데도 학원이 몰려있다는 점이다. 봉선동의 과열된 사교육 경쟁 양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관련 통계를 보면 229개 학원이 있는 수완동에는 1만5000여명의 학생이 거주하고 있고, 학원 147개가 위치한 북구 운암동에는 12개 학교가 있다. 반면 이보다 많은 학원이 있는 봉선동은 학생 수 7000여명, 학교는 10곳에 불과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대학 입시로 명성을 알린 ‘유명 학원’도 봉선동에 몰려 있다. 실제 A학원은 총 10개 지점을 광주 곳곳에서 운영하는데 이 중 4곳이 봉선동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봉선동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까지 영향을 미쳤다. ‘봉선동 교육’을 받기 위해 위장전입 사례가 급증하면서 학생이 넘쳐나 과밀학교가 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관내 초등학교 중 과밀학교는 봉선동의 불로초와 조봉초가 유일하다. 보통 학급당 학생 수가 28명 이상인 학년이 포함되면 과밀학교로 불린다. 지난 3월 기준 조봉초의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25.3명, 불로초는 28.8명이다. 평균 학생 수는 28명 이하지만 조봉초 3학년과 4학년 모두 학급당 학생 수가 28.8명을 기록하며 과밀학교로 지정됐다. 가장 과밀상태가 심각한 불로초는 1학년부터 4학년 학급 당 학생 수가 28명을 넘긴 상황이다.
시교육청은 과밀학급의 원인으로 학원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을 꼽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봉선동에 학원이 많이 몰려있다 보니 학부모들이 위장전입을 시도한다. 이를 막기 위해 부모 중 한쪽만 동거인으로 등록된 상황에서 전학이나 입학 배정은 배제하고 있지만 위장인지 아닌지를 감별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다”며 “특히 자녀가 3학년이 되는 시점에 봉선동으로 전입하는 인구가 급격히 느는 추세라 과밀학급이 3~4학년에 많이 몰려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6일 광주 남구 봉선동 학원가 인근 카페에서 한 학생이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
‘수학’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역 중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여겨진다. 상위권 대학일수록 수학 점수 한 끗 차이로 합격·불합격이 갈리기 때문이다.
최근 진학평가원이 발행한 학술지 ‘교육과정평가연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답한 교사 827명 중 91.7%가 ‘수학’을 중요한 과목이라는 데 동의했는데, 그 이유로는 81.3%가 ‘상급학교 진학에 필요한 과목이어서’라고 답했다. 또 중·고등학생 71.5%가 ‘수학에 대학 현재 사회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좋은 대학이나 직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함’이라고 답했다.
이렇듯 입시에서 수학 점수의 중요성이 큰 탓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수학 전문 학원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좋은 강사가 포진해 있는 대형 학원의 경우 입학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높은 점수가 보장되기 때문에, ‘학원 입학 경쟁’이 입시 경쟁 못지않은 실정이다.
봉선동 학원가 관계자들에 따르면 관내 학원 입학을 위해 별도의 시험을 치르는 것은 물론 대기번호까지 받는 사례가 흔하다.
예컨대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시작해 전국구로 유명해진 B수학학원의 레벨테스트는 무려 ‘고시’라고 불릴 만큼 어렵기로 유명하다. 맘카페에서는 이 학원 레벨테스트의 난이도를 묻거나 예상 문제를 문의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시험를 통과하거나 학원 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과외까지 성행할 정도다.
광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C수학학원 또한 레벨테스트가 까다로워 학생과 학부모들의 애를 태우는 곳이다. C학원은 선행학습 진도별로 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레벨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할지라도 반 정원이 많지 않아 항상 대기열이 길다.
이같은 봉선동 사교육 열풍은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지면서 교육당국의 사교육 경감 대책과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결과를 보면 광주지역 학생들의 월평균 사교육비 증가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지난해 전국 기준 전체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3만 4000원으로 전년 대비 5.8% 증가한 데 반해, 광주 전체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9만6000원으로 전년보다 11.2% 늘었다.
이는 평균에 비해 높은 ‘학원비’ 영향 때문으로 분석된다. 본보가 봉선동의 유명 수학학원 5곳과 영어학원 5곳의 학원비용을 취재해 분석한 결과, 수학학원의 평균 비용은 27만원대, 영어학원은 32만원대로 나타났다. 전국 전체학생 1인당 과목별 월평균 사교육비는 수학 12만2000원, 영어 12만8000원이며 사교육 참여학생의 경우 월평균 수학에 23만3000원, 영어에 24만8000원을 지출한 것을 고려하면 비교적 높은 수치다.
지역 한 교육 시민단체 관계자는 “봉선동 일대에는 선행학습 유발 광고 문구들이 나붙어 있고, 학원마다 명문대 합격자를 홍보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한다. 사교육 수요가 증가하는 2학기 기말고사 직후나 겨울방학 직전에 이런 현상은 심화된다”며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과도한 입시경쟁과 학벌주의 조장은 학생들의 다양한 진로선택을 막아 공교육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