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아침을 열며·정연권> 지역소멸 막는 ‘도농상생 농촌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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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아침을 열며·정연권> 지역소멸 막는 ‘도농상생 농촌유학’
정연권 구례군도시재생지원센터장
  • 입력 : 2023. 07.19(수) 15:41
정연권 센터장
귀엽고 예쁜 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세월의 빠름에 다시 한번 놀랐다. 입학 후 영상통화 대화가 달라졌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설명하니 긴 시간 통화한다. 손녀는 신났고 그 모습을 보는 필자 역시 흐뭇하고 기쁘다. 2~3일에 한 번씩 하는 영상통화 시간이 간절하게 기다려진다.

손녀는 서울 신정초등학교, 딸의 친구 아들은 구례북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가족 동반 여행을 자주 하는 절친이다. 입학한 뒤 여행 갔다가 아이들끼리 나눈 대화를 들었다. 구례 사는 딸 친구 아들이 손녀에게 물었다. “몇 반이야?” “1학년 7반이야” “7반도 있어?” 놀라는 모습이다. “10반까지 있어? 너는 몇 반이야?” “1학년 3반인데 3반까지만 있어” 손녀는 “왜 3반까지 밖에 없어?” 되물어 보며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울엔 사람이 많이 살지만 구례는 많지 않아서라고 이해 이해시켰다 한다.

이 말을 몇 번이나 되새겨 봤다. 안타깝고 충격적으로 현재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서울은 학생 수가 많아 10반까지 있는데 구례는 3반 정도밖에 없다. 그래도 북초등학교는 많은 편이다. 구례읍 중앙초등학교는 10명이다. 면 단위 학교는 그 이하이며 그나마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도 있다. 저출산 여파와 인구감소로 지방소멸 징후가 보여 걱정이다. 도시는 학생이 많은데 군 단위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적다. 대안은 없을까. ‘농촌유학 사업’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지난 5월 중순 화엄사 일원에서 전남도교육청구례도서관 주관 ‘구례역사문화생태탐방’ 교육을 진행한 바 있다. 대상은 중동초등학교 등 농촌유학생 가족이었다. 화엄사 가람 배치와 전설, 나무와 꽃 이야기를 나눴다. 보이는 꽃과 보이지 않는 꽃의 화엄세계와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워 주었다. 정갈한 공양도 먹었다. 연기암까지 걸어가며 자연생태와 야생화 현장 교육을 진행했다. 연기암으로 가는 계곡과 숲에는 공기의 비타민인 음이온이 녹아 있고 피톤치드가 담겨 있다. 흙 속에는 행복 호르몬인 마이코박테리움박케가 자리하고 있다. 숨어 있는 가치를 느끼는 자연생태 사랑을 알려줬다. 부엽토를 들춰 흙냄새를 맡도록 했다. “이런 흙냄새는 처음 맡아 봐요. 신선하고 기분이 좋다”고 웃었다. 피톤치드와 음이온도 수치화해 설명하니 대한민국 최고 힐링로드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참석한 가족들은 “구례 방문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마당 텃밭에 고추, 가지, 호박을 심었는데 커가는 모습에 반하고 수확해서 먹을 생각에 설렌다.” “구례 인심이 좋고 자연풍광이 아름다워 마음이 편안하다.” “아이의 추억도 있지만 내가 더 많이 느끼고 구례를 중심으로 하동, 순천, 곡성 등 생태관광도 매력적이다.” “주말 아이들과 지리산과 구례 구석구석을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다.” 등 유쾌한 반응에 뿌듯함을 느낀다. 이들은 아이들이 산과 들로 뛰어다니는 생태학습 모습에 흐뭇해했다.

‘농촌유학사업’은 도시와 농촌이 같이 사는 길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델이다. 농촌유학은 서울시 초·중학생이 농촌에 있는 학교에 다니며 생태적 가치를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2021년 시작됐다. 구례군에는 32가구 49명의 유학생이 찾아왔다. 가족체류형으로 부모와 같이 생활하니 안정적이다. 구례군과 전라남도교육청, 구례교육지원청의 노력과 심혈을 기울인 덕분이다. 면 단위 학교에서도 유학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려고 열정을 다하고 있다.

지속될 것 같은 농촌유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 농촌유학 근거인 ‘생태전환교육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 폐지안이 지난 5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가결돼 폐지됐기 때문이다. 조례에 따라 설치된 기금이 당초 목적과 달리 농촌유학 단일사업에만 사용되고 있다는 게 폐지 이유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단편적인 생각이다. 도시학생들의 생태 감수성을 길러낼 ‘농촌유학’의 가치를 모르는 판단이다. 시대 역행하는 일이며 정치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농촌유학생과 부모들을 만나보니 긍정적인 요인이 많았다. 학생은 산과 들에서 자연생태를 보며 공부한다. 미래에는 구례를 응원하고 지원하는 지원군이 된다. 부모의 지인, 친척이 구례를 알게 되고 발길이 이어지며 ‘관계인구’가 늘어난다. ‘생활인구’도 빠르게 증가한다. 도시와 농촌이 같이 살아가는 상생 모델로 이들이야말로 최전방의 첨병이다. 좋은 이미지와 추억을 안고 가서 농촌과 자연생태를 기억하고 홍보해 주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치를 떠나 아이들과 부모들의 행복한 삶,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며 지혜를 모아가야 한다. 농촌유학이 지속되어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며 지방소멸의 방파제가 돼주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