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명장> "한 땀 한 땀 자수 외길 60년… 명맥 이어가 큰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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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
명인·명장> "한 땀 한 땀 자수 외길 60년… 명맥 이어가 큰 보람"
‘충장로의 보물’ 동구의 명인·명장을 찾아서||19.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 강사 활동하다 손자수 매력 빠져 ||혼수품목 인기에 ‘병풍계’도 운영|| ‘육골베개’로 문화재청장상 수상 ||2009년 자수공예 대한민국 명장 ||“팔순때 작품 기증전 열고 싶어”
  • 입력 : 2022. 08.18(목) 17:15
  • 곽지혜 기자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은 "한 땀 한 땀 손으로 직접 떠낸 자수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담기기 마련"이라며 "전통자수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전했다.

8폭의 병풍에 한 땀 한 땀 손자수로 수놓아진 대자연의 풍경이 그녀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60여년째 전통자수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은 10년 전 세상을 떠난 부군이 밑그림을 그리고 본인이 자수를 떠낸 '금강 8경'을 자식 대하듯 소중히 내놓았다.

물감도, 붓도 사용하지 않은 그림이지만, 실과 바늘로 그려낸 전통자수 작품들은 문양과 색채, 질감 등 여느 미술 작품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과 숭고한 가치를 지녔다.

손끝으로 대한민국 전통자수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송현경 대한민국 명장의 인생을 들여다봤다.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이 광주 동구 학동에 위치한 자택 겸 작업실에서 자수 작업을 하고 있다. 평생을 바닥에 앉아 작업을 했기 때문에 고관절에 무리가 와 지금은 직접 만든 거치대에 작품을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작업을 한다.

● 생업으로 시작해 '손자수' 매력 빠져

나주에서 태어난 송 명장은 어려서부터 배겟잇을 짜내던 어머니와 외할머니 밑에서 전통 복식을 접하며 자랐다.

배겟모의 면을 6개, 혹은 8개로 나누는 전통 골배게를 지어내던 어머니의 재주를 물려받아 어려서부터 바느질은 익숙히 해왔다.

송 명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어른들의 의견대로 중학교 진학을 하지 않고 4년간 집안일을 배우며 살았지만, 배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결국 17살에서야 다시 공부를 시작해 광주여중을 합격한 수재이기도 했다.

송 명장은 "남들보다 뒤늦게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도 너무 재미있고, 학교 생활도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데 밑에 남동생이 또 공부를 그렇게 잘했다"며 "결국 남동생 공부를 더 시키기 위해서는 제가 학교를 그만두고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바느질에 소질이 있었던 송 명장은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고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YWCA에서 자수 강사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됐다. 3년여간 학생들과 함께 미싱자수를 주로 다루며 기계자수로는 이끌어낼 수 없는 손자수의 깊이에 매료됐다고 한다.

송 명장은 "손자수의 가치를 깨달은 순간부터는 기계자수를 하는 시간이 아까워졌다"며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도 좋지만, 자수라는 것은 사람 손으로 한 땀 한 땀 떠냈을 때야 진정한 마음이 담기고 또 거기서 가치가 나온다고 생각이 들어 그 길로 강사일을 그만두고 단칸방을 얻어 본격적으로 손자수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단칸방에서 남동생 학교를 보내며 살아가던 송 명장에게 그저 떠 내고 싶은 작품만을 하는 것은 사치였다.

그때부터 당시 필수 혼수품목이었던 병풍 작업을 시작해 생계를 이어가며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송 명장은 "당시에는 혼수로 병풍을 무조건 해갔어야 하니까 딸 가진 어머니들은 병풍계를 들기도 했던 시절"이라며 "손재주가 금세 소문이 나서 당시에 그 방 한 칸에서 주문받은 병풍을 밤새 바느질해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기도 하지만, 나는 결국 공부를 그만뒀더라도 그렇게 해서 남동생 잘 키워내고 저는 저대로 손자수를 평생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시기이기도 하다"고 떠올렸다.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이 고인이 된 부군이 도안을 그리고 본인이 자수로 떠낸 '금강 8경' 자수 병풍을 소개하고 있다.

● 전통 육골베개의 아름다움 되살려내

혼수 품목으로 또 명절이나 제사를 지낼 대면 차례상 뒷편에 꼭 놓여져야 했던 병풍이었지만, 시대가 지나며 병풍의 수요도 사그라들었다.

다른 분야를 생각해내야 했던 송 명장은 어려서부터 봐온 골배게를 생각해냈다.

송 명장은 "내 전문 분야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또 어떤 작품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과정을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며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만들고 사용하시는 것을 직접 보고 자라기도 했고 또 골배게가 옛날에는 사대부 딸들에게만 전수돼 내려왔다고 하는데 그 기반이 호남지역에 있어서 더 애착이 갔다"고 전했다.

민가에서 사용했던 6골배게부터 불교에서 주고 사용했던 8골배게까지 송 명장은 다듬이질을 해 배겟잇을 만들고 명주실을 색색깔로 염색해 자수 문양을 채워넣었다.

우연히 송 명장의 골배게를 접한 손님의 권유로 공예대전에 출품해 지난 2009년에는 문화재청장상을 수상, 같은 해에 자수공예부문 대한민국 명장에 이름을 올렸다.

송 명장은 "이 골배게 자수를 손댔다는 것이 내 인생에서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진다"며 "외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져 오던 것을 제가 잊지 않고 이어갈 수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줬다는 것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이 제작한 육골배게.

● 명맥 끊어질까 우려… 팔순 '기증전' 준비

송 명장은 자수공예인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손자수 강의와 체험을 비롯해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끊임없이 후학양성에 매진해왔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크다.

코로나19가 확산된 뒤 사람들이 모일 수 없게 되자 그나마 있던 수업도 거의 다 없어지고 모든 공예가 그러하듯 전수자 찾기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송 명장은 "가장 안타까운 것이 우리 전통자수, 손자수의 명맥이 끊어질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아무리 몸이 아파도 학생들에게 자수를 가르쳐 줄 때면 힘이 솟았는데 솔직히 지금은 용기가 나질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송 명장의 마지막 꿈은 그동안 만들어 온 작품을 모두 모아 2년 뒤 팔순전을 여는 것이다.

송 명장은 "팔순전은 기증전으로 진행해보고 싶다"며 "박물관이든 전시관이든 우리 전통자수 작품들이 좀 더 알려지고 보존될 수 있도록 그동안 만들었던 작품들을 내놓고 싶은 마음에서 조금씩 준비하고 있는데 잘 되려나 모르겠다"고 말했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