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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명장> "한 땀 한 땀 자수 외길 60년… 명맥 이어가 큰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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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명장> "한 땀 한 땀 자수 외길 60년… 명맥 이어가 큰 보람"

‘충장로의 보물’ 동구의 명인·명장을 찾아서
19.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
강사 활동하다 손자수 매력 빠져
혼수품목 인기에 ‘병풍계’도 운영
‘육골베개’로 문화재청장상 수상
2009년 자수공예 대한민국 명장
“팔순때 작품 기증전 열고 싶어”

게재 2022-08-18 17:15:31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은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은 "한 땀 한 땀 손으로 직접 떠낸 자수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담기기 마련"이라며 "전통자수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전했다.

8폭의 병풍에 한 땀 한 땀 손자수로 수놓아진 대자연의 풍경이 그녀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60여년째 전통자수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은 10년 전 세상을 떠난 부군이 밑그림을 그리고 본인이 자수를 떠낸 '금강 8경'을 자식 대하듯 소중히 내놓았다.

물감도, 붓도 사용하지 않은 그림이지만, 실과 바늘로 그려낸 전통자수 작품들은 문양과 색채, 질감 등 여느 미술 작품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과 숭고한 가치를 지녔다.

손끝으로 대한민국 전통자수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송현경 대한민국 명장의 인생을 들여다봤다.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이 광주 동구 학동에 위치한 자택 겸 작업실에서 자수 작업을 하고 있다. 평생을 바닥에 앉아 작업을 했기 때문에 고관절에 무리가 와 지금은 직접 만든 거치대에 작품을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작업을 한다.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이 광주 동구 학동에 위치한 자택 겸 작업실에서 자수 작업을 하고 있다. 평생을 바닥에 앉아 작업을 했기 때문에 고관절에 무리가 와 지금은 직접 만든 거치대에 작품을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작업을 한다.

● 생업으로 시작해 '손자수' 매력 빠져

나주에서 태어난 송 명장은 어려서부터 배겟잇을 짜내던 어머니와 외할머니 밑에서 전통 복식을 접하며 자랐다.

배겟모의 면을 6개, 혹은 8개로 나누는 전통 골배게를 지어내던 어머니의 재주를 물려받아 어려서부터 바느질은 익숙히 해왔다.

송 명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어른들의 의견대로 중학교 진학을 하지 않고 4년간 집안일을 배우며 살았지만, 배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결국 17살에서야 다시 공부를 시작해 광주여중을 합격한 수재이기도 했다.

송 명장은 "남들보다 뒤늦게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도 너무 재미있고, 학교 생활도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데 밑에 남동생이 또 공부를 그렇게 잘했다"며 "결국 남동생 공부를 더 시키기 위해서는 제가 학교를 그만두고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바느질에 소질이 있었던 송 명장은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고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YWCA에서 자수 강사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됐다. 3년여간 학생들과 함께 미싱자수를 주로 다루며 기계자수로는 이끌어낼 수 없는 손자수의 깊이에 매료됐다고 한다.

송 명장은 "손자수의 가치를 깨달은 순간부터는 기계자수를 하는 시간이 아까워졌다"며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도 좋지만, 자수라는 것은 사람 손으로 한 땀 한 땀 떠냈을 때야 진정한 마음이 담기고 또 거기서 가치가 나온다고 생각이 들어 그 길로 강사일을 그만두고 단칸방을 얻어 본격적으로 손자수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단칸방에서 남동생 학교를 보내며 살아가던 송 명장에게 그저 떠 내고 싶은 작품만을 하는 것은 사치였다.

그때부터 당시 필수 혼수품목이었던 병풍 작업을 시작해 생계를 이어가며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송 명장은 "당시에는 혼수로 병풍을 무조건 해갔어야 하니까 딸 가진 어머니들은 병풍계를 들기도 했던 시절"이라며 "손재주가 금세 소문이 나서 당시에 그 방 한 칸에서 주문받은 병풍을 밤새 바느질해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기도 하지만, 나는 결국 공부를 그만뒀더라도 그렇게 해서 남동생 잘 키워내고 저는 저대로 손자수를 평생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시기이기도 하다"고 떠올렸다.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이 고인이 된 부군이 도안을 그리고 본인이 자수로 떠낸 '금강 8경' 자수 병풍을 소개하고 있다.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이 고인이 된 부군이 도안을 그리고 본인이 자수로 떠낸 '금강 8경' 자수 병풍을 소개하고 있다.

● 전통 육골베개의 아름다움 되살려내

혼수 품목으로 또 명절이나 제사를 지낼 대면 차례상 뒷편에 꼭 놓여져야 했던 병풍이었지만, 시대가 지나며 병풍의 수요도 사그라들었다.

다른 분야를 생각해내야 했던 송 명장은 어려서부터 봐온 골배게를 생각해냈다.

송 명장은 "내 전문 분야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또 어떤 작품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과정을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며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만들고 사용하시는 것을 직접 보고 자라기도 했고 또 골배게가 옛날에는 사대부 딸들에게만 전수돼 내려왔다고 하는데 그 기반이 호남지역에 있어서 더 애착이 갔다"고 전했다.

민가에서 사용했던 6골배게부터 불교에서 주고 사용했던 8골배게까지 송 명장은 다듬이질을 해 배겟잇을 만들고 명주실을 색색깔로 염색해 자수 문양을 채워넣었다.

우연히 송 명장의 골배게를 접한 손님의 권유로 공예대전에 출품해 지난 2009년에는 문화재청장상을 수상, 같은 해에 자수공예부문 대한민국 명장에 이름을 올렸다.

송 명장은 "이 골배게 자수를 손댔다는 것이 내 인생에서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진다"며 "외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져 오던 것을 제가 잊지 않고 이어갈 수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줬다는 것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이 제작한 육골배게.
송현경 자수공예 명장이 제작한 육골배게.

● 명맥 끊어질까 우려… 팔순 '기증전' 준비

송 명장은 자수공예인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손자수 강의와 체험을 비롯해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끊임없이 후학양성에 매진해왔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크다.

코로나19가 확산된 뒤 사람들이 모일 수 없게 되자 그나마 있던 수업도 거의 다 없어지고 모든 공예가 그러하듯 전수자 찾기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송 명장은 "가장 안타까운 것이 우리 전통자수, 손자수의 명맥이 끊어질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아무리 몸이 아파도 학생들에게 자수를 가르쳐 줄 때면 힘이 솟았는데 솔직히 지금은 용기가 나질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송 명장의 마지막 꿈은 그동안 만들어 온 작품을 모두 모아 2년 뒤 팔순전을 여는 것이다.

송 명장은 "팔순전은 기증전으로 진행해보고 싶다"며 "박물관이든 전시관이든 우리 전통자수 작품들이 좀 더 알려지고 보존될 수 있도록 그동안 만들었던 작품들을 내놓고 싶은 마음에서 조금씩 준비하고 있는데 잘 되려나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