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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농악은 더불어 울리는 일, 共鳴(공명)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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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농악은 더불어 울리는 일, 共鳴(공명)의 다른 이름

농악과 공명
왜 농악을 '울린다'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통상 서양에서는 '새가 노래한다'고 하고,
우리는 '새가 운다'라고 하는데
'운다'라는 표현이 '울음을 운다'의 뜻일까?

게재 2022-01-06 14:39:14
2021. 11. 21. 광주광산농악 한마당. 이윤선
2021. 11. 21. 광주광산농악 한마당. 이윤선

한강의 끝자락 조강포에서 터울림을 한 것이 4년 전이다. 주지하듯이 조강포는 마금포, 강령포와 더불어 한강 하류의 3대 포구였다. 한강, 예성강, 임진강의 염하(鹽河)가 만나 한길을 이루고 서해로 접어드는 물길이다. 전라 충청의 모든 물류가 한양으로 나들던 길목이요 대중국 교류의 대문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쉬었다가 한물을 올라가면 서울 마포다. 지금은 철책으로 막아버려 북쪽 땅끝이 되어버린 곳이다. 2018년 당시 나는 이곳을 중심으로 풍물활동을 하던 노나메기팀과 합류하여 조강포 나루표지석 앞에서 신년 마당밟이를 하였다. 땅을 울리니 터울림이요 바람을 더불어 울리니 공명(共鳴)이었다. 아시아문화연구원 김용국 원장과 만나 내가 제안을 하였고, 노나메기 대표가 응대하여 이루어진 쾌거였다. 분단 이후 최초로 조강포를 울렸던 쇠북소리는 북녘땅 어디까지 울려 퍼졌을까. 지난 2003년 장두석, 박병천, 박사규(기천 문주)선생님을 따라 백두산 정상에서 분단 이후 최초의 천제를 모셨던 기억이 새롭다. 땅이란 무엇일까. 국토란 무엇일까. 조강포에서 바라보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곳이 모두 북한이다. 우리의 울림이 얼어붙은 한강을 그윽하게 울려 평안도로 황해도로 울려 퍼졌을까.

2018년 1월 1일 조강포 터밟이. 이윤선
2018년 1월 1일 조강포 터밟이. 이윤선

분단 이후 최초로 울린 조강포의 터밟이, 울림(共鳴)이란 무엇인가

지난해 말 (사)나라풍물굿의 요청으로 특강을 하였다. 대주제는 '전환기의 풍물굿: 풍물굿이 변화하는 이 시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적응해 갈 것인가'였고, 내 강의 주제는 '울림이란 무엇인가-대동의 공명론'이었다. 질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리토르넬로'를 소개하며 우리 농악의 '울림', 그 정체에 대해 설명한 강의였다. 주의할 것은 여기서의 대동(大同)이 집단주의나 전체주의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어쨌든 하고많은 다른 표현들 놔두고 왜 농악을 '울린다'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통상 서양에서는 '새가 노래한다'고 하고, 우리는 '새가 운다'라고 하는데, '운다'라는 표현이 '울음을 운다'의 뜻일까? 이론이야 많이 있겠지만 내가 주장해 온 결론을 말한다면, 더불어 울리는 일 곧 공명(共鳴)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맞울림과 더불어 울림에 대해서는 본 지면을 통해 여러 번 소개했으므로 구체적인 리뷰는 생략한다. 내 강의는 농악이란 이름의 출처, 농악의 기원, 특히 '울림'이란 공명의 본질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땔나무꾼 나를 초청한 (사)나라풍물굿은 2021년 나라터밟이 행사를 주도하고, 만북울림이라는 이름으로 광화문 등 나라터 울림을 주도했던 그룹이다. 지난해 이들은 한강, 낙동강, 섬진강, 금강, 영산강 등 5개 강의 발원지와 하구를 찾아 샘굿이라는 이름으로 상생의 울림을 도모하기도 했다. 농악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는 시선이자 일종의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나는 이들을 일러 천만 농악꾼(풍물꾼)이라고 표현한다. 본래 마을굿에서 연원한 농악을 염두에 둔다면 천만 아니라 이천만 삼천만 동호인을 보유한 집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다. 이들이 행하는 활동과 운동이 사실은 '농악'의 본질을 연행해 온 것이고, 곧 공명의 울림을 실천해왔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다. 지면상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나누기로 하고, 농악(農樂)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 한 토막만 붙여두기로 한다.

2018년 1월 1일 조강포 터밟이 음복. 이윤선
2018년 1월 1일 조강포 터밟이 음복. 이윤선

농악(農樂)이란 이름에 대하여

농악(農樂)이란 이름이 일제강점기 우리 풍물을 농사(農事)에 제한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들 한다. 농악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정병호의 '농악'에서도 그렇게 주장했고, 여타 전문 연구자들도 그렇게 주장해왔다. 그래서 대안으로 사용한 이름이 '풍물'이다. 과연 그러한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풍물을 축소하여 농악이란 이름으로 호명한 것이 아니라, 농악을 오히려 축소하여 풍물이란 이름으로 호명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물론 '풍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온 저간의 역사와 활동은 그것대로 존중되어야 하지만, 농악이란 이름 혹은 울림이라는 정체를 올바로 지적해두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정초의 마당밟이와 지신밟기에 포섭된 벽사(闢邪)적 기능뿐 아니라 대지와 천상의 신을 울리는 신명의 기능을 염두에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남도 문화재위원 김희태가 오랫동안 이를 주장해왔다. 나는 그가 발굴한 여러 자료를 통해 농악이란 이름의 출처뿐만 아니라 그 맥락에 대해 더욱 견실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농악이란 용어가 사용된 내력을 몇 가지만 살펴본다. 장흥사람 안유신(安由愼, 1580~1657)이 지은 '유두관농악(流頭觀農樂)'은 보성에서 농악을 보고 지은 시다. 16세기에 농악이란 이름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1890년대 매천 황현(1855~1910)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농악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충청도 서천 유생 최덕기(崔德基, 1874~1929)가 쓴 향촌일기 <갑오기사(甲午記事)>에도 농악이 나온다. 김제출신 근대학자 석정 이정직(1841~1910)의 저서 <연석산방미정시고(燕石山房未定詩藁)>에는 시 제목을 아예 '농악'으로 뽑았다. 1914년까지 살았던 보성선비 이교문(李敎文, 1846~1914)의 <일봉유고(日峯遺稿)>에도 '농악'이란 제목의 7언 율시가 있다. 동학과 관련한 석남역사(石南歷史) 및 후손들의 증언집에도 농악이란 이름이 빈출한다. 여기에 마당밟이 지신밟기를 포함한 마을굿(당산굿), 두레풍장, 나례희, 군사 훈련, 유랑 연희, 무격의례 혹은 탈놀이 등 수많은 장르가 합해져 이루어진 것이 오늘날의 농악이다. 관련 내용은 차차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강상헌은 지난해 농민신문 칼럼에서 갑골문 농(農)자를 천문(天文)에 빗대어 설명한 바 있다. 요약해서 말하면 농사는 살림의 다른 이름이다. 죽임의 반대말이 살림이다. 글농사, 밥농사 등 한 해 농사에 비유하는 수많은 언설들이 이를 말해준다. 농사와 농악을 농업만으로 이해했던 오류를 시정하는 것이 터울림 혹은 땅울림이라는 공명의 방식을 제대로 인식하는 첩경이다.

〈남도인문학팁〉

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지난해 칼럼에서 해남의 소농지원 사업을 소개한 바 있다. 이것이야말로 기왕에 해왔던 지력 약탈농업, 소농 수탈농업 등 땅의 기운을 빼앗고 마을의 정기를 빼앗고 종국에는 지역이 소멸해가는 기왕의 시스템을 혁신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다. 농악이란 이름을 너무 농업에 의존한 호명으로 격하시켜온 것 아닌가? 농사의 효용만을 따져, 땅을 수탈하는 농업, 소농과 가족농을 죽이는 농업구조로 재편해온 것처럼 말이다. 어디 농업만 그러하겠는가?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이 다르지 않다. 예컨대 농악이 가진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맥락을 살피지 못한 채 어떤 주된 기능만을 내세우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지지 않겠는가. 농악이란 이름의 출처와 공명의 본질에 대해 극구 이야기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악의 출처가 그렇고 생성의 역사가 그러하며 재구성된 맥락이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꿈꾸어 본다. 혹여 이번 대통령에 당선된 누군가 취임식 할 때, 덩더꿍 꽹과리 들고 덩실덩실 춤추고 나올 수는 없을까?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가 취임할 때, 저들 고유의 춤을 추며 나왔듯이, 자신을 괴롭혔던 교도관과 그의 친구들을 귀빈석에 모셔 자랑스럽게 소개했듯이, 그런 농악 한마당 취임식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