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무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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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토론 무용론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 입력 : 2021. 12.29(수) 13:52
  • 서울=김선욱 기자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국회에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쓰는 마지막 카드가 있다. 무제한 토론을 통해 합법적으로 의사 진행을 지연시키는 행위(필리버스터)다. 야당은 과거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을 여당이 강행처리하려 하자, 필리버스터를 꺼내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무제한 토론'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영국 의회에서는 '프리부터(freebooter)'라고 한다. 토론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셈이다.

토론의 역사는 민주주의와 궤를 같이 해왔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은 '아고라(Agora)'라는 광장에서 마음껏 토론했다. 민회(民會)와 사교 등 일상적인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시민 생활의 중심지는 토론의 광장이었다. 아고라에서 토론하고, 다수결을 통한 의사 결정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특히 비(非) 아테네 출신까지 아고라에 모여 토론을 할 정도로 아테네는 자유와 개방의 나라였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발원지는 토론 광장인 것이다.

아테네가 멸망한 후 2000년이 지나 부활한 민주주의는 대의제(代議制)였다. 토론의 중심에 의회가 자리 잡았다. 대의 민주주의에서의 토론은 서로의 생각을 확장하고 변화시켜 공동선에 합당한 입법 결과를 내놓는 과정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나라들은 토론을 통해 합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토론 문화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자 전제 조건이 됐다. 한 사회나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을 재는 바로미터다. 지혜와 합의를 매개하는 과정으로서 민주 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토론의 묘미는 검증에 있다. 한 쪽에서 논리를 제기하면, 다른 쪽에선 촘촘한 반론을 가한다. 칼이 아닌 말을 무기로 청중을 설득하고, 토론자들끼리 경쟁하면 자연스레 검증이 이뤄진다.

여의도 정치권에 때아닌 '토론 무용론'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지난 25일 "토론을 하면 결국 싸움밖에 안난다"고 발언하면서다. 그러자 윤 후보와의 '맞짱 토론'을 제안해 온 이재명 후보는 "민주주의와 정치가 가지는 본질을 이해 못 한 발언"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5년간 국정을 이끌어보겠다고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토론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그 것이 국민에 대한 기본 도리다. 이를 피한다면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가 된다. 토론 없이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토론이 없다면, 정치도 민주주의도 없다.



서울=김선욱 기자 seonwook.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