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한 안전불감… '붕괴 참사' 人災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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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만연한 안전불감… '붕괴 참사' 人災 차고 넘친다
속도·수익만 좇는 재개발사업 등 ||‘붕괴 참사’ 다단계 하청·날림 철거
  • 입력 : 2021. 06.13(일) 17:11
  • 박수진 기자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돼 지나가던 버스를 덮쳤다. 119 소방대원들이 무너진 건축물에 매몰된 버스에서 승객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지구 건물 붕괴 참사는 예견된 '인재(人災)' 였다.

안전불감증과 속도·수익만 좇는 재개발 사업, 만연한 불법 하도급 관행, 졸속 공사, 관리·감독 소홀 등의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 계약으로 인해 공사 비용이 줄면서 기간을 단축하려는 무리한 작업은 대참사로 이어졌다.

● 불법 다단계 하청·날림 철거

이번 참사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정해진 작업 절차를 어긴 날림 철거 작업에서 비롯됐다.

HDC 현대산업개발로부터 공식 철거 용역 계약을 맺은 ㈜한솔은 지난달 14일 '학동 650-2번지 외 3필지 등 건물 11채(붕괴 건물 포함)를 해체하겠다'며 동구에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실제 공정엔 허가를 받은 ㈜한솔이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일반 철거는 현대산업개발(시행사)→㈜한솔(시공사)→백솔(불법 하청) 등 하청이 이뤄졌다.

개발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로부터 도급받은 '한솔'이 또다른 하청업체인 '백솔'에게 재하도급을 한 것이다.

또 석면 철거 공사 부분은 당초 '다원이앤씨'에게 도급을 줬으나 이 역시 백솔로 재하청을 줬다. 신생 업체인 백솔은 다른 업체에서 석면 해체 면허를 빌린 무자격 업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솔은 한솔과 다원이앤씨 두 회사와 이면계약을 체결한 셈이다.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면서 '이익금 빼먹기'가 벌어져, 철거 공사비는 3.3m²당 당초 28만 원였으나 최종 하청단계에선 4만 원까지 크게 줄었다.

건설 업계 전문가들은 "중간 하청업체가 건설공사 전부 혹은 주요 부분을 또다른 하청업체에게 재하도급하는 것은 오랫동안 이어진 잘못된 관행이며 언제든지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낮아진 단가로 실제 작업에 들어갈 때 인력 부족, 안전관리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해진 작업 절차를 어기고, 날림으로 철거 작업을 해 참사를 초래했다.

철거 허가를 받은 ㈜한솔이 아닌 백솔은 계획서 상 5층부터 아래로 해체(하향식)해야 하는 작업 절차를 어기고, 1~2층을 먼저 허물었다.

이후 건물 뒤쪽에 쌓아둔 흙·폐건축 자재 더미 위(3~4층 높이)에서 굴삭기가 중간부 해체 작업을 했다. 강도가 가장 낮은 왼쪽 벽을 허물어야 하지만 뒤쪽 벽부터 부쉈다.

백솔 대표이기도 한 굴삭기 기사는 장비 하중(30여 톤 추정)을 충분히 고려치 않고 작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위험한 철거 공정을 관리·감독해야 할 감리자는 '비상주감리' 계약에 따라 현장에 상주하지 않았다.

감리자는 건물 구조 안전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해체 계획에 적합 판정만 내렸다.

철거 절차 위반을 적발하면 공사 중지 명령까지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책무를 저버렸다.

● 부실 허가·민원 경시 행정 책임

이번 참사는 구조 안전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철거를 허가하고,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민원도 경시한 관할 구청의 감독 책임도 크다.

동구는 잇단 민원에도 철거 작업이 계획대로 이뤄졌는지 현장 점검을 하지 않았다.

25쪽 분량의 철거 계획서도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층별 철거 계획이 부실했고, 국토교통부 고시와 달리 주요 철거 장비인 굴삭기 하중을 계산하지 않았다.

흙·폐자재 더미로 인해 지하층이 받는 하중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계획서엔 지하층 해체에 따른 지반 영향만 검토하면서 '주변을 굴착한 후 지하 구조물을 해체하므로 토압에 의한 붕괴 위험이 없다'고 적었다.

수차례 안전 사고를 우려하는 민원도 무시했다.

붕괴 두 달 전엔 같은 구역에서 철거 중인 건물(옛 축협)의 사고 위험성을 제기하는 공익 제보가 있었고, 한 달 전에도 안전 위협 민원이 잇따랐다. 하지만 동구는 구두 통보, 공문 발송 조치만 했다.

이처럼 재개발 사업 중 대형 참사가 발생했고 안전 규정 미준수와 법규 위반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재개발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철거업체 선정 및 계약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하거나 조합, 시공사, 업체 간 불법 행위 등은 앞으로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번 사고가 조합까지 연관된 것으로 밝혀지면 16년간 진행해온 재개발 사업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학동4구역은 2005년 재개발추진위원회 설립 이후 2007년 8월 주택 재개발정비사업조합 설립 인가를 받았다.

조합 측은 2017년 2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뒤 2018년 2월 현대산업개발을 4천631억원 규모(29층 아파트 19개 동·2314세대) 재개발 사업 시공사로 선정했다. 올해 9월 일반분양을 한 뒤 3년 6개월가량 공사를 거쳐 입주가 예상됐다.

박수진 기자 suji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