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마지막 귀향길 짚어간 14일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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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마지막 귀향길 짚어간 14일간의 기록
  • 입력 : 2021. 04.01(목) 14:47
  • 박상지 기자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이광호 | 푸른역사 | 1만7000원

퇴계 이황은 '동방의 주자'라고 불리던 조선시대 대 유학자다. 성호 이익은 퇴계를 공자, 맹자에 견주어 '이자(李子)'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퇴계는 일반인들에게 고루하고 현학적인 인물로 각인돼 있다. 신간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를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책은 도산서원의 참공부모임 회원들이 2019년 봄, 퇴계의 마지막 귀향길을 그 옛날 일정대로 도보로 답사한 기록이다. 서울에서 안동까지 243㎞(나머지 30여 ㎞는 배를 이용했다)를 열흘 남짓 걸었는데 이를 13인의 학자가 구간별로 나눠썼다. 일종의 여행기라 하겠는데 이것이 기가 막히다. 주변의 풍광, 역사는 물론이고 퇴계의 가르침과 인간적 면모를 단아한 문장에 담아내어 탁월한 '인문학 여행서'가 탄생했다.

퇴계의 유학세계를 보통사람이 이해하기는 힘들다. 이 책의 으뜸 미덕은 퇴계의 생애를 짚으며 퇴계 사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퇴계가 추구했던 것은 높은 벼슬과 그에 따른 명예나 이록이 아니었고, 내면으로 침잠해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찾고 회복하는 군자의 길이었다. 그것을 퇴계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했고"(127쪽) "경敬은 귀부인이 주인이나 임금을 만나러 가기 전에 몸단장하는 모습을 그린 글자로, 그 의미는 '공경'이 본질이다.… 본뜻보다는 하늘 공경의 의미로 널리 쓰이다가 주나라 중엽부터 다시 인간 공경의 의미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139쪽) 같은 대목이 그렇다.

퇴계에 관한 이야기이니 자연스레 옛 이야기도 풍성하게 실렸다. 여주 흔바위나루의 유래를 설명하는 128쪽이 지나는 곳에 얽힌 고사라면, 천 원권 지폐에 담긴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퇴계가 고향 계상에서 '주자서절요'를 집필하는 모습을 상상해 그린 것이란 숨은 일화도 전한다(104쪽). 그런가하면 조선왕실의 골칫거리였던 '종계변무' 문제가 고려 말 명나라로 망명한 윤이와 이초의 농간 탓이었다는 뜻밖의 사실(161쪽)도 접할 수 있다.

책에는 "필하무완인筆下無完人"이란 구절이 나온다(149쪽). '붓 끝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는 뜻인데 이 책에서 만나는 퇴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 싶다. 고매하면서도 유현한 퇴계의 삶이 "뛰면서 보는 풍경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며 보는 풍경은 휙 돌아서는 풍경이다. 걸으며 보는 풍경은 서서히 다가와서 멈추는, 그래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그런 풍경이다" 같은 구절과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모처럼 만난, 읽는 재미에 뜻깊은 의미를 담은 책이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