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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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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정치'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게재 2021-03-07 14:50:34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그냥 덧없이 흘려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을//

가수 김도향이 부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 가사다. 덧없이 살아온 인생을 바보라는 이름으로 노래하니 묘한 감흥이 전달된다. 우리에게 바보는 꽤 친숙하고 다정다감하게 다가온다. '딸 바보', '아내 바보'처럼 애칭으로 불린다. 우직하고 선량한 사람에게 친애의 표현으로도 딱 맞는다.

손해가 뻔히 보이는데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사람, 자신을 돌보거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조건없는 사랑을 베푸는 이들의 애칭이기도 하다. 한국의 슈바이처이자 가난한 자들의 의사, 장기려 박사. 지역감정을 타파하겠다며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을 거듭한 노무현 전 대통령. 사람들은 이들을 '바보'라고 불렀다.

바보라는 말에는 특유의 정감과 부드러움, 겸손과 순수가 배어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바보라고 칭하는 경우도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자화상에 '바보야'라고 이름 지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바보 산수'는 단순하고 부족해 보이는 듯 하나, 깊은 이야기와 정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같은 순수함을 느끼게 한다.

지난주, 정치권에 때아닌 '바보 논쟁'이 일었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였던 나경원 후보가 '바보 나경원의 손을 잡아주십시오'라며 지지를 호소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나 후보는 10년전 오세훈 전 시장의 사퇴로 불리했던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음해에 시달렸고, 지난 2019년 야당 원내대표로 정치보복이 예상되는데도 처절하게 저항했다며 어쩌면 바보같이 정치를 해왔다고 했다. 이 말에, 더불어민주당 청년 대표인 박성민 최고위원이 발끈했다. 그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숭고한 정치적 가치가 훼손되는 듯한 불쾌감을 느꼈다. 함부로 노 대통령 코스프레하지 말라"며 나 후보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조은희 예비후보가 다시 나서 "민주당의 '바보독점권'이 어처구니가 없다"며 공격했다.

'바보 노무현'은 기성질서 뒤에 숨지 않았다. 지역주의에 맞서 싸웠다.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정치적 득실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에게 '바보'라는 애칭을 헌사했다. 그가 정치권에 다시 소환되는 것을 보니, 선거의 계절이 돌아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