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동백(冬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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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동백(冬柏)
  • 입력 : 2021. 01.21(목) 11:05
  • 편집에디터

동백문 베갯모, 월간민화에서 발췌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저 유명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다. 이미자는 1964년 이 노래를 불러 일약 국민가수로 등극하게 된다. 역사상 처음으로 100만장이 넘는 음반을 판매한다. 한산도(한종명) 작사, 백영호 작곡, 하지만 왜색풍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금지곡으로 묶이게 된다.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는 가사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붉은색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던 시대였기 때문일까. 하지만 전문 연구자들에 의하면 왜색이나 빨갱이라는 배경 보다는 박정희정권의 '한일국교정상화'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한다. 한일수교 반대, 저자세 외교논란을 미연에 차단했다고나 할까. 이 노래는 우여곡절을 거쳐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해금된다. 왜색의 혐의를 입었던 것은 트로트 자체에 대한 이율배반이랄까, 뽕짝은 무조건 요나누키 음계이고 일본의 것이라고 폄하했던 시대적 풍조가 한몫을 했다. 민요 등 전통음악의 쇠잔, 트로트와 가요의 병존, 급속한 산업화, 농촌인구의 와해 등 상황들이 얽히고설킨 시대이기도 했다. 이즈음 트렌드이기도 한 트로트 열풍을 보면 일종의 격세지감을 느낀다. 트로트에 대한 시선 자체가 염세나 비관, 저급이나 신파의 정조를 뛰어 넘은지 오래다.

동박새가 꿀물 날라다주어야 비로소 피는 꽃

<동백아가씨>는 남해안 혹은 섬지역을 중심으로 상징화되어있는 동백꽃을 아가씨에 대입한 것이다. 하지만 동백에 대한 전통적 시선은 비관과 좌절, 애수와 연민 보다는 오히려 고결과 숭고, 절개와 지조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민화(民畵)나 묵화(墨畫) 특히 화조도(花鳥圖)의 소재 중 하나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춘수가 그랬다. 이름을 불러주어 비로소 꽃이 되었다고. 아무리 아름다운 대상일지라도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극한 고백 아닌가. 한걸음 나아가 동백은 새가 날라다주어야 비로소 피는 꽃이다. 그래서 조매화(鳥媒花)다. 북한에서는 '새나름꽃'이라 한다. 새에 의해 꽃가루가 매개되는 꽃이라는 뜻이다. 동백꽃의 꿀을 빨아먹는 동박새가 꽃가루 옮겨주는 기능을 한다. 동박새는 동백꽃의 꿀을 먹고 살고 동백꽃은 동박새가 꿀을 옮겨주어야 수정을 한다. 그래서 '동백새'라고도 한다. 동박새는 한국, 일본 등지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 분포하는 텃새이다. 섬이나 연안 등지 동백숲에서 살기에 울릉도나 제주도, 서남해 섬지역에서 볼 수 있다. 몸의 길이는 11cm정도, 등은 연한 녹색인데 날개와 꽁지는 녹갈색이다. 배는 흰색이고 눈 가장자리가 은색의 흰고리 모양이다. 동백꽃의 꿀을 좋아하여 식물성 꿀과 열매를 먹는다. 또 에벌레나 거미, 곤충류 등의 동물성 먹이를 먹고 산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공생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동백꽃과 동박새의 관계는 명실상부한 공생이다. 옆구리에 붉은색을 띠고 있는 동박새를 김치자국이라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애수와 비련에서 휴머니즘과 고결까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어느 나라에 포악한 왕이 살았다. 자식이 없어 자리를 물려줄 수 없었기에 동생의 두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게 되었다. 욕심 많은 왕은 그것이 싫어서 조카들을 죽일 궁리를 하였다. 동생이 이를 알고 아들들을 멀리 피신시켰지만 이내 들켜버리고 말았다. 왕은 동생에게 두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어 스스로 자결을 하고 말았다. 동생은 죽어 동백나무가 되었고 아이들은 동박새가 되었다. 동박새가 동백나무에 둥지를 틀고 동백꿀을 따먹으면서 사는 내력이다. 울릉도나 대청도 등지 섬에는 육지로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섬의 아내가 죽어 꽃이 되었다는 설화들이 전해온다. 설백의 배경에 마치 핏덩이처럼 새빨갛게 핀 동백이 사람들의 심성을 그렇게 움직였을 것이다. 섬지역에 깃든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이런 이야기로 창조되었을 터인데 기왕이면 좀 더 아름다운 이야기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 싶다. 동백을 한편에서는 산다화(山茶花, 산의 차꽃)라고도 하는데 이는 아기동백꽃(춘백)이다. 동백꽃차의 애용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니 그 역사가 꽤 깊은 모양이다. 겨울에 피면 동백(冬柏), 봄에 피면 춘백(春栢)이라 하니 바람 속에 피면 풍백(風柏)이요, 눈 속에 피면 설백(雪柏), 마음속에 피면 심백(沈柏)이랄까. 어쩌면 심중의 꽃 심백(心柏)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남도지역 특히 섬지역에서 긴요하게 쓰인다. 신랑 신부가 처음 만나 마주하는 교배례의 경우, 신부집에서 마당에 초례청을 세우고 갖가지 장식을 한다. 대개 꽃병에 송죽(松竹)이나 사철나무를 꼽는데 남도지역에서는 동백꽃을 사용한다. 굳은 절개의 의미로 해석한다. 사철 푸르다는 것 외에, 시들지도 않고 꼭지 채 떨어져 내리는 낙화의 이미지도 한몫 했을 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꽃을 피우고 많은 열매를 달기 때문에 다산의 상징으로 삼기도 한다. 동백나무 가지로 여자의 엉덩이를 치면 남아를 잉태할 수 있다는 등 임신을 돕는다는 속설이 그래서 나왔다. 이런 심미안은 그림으로도 나타난다. 묵화(墨畫)가 사군자를 그리는 것이라면 민화(民畵)는 초충(草蟲, 풀과 벌레)을 그린다. 민화라고 사군자의 소재를 그리지 않겠는가만 고고하고 절절한 기풍보다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강조했다고나 할까. 그 중 매화, 수선화 등과 함께 즐겨 그렸던 것이 동백꽃이다. 문자 그대로 겨울(冬)에 피는 꽃이기에 정절이나 고결의 의미를 내포한다. 뜻으로 보면 사군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조와 절개를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시대를 살고 있어서일까. 동백아가씨와 동백꽃 그림을 넘어 해안마다 지천인 동백숲이 그립다. 동백꽃 모가지 채 뚝뚝 떨어져 내리는, 마침내 바뀔 계절 기다리며 오늘 남도인문학 팁은 졸시 한편으로 대신한다.

섬동백(島冬柏)

이윤선

너 어쩌자고 꽃술 하나 시들지도 않은 채

송이송이 꼭지 채 떨어지느냐

순백의 한겨울 무슨 곡절 그리 깊어

홑꽃잎마다 검붉은 멍들 우그린 채로

왕의 명을 받을 수 없어 스스로 자결하고선

동생은 동백나무 되고 그 아들들 동박새 되었다지.

육지나간 남편 무슨 일로 늦게 돌아와

동백으로 변한 아내 찾는 동박새 되었다지.

비로소 이름 불러주어야 꽃이 된다 하더라만

동박새 꿀물 날라주어야 피는 동백꽃만 하겠느냐

겨울마다 계절마다 순백의 풍경으로 스며들어

세상 모든 가슴앓이 감아 안는 설백(雪柏)만 하겠느냐

계절 가면 간단없던 북풍한설 지나고

세월 가면 생채기 난 나이테도 아물어지는데

당산 남쪽 조산숲으로 서고 갯골 동편 우실로 서서

바람 눈비 맞서고 물결마저 헤쳐 왔는데

너 어쩌자고 홑잎 하나 시들지도 않은 채

야속하단 한 마디 없이 댕강댕강 떨어지느냐

사철 푸른 잎가지 가없는 백설 풍경으로 두고

붉은 입술 붉은 심장 그저 초연히 떨어지느냐

최천숙 민화, 동백아버지, 월간민화에서 발췌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 동백림(천연기념물 제151호) 땅바닥이 떨어진 동백꽃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뉴시스

눈 맞은 동백. 뉴시스

동백새의 겨울나기.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