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금지(2)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낮술 금지(2)
  • 입력 : 2021. 01.05(화) 16:50
  • 박상수 기자
지금은 고인이 된 문병란 시인은 '아무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는 날/아무 일도 하고 싶은 일이 없는 나는/혼자서 낮술을 마신다'(시 '낮술')고 썼다. 김수열 시인은 낮술을 '나와 내가 마주 앉아 쓸쓸한/눈물 한 잔 따르는/그 뜨거움'이라고 예찬했다. 시인에게 낮술은 고독할 때 홀로 마시는 '혼술'이다.

순천시가 전국 최초로 낮술 금지령을 내려 논란이 뜨겁다. 허석 순천시장은 지난 3일 긴급 담화문을 통해 4일부터 17일까지 음식점에서 오전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류 판매를 금지하도록 행정명령했다. 심야 영업을 하는 순천지역 주점이 영업 제한 시간을 교묘하게 피해 오전 5시부터 영업을 한 것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지탄 대상이 된 것이 이 같은 조치로 이어졌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오죽했으면 이런 조치를 취했겠느냐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순천에서는 새해 들어 5일까지 모두 18명의 확진자가 나와 코로나19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낮술은 건전한 이미지가 아니다. 대낮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다니는 사람을 보면 인상이 찌푸려지게 마련이다. 옛말에 '낮술에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고 했다. 낮술이 밤에 마시는 술보다 빨리 취한다는 과학적 근거도 있다고 한다. 우리 몸의 장기는 낮에 감수성이 고조되는 데 비해 밤에는 뇌의 감수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아침이나 낮에 마시는 술은 저녁에 마시는 술보다 빨리 신체에 영향을 주고 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두운 밤이 아닌 낮이라는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술을 마시면 심리적으로 더 빨리 취하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근무 중에 마시는 낮술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방자치단체가 낮술 금지령을 내린 것은 너무 치고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영업 시간 제한으로 매출 부진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고충은 전혀 감안하지 않은 조치다. 선제 방역이 중요해도 시민들의 영업의 자유, 낮술 마실 권리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공식적으로 위법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방역 사령탑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권고가 없었는데도 순천시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극약 처방을 한 것은 돈키호테적이고 사회주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순천의 자영업자들만 차별을 받아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코로나19 방역이 급해도 자치단체가 할 일이 있고 하지 않을 일이 있다.

박상수 주필 sspark@jnilbo.com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