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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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지연된 자살'
곽지혜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0. 10.26(월) 16:21
  • 곽지혜 기자
얼마 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광주·전남지역센터 통폐합 문제에 대해 취재한 내용 중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 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지연된 자살'이다.

'지연된 자살'은 국가적 재난 상황 초반에는 생존 본능과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연대감을 통해 일시적으로 자살률이 감소하지만, 상황이 장기화될수록 증가세를 보이는 현상에서 비롯된 말이다.

쉽게 말해 당장 수십억원의 빚이 생기거나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수감되는 등 극한의 순간에서 생을 마감하기보다는 그 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심리와도 일맥상통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자살도 뒤로 미뤄지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사회의 '지연된 자살'에 대한 우려도 크다. 실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까지 잠정 집계된 자살 건수는 6278건으로 지난해 상반기(6431건)보다 153건 줄었다.

일본에서는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일본인 자살자 수를 조사한 결과 전년동기대비 약 14% 감소했으며 영국의 자살자 수도 인구 10만명당 10.3명에서 6.9명으로 줄었다는 발표가 있다.

이와 같은 현상으로 전문가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지연된 자살'이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지연된 자살'은 이미 도박 중독 치료자들에게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도박 중독은 술이나 담배 같은 '물질 중독'이 아닌 '행위 중독'에 속하기 때문에 당사자의 의지로는 자가치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흔히 술·담배는 끊어도 도박은 못 끊는다는 말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도박 중독으로 인해 이미 경제적으로 파산인 상태로 치료 의지를 갖고 지역관리센터를 찾는다. 하지만 치료 과정에 조금만 소홀히하거나 뒤돌아서면 또다시 도박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치료와 중독 사이에서 발버둥 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더욱 깊은 좌절감에 빠진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힘들어하는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이 쌓여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지연된 자살'에 해당하는 치료자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박 중독 치료가 일시적인 약물과 처방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매일 찾아갈 수 있고, 매일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을 수 있는 전문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상황에 지역 도박관리센터를 없애는 것은 국가가 나서 국민의 '지연된 자살'을 돕는 모양새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