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에서 끄집어 낸 특별한 역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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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소소한 일상에서 끄집어 낸 특별한 역사들
살아남기 작업하기 살아가기 5>이세현 작가||바운더리·에피소드 주제로 역사·일상 사진으로 기록
  • 입력 : 2020. 08.06(목) 17:26
  • 박상지 기자

이세현 작 'boundary-군함도'

시간을 가두는데 사진만큼 근사한 수단이 또 있을까. 사진에는 피사체만 볼 수 있는게 아니다. 순간의 분위기와 날씨, 감정, 찍는 사람의 의도까지 모두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은 기록의 수단이자 역사의 증인, 감정의 언어다. 이세현(37) 작가 역시 사진 속에 순간의 감정과 역사, 그리고 인연을 담고있다.

●살아남기: 인간다움을 배우다

"친구에게 물었어요. 아주 어렸을때 소풍가서 찍은 사진을 기억하냐고요. 그리고나서 내가 간직하고 있는 그 사진을 보여줬어요. 사진 속에는 그 친구와 저 밖에 없었는데, 사진이 찍힌 순간에 관한 기억들이 이사람 저사람 입을 통해 계속 흘러 나오는거에요. 사진 한장이 가지는 위력을 실감했어요."

사진의 의미를 되새길때 늘 떠올리는 경험이다. 사실 이 작가가 대입에서 사진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은 수능을 완벽하게 망쳤기 때문이다. 펑펑 울며 시험장에서 나오고있는 아들에게 그의 어머니는 "사진학과를 가보는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대학에서는 공부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던 이 작가는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사진이 무엇인지,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은 없었단다.

"좋은 은사님을 만났던 것이 인생의 한 수 였죠. 당시 저희 대학에서 최광호 사진작가가 2년간 강의를 해주셨어요. 우연한 계기로 3,4학년 대상의 '예술사진학'을 신입생때부터 들을 수 있었어요. 사진이 무엇인지도 알려주셨지만, 방학때마다 교수님과 해안선 여행을 하면서 '사진의 맛'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죠."

2011년부터 최근까지 진행하고 있는 '순환'프로젝트는 이 작가가 은사로부터 배운 작업철학을 실천한 단적인 예다.

작가의 작업에 대한 관람객의 관심이 사회로 환원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프로젝트는 전시장에 설치된 이 작가의 작품을 관람자가 구입한 후, 작품을 떼어낸 자리를 관람자가 현장에서 그린 작품으로 채우는 형식이다. 관람자의 작품 구입비는 전시가 끝난 후 쌀이나 생필품 등으로 교환된 후 사회복지시설에 기증된다.

●작업하기: 피사체에 역사를 되새기다

이 작가는 '돌'을 소재로 작업한다. 이 작가의 작업 중 '돌'을 소재로 한 '바운더리(boundary)' 작업은 10%에 불과하지만, 유독 '이세현 작가=돌'이라는 공식을 떠올리는 이유는, 작품이 주는 강렬함 때문일 것이다. 국내외 역사적 장소의 공중에서 파편과 함께 흩어지는 돌은 무생물임에도 불구하고 퇴색된 공간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어떤 공간을 기억할때 우리는 그곳에서 일어났던 역사를 떠올려요. 그 순간만을 기억하는거죠. 그런데 역사가 발생하기 전에도 그 장소는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겠죠. 그 장소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존재는 돌 밖에 없더라고요."

역사의 증인으로 돌을 소재 삼았지만, 거기에는 더욱 심오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시간에 의해 단단했던 돌이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된 후 진흙이 되고, 그 진흙이 뭉쳐져서 다시 돌이 되는 '순환'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가 있는 공간도 시간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어요. 돌도 시간에 따라 자갈이되고 모래가 되고 진흙이 되지만 결국에는 다시 돌이 되죠. 역사적 장소 역시 시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할 수 있지만, 마지막에는 그 역사적 의미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던진 돌을 통해 관객이 그 역사적 장소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980년 5월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국군통합병원을 비롯해 옛 전남도청, 노근리, 마레2터널, 고성 등 비극의 장소에서 이 작가는 여전히 돌을 던지고 그 돌의 파편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다.

●살아가기: 일상에서 사회를 발견하다

이 작가가 특별히 애착을 갖는 작업은 '에피소드(episode)'다. 토막잠 자는 청년들의 뒷모습, 수풀에 무심히 던져진 서양 작곡가들의 초상화, 버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 쌓인 사료포대 앞을 배회하는 비쩍마른 닭 등의 일상이 작품이 됐다. 흔한 일상 속에서 모순으로 점철된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점이 '에피소드'의 특징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 사소한 일상에 내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사소한 일상이 철학이 되고 정치가 되고 사회문제가 되더라고요. 사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일상들, 어렵게 생각되어지는 역사 정치 철학은 당신이 겪는 일상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유독 '연대'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위기 속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연대'라는 말에 그 역시 공감한다.

"일상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연대란 일상'이더라고요. 한명 이상이 만나서 공통된 분모로 이야기 하는 것, 그로인해 맺어진 인연이 연대에요. 예전에는 특정한 사건에 의해 연대가 생겨났다면, 지금은 사소한 일상을 나누는 지점에서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당신과 나는 2020년을 함께 숨쉬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린 연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세현 작 'boundary_알뜨르비행장'

이세현 작 'episode'

이세현 작 'episode'

이세현 작 'episode'

이세현 작 'episode'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