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세대, 바이러스에서 생존력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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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바이러스 세대, 바이러스에서 생존력 얻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살아남기 작업하기 살아가기 1> 김시원(24) 작가
  • 입력 : 2020. 07.22(수) 16:50
  • 박상지 기자

김시원 작 'always'(2020)

1997년생들은 '보편적 학창시절'을 보내왔던데 있어 비운의 세대들이다. 인생 마디마디 설렘과 긴장의 순간엔 늘 바이러스가 훼방을 놓았다.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하면서 인생 첫 수학여행을 떠나는데 발목을 잡았다. 2015년에는 메르스가 고3의 수험일상에 긴장을 더했다. 그리고 올해, 사회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코로나19가 1997년생들의 꿈과 계획을 초토화시켰다. 학사모를 하늘에 던지는, 그 흔한 세레모니도 없이 몇평 방 안에서 외로운 졸업식을 치러야 했다.

김시원(24) 작가 역시 1997년생이다.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지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훼방을 놓는 바이러스 때문에 또래들은 기대감 대신 '우울증'을 겪고있다고 했다. 김 작가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기회들을 박탈당하면서 '코로나 블루'가 찾아왔었지만, 동시에 본인의 작업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살아남기=가장 나 다운 것? '촌스러움'

두 귀를 턱까지 늘어뜨린 강아지 얼굴이 갖가지 표정으로 화면 안을 가득 채운다. 수십가지의 화려한 색상은 화면에 조금의 틈도 남기지 않는다. 김 작가만의 정체성이 담긴 캐릭터의 이름은 '개순이'다. 김 작가의 작품 안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3학년때 이지만, 알록달록한 색깔의 '개순이'를 처음 선보였던 것은 대학교 1학년때다. 당시 지도교수는 "싸구려 카페에나 걸릴만한 그림"이라고 독설을 퍼부었고 그 충격에 2년이 넘도록 개순이를 그리지 못했다.

"내 성격은 모 아니면 도 에요. 중간이 없어요. 틀에 박힌걸 안좋아하죠. 세상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상한 것'으로 평가받는 사회가 싫었어요. 작가들이 자기만의 색을 낼 수 없게 사회가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어요. 그럴수록 저는 색깔을 더 많이 썼죠. 같은 색이라도 최소 2~3가지 종류를 동시에 사용해요. 교수님들은 '촌스럽다'고 평가했지만, 나는 그 '촌스러움'이 나만의 색이라고 생각해요."

남이 볼때 편안한 그림, 좋아하는 색상을 쓰면 더 대중적일 수 있겠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색과 형태로 작업하는 것이 작가로서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단다. 지도교수의 독설에도 불구하고 2년만에 알록달록 개순이 작업으로 돌아 온 이유다.

●작업하기: 개순이 안에 동심을 기록

김 작가는 '개순이'를 통해 동심을 그린다. 성인이 되면서 조금씩 닳아 없어져가는 동심과 상상력들을 '개순이'안에 기록하듯 담아가는 작업이다. 한때 펜화를 그리기도 했다. 펜으로 하는 드로잉은 즐거운 작업이었지만 늘 색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어쩌면 색에 대한 갈증은 정형화된 모습만 추구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반감이었을 지도 모른다.

김 작가만의 캐릭터인 '개순이'는 김 작가 어린시절의 전부였다. 겁이 많고 무서움을 많이탔던 김 작가에게 어머니는 딸의 몸체만한 강아지 인형을 하나 사주었다. 그게 개순이다. 잠잘때마다 안고 잤던것은 물론,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설움이 복받칠때도 개순이에게 얼굴을 묻고 울었다. 지금은 낡아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버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존재이다.

"개순이는 자연스럽게 내 삶에 스며들었지만, 낡아서 더이상은 함께 있을 수 없어요. 동심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나이가 들고 사회에 스며들수록 나의 예민했던 부분들이 다른이들에게는 부정적으로 느껴지는것 같아 숨기고 부정하게 되죠. 그렇게 사람들은 비슷비슷해져가요. 자신만의 색을 잃어가고있는데, 또 그게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죠."

●살아가기: 치열한 작업위해 취업

조선대 미술대학 졸업생 중 전업작가의 길을 걷는이들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교수들은 "전업작가가 되기 위해선 최소 10년을 지독하게 작업에 매달려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말하며 학생들을 긴장하게 한다. 최소 10년을 경제활동 없이 작업만 한다는 것이 가족들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우게 되는지 아느냐고 학생들은 되묻는다. 매년 미술대학에서 배출되는 전업작가의 수가 한자릿 수에 불과한 이유다. 김 작가 역시 졸업 후 가장 먼저 집어들었던 것은 미술가용 붓이 아닌 화장품 브러쉬였다.

"돈을 벌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전공을 살리면서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화장품 상점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게됐죠. 손님들 얼굴에 메이크업을 해주면서 어울리는 색을 추천해 주는 일이 그래도 즐거웠던것 같아요. 올 초부터 5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도저히 불안해서 더이상을 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뒀습니다."

매일 2시간씩 방에서 작업을 하면서 '과연 작가를 할 수 있을까' '그림을 언제까지 그릴 수 있을까' 등에 관한 고민을 하고있다. 평면 회화로는 하고싶은 말을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설치,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에 '개순이'를 담아보고 싶은 욕심도 크다. 일정한 작업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선 유동적으로 근무하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중이다.

"유튜브나 SNS를 통한 원데이 클래스나 스스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미술키트 제작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술학원을 운영해 일반인들에게 미술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기도 합니다. 이루고 싶은 꿈도 많죠. 무엇보다 대학원 진학을 통해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김시원 작 'Look at'(2020)

김시원 작 '꿈'(2018)

김시원 작 '시간'(2020)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