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경력을 가진 죽부인 장인 김종근 씨가 자신이 만든 죽부인을 들고 밝게 웃고 있다. |
"담양에 죽물시장이 있을 적에는 죽부인부터 시작해서 대나무 공예품이 인기였제. 지금은 담양에도 담양산 대나무 공예품보다 수입품이 훨씬 많지라. 어쩔 수 있나. 대나무 장인들도 나이를 먹는데…."
담양군청 공식 SNS에 투박한 손을 찍은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담양에서 40년 동안 죽부인을 만들어 온 김종근 장인의 손이다. 담양군은 '담양의 백수'라는 코너를 통해 생활 속 달인 100명의 손을 소개하고 있다.
김종근 장인의 손은 자잘한 대나무 살들이 박혀 이제는 마디마다 단단한 굳은살이 깊게 박였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사람들의 더위를 식혀줬던 죽부인은 김종근 장인의 일생이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담양서도 인정한 장인의 손이지만, 김종근 장인은 예로부터 담양사람들은 시간 남으면 만들던 게 죽부인이라고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김종근 장인은 담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나무로 공예품을 만드는 집안에서 자랐다. 김종인 장인은 "어렸을때부터 대나무를 다듬어 참빛을 만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컸다"며 "죽부인을 만든 지는 벌써 40년째다. 왜 죽부인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오래돼 기억도 안난다. 아마 대나무가 흔한 동네니깐 뭘 만들까 고민하다 죽부인을 택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기계로도 만들 수 없는 죽부인은 대나무 살을 벗기는 일부터 모두 수제로 진행된다. 대량생산을 할 수 없으니 지금도 하루에 만드는 양은 네 다섯개 정도가 다다. 원통에 쪽을 내고 댓살을 벗겨 끈적한 대나무 진액을 말리는 일까지 모두 직접한다.
김종근 장인은 "습기없이 바짝 말려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대나무 껍질로 길고 둥글게 얼기설기 엮으면 된다"며 "담양 시내에 있는 대나무 공예품 전문점에 납품하고 인터넷으로 주문받고 있다. 요즘은 죽부인 안에 조명을 넣어 등으로 많이 활용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대나무 공예품을 생각하면 괜스레 안타까움 맘이 들 때도 있다. 1990년대 들어 죽부인을 비롯한 대나무 공예품은 값싼 중국산에 치여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여건이 좋지 않아서다.
김종근 장인은 "죽물시장이 없어지고 나서 대나무 공예가 많이 쇠퇴했다. 공예품 전문점에도 수입품이 대부분이다"며 "워낙 비전이 없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 남아있는 공예사들도 손에 꼽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최근 대나무박물관에서 담양 장인들과 젊은 공예사들을 연결해 양성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맘이 놓인다고. 전국 최대 대나무 생산지로 알려진 담양군에서도 '전국대나무디자인공예대전'을 매년 개최하는 등 노력을 이어 나가고 있다.
김종근 장인은 "대나무는 찬성질이 강하고 온도변화가 크지 않다. 죽부인을 안고 자면 한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맴돈다"며 "담양 대나무에 많은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도선인 기자 담양=이영수 기자
담양=이영수 기자 yslee2@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