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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치유하지 않으면 공동체 무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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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치유하지 않으면 공동체 무너져"

명지원 광주트라우마센터장
국립화 맞춰 센터 운영 등 법적 근거 마련해야
안정적 내담 장소 확보·직원 정규직화도 과제

게재 2020-07-09 17:38:39

명지원 광주트라우마센터장.
명지원 광주트라우마센터장.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자들은 1차 외상 이후에 끊임없이 격리, 감시, 통제, 낙인과 같은 2차, 3차 외상에 시달립니다. 분노, 죄책감에 시달리다 정상의 삶이 불가능하죠. 가해자인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치유를 넘어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도 불가능합니다."

5·18민주화운동과 같은 국가폭력의 피해자 치유를 목적으로 2012년 설립된 광주트라우센터가 국립화에 성공하면서 옛 국군통합병원으로 확대·이전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8월 센터장으로 임명된 명지원 센터장은 '센터설립과 운영에 관한 법률안' 마련을 가장 큰 과제로 꼽았다.

명지원 센터장은 "국립화로 확정됐음에도 여전히 법적 근거 없는 상황이다"며 "이는 내담자를 위한 안정적인 장소 확보, 직원들의 정규직화 등 중요한 문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옛 국군통합병원으로 이전이 확정됐지만, 법적 근거가 없으니 국비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오월어머니집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만난 명지원 센터장. 가장 기억에 남는 내담자는 80년 5월 당시, 누나 결혼식으로 광주에 방문한 최용식씨다. 최용식씨는 우연히 본 군인들에 만행에 분노했고 시위에 참여했다. 광주를 벗어난 이후, 수배 생활을 하다 군인에 붙잡혔고 유망한 엔지니어였던 젊은 청년은 고문 후유증과 함께 늙어갔다.

명지원 센터장은 "처음 센터에 왔을 때, 어눌한 말투와 눈 마주침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어두운 모습이었다. 죄책감과 해결되지 않는 분노로 가족과의 관계도 불안정했다"며 "지속적인 치유 활동을 통해 지금은 학교 경비원으로 재직할 정도로 일상적인 삶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80년 5월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회로 활동하다 고초를 겪은 고 명노근 교수의 딸로도 알려진 명지원 센터장은 아버지를 영원한 자유인으로 기억했다. 명지원 센터장은 "아버지는 성실한 기독교인이었다. 항상 정의를 생각했다"며 "치유와 재활 활동을 하면서 아버지의 아픔을 몰랐던 것은 아닌가 후회도 된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트라우마센터는 지난 2012년 개소해 국가폭력 생존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심리상담과 치유,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인권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광주트라우마센터 국립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으며 2020년부터 시범사업으로 국립으로 운영 중이다. 현재 국립화 관련 법안을 마련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