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다시 동굴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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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다시 동굴 앞에서
  • 입력 : 2020. 04.22(수) 13:06
  • 편집에디터

사진1. 세월호 목포외항 현재 모습(뉴시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뒤안의 라일락 그 진한 향내를 맡고서야 불현 듯 시인 엘리엇을 떠올렸다. 늦은 오후 라일락 가지를 흔들며 룩셈부르크 공원을 가로질러 오던 한 친구가 있었을까. 훗날 갈리폴리의 진흙에 들어간 한 친구가 있었을까. 하마터면 가장 잔인한 달, 세월호 6주기의 4월을, 동박새 쪼르르 날던 춘백 숲 어느 물가로 날아간 친구들을 잊어버릴 뻔했다. 깊고도 길기만 한 코로나19의 몽환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핑계거리를 찾아 한낮의 낯선 숲들을 배회했을 것이다. 6년여의 봄마다 팽목항에서 금남로까지 그리고 광화문까지 거리를 유영하던 혼불들 말이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비명횡사하기 전 날에도 아마 한해륙 어느 숲마을과 갯마을 빈집에서는 꼬리 길고 혹은 두루뭉술한 혼불들이 떼거리로 날아올라 남녘의 바다를 밝혔을지 모른다. 이들 혼불이 촛불이 되고 횃불이 되어 급기야는 정권도 바꾸고 시대도 바꾸지 않았나. 세월, 참으로 무상하다. 지난 한 세기 엘리엇을 인용하며 소환하던 4월의 아픔들이 어찌 세월호뿐이랴만, 그리스 로마신화, 우파니샤드,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 아니 살해자이자 가해자였던 숲속의 왕이 은유하는 것들,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저 유명한 '황금가지'의 단순한 번안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서구문명의 상실감과 성찰 보다는, 시인의 각별한 친구였다던 수사자(水死者) 베르드날에 대한 조사(弔詞)가 오히려 잔인한 달 4월에 대한 인간적인 표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페니키아의 전설적인 뱃사람 플레바스처럼 우리의 친구들도 한때는 그대만큼 키가 크고 예쁘기만 한 이들이었음을.

베르드날과 수사자들을 위한 조사(弔詞), 들뢰즈의 노래하는 동굴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1년 전 어느 4월 나는 이 지면을 통해 내 어린 날의 가위눌린 꿈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무명심지를 타고 오르던 초꼬지의 희미한 불빛들이 아마도 서너 살이었을 내게 준 영감들을 한 세기 동안 인용해온 엘리엇의 시들에 비유할 수 있을까. 카오스의 동굴이었고 들뢰즈와 가타리의 노래하는 동굴, 리토르넬로였다. "어둠 속에 한 아이가 있다. 무섭기는 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음을 달래보려 한다. 아이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걷다가 서기를 반복한다. 길을 잃고 헤매고는 있지만 어떻게든 몸을 숨길 곳을 찾거나 막연히 나지막한 노래를 의지 삼아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간다. 모름지기 이러한 노래는 안정되고 고요한 중심의 스케치로서 카오스의 한가운데서 안정과 고요함을 가져다준다. 아이는 노래를 부르는 동시에 어딘가로 도약하거나 걸음걸이를 잰걸음으로 했다가 느린 걸음으로 바꾸거나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노래 자체가 이미 하나의 도약이다. 노래는 카오스 속에서 날아올라 다시 카오스 한가운데서 질서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노래는 언제 흩어져버릴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기도 하다. 이처럼 아리아드네는 언제나 한 가지 음색을 울려 퍼뜨리고 있다. 오르페우스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문장을 인용했던 것은 영토적인 배치물 리토르넬로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35만 년 전 아타푸에르카 동굴의 고고 유물들이 주는 숭고함이랄까. 2,000개 넘는 해골의 뼈들로부터 학자들이 읽어낸 것은 흑사병과 전염병 같은 집단적인 죽음과 장례의식, 혹은 조사(弔詞)와 만가(輓歌)의 흔적일 뿐만 아니라 부활의 동굴에 대한 암시이기도 했다. 이 영토의 재구성, 노래하는 동굴은 수의를 밀치고 일어서는 나사로의 방에 다름 아니다. 내 유년의 꿈을 현몽으로 소환하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막동 여울굴 개양할미의 비유

나는 지난해부터 월간 '기독교사상'에 '기독교와 한국 전통문화의 화해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연재를 해오고 있다. 기독교를 소재삼은 것이긴 하지만 재생과 거듭남 혹은 부활에 대한 생각들의 갈무리다. 어두운 동굴의 노래들이 사실은 산고와 탄생의 은유임을 모르는 이 없으리. 잔인한 4월을 무망하게 보내기 전에 여울굴에서 부유하는 돌배까지, 내 즐겨 연재하는 동굴의 이야기들을 소개해둬야겠다. 전북 부안 대막골 아래편 해안으로 낭떠러지가 있다. 여울굴이라 한다. 이곳에서 개양할미가 나와 바다를 열고 풍랑과 깊이를 조정하여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하거나 풍어를 관장하였다. 부안 죽막동(竹幕洞) 개양할미 설화다. 다른 버전도 있다. 서해를 다스리는 여해신(女海神)이 그의 딸 여덟을 데리고 와서 전국 각도에 시집보내고 자신은 서해 바다를 관장하였다. 앞의 것은 탄생설이고 뒤의 것은 도래설(渡來說)이다. 나는 지난 2007년 이 설화를 바탕으로 「해양문화의 프랙탈, 죽막동 수성당 포지셔닝」(도서문화 제30집)이라는 논문을 쓴 바 있다. 개양할미의 거인적 위상은 설화의 서사구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개양할미가 당굴에서 탄생했다(탄생설). 혹은 딸 여덟을 데리고 들어왔다(도래설). 딸 여덟 혹은 일곱을 낳았다. 딸 여덟을 팔도(내륙)에 보냈다. 혹은 딸 일곱을 칠산 바다에 보내서 일곱 섬을 관리하게 하고 막내딸과 살았다. 또는 부안 앞바다에 있는 각지의 섬으로 보내서 관리하게 하였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당굴'이라고도 하고 '여울굴'이라고도 하는 대막골 아래편 낭떠러지다. 나는 이를 여음석(女陰石) 혹은 여음굴(女陰窟)과 관련하여 해석했다. 수성당이 위치한 북편으로 양 갈래의 곶이 마치 가랑이를 벌린 듯한 형국이요, 바닷물이 자궁으로 들어와 거품을 내는 지형이기 때문이다. 전통 풍수학에서도 이런 유형의 땅을 명혈(名穴)이라 한다. 땅에 대한 인격화, 여성의 생산성, 재화와 복락에 대한 욕망들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는 관념들이자 설화적 장치들이다. 여성의 음부와 자궁을 성적으로 말하면 음란한 요설이라고 폄하하다가도 풍수를 대입해 말하면 음덕(蔭德)의 충만으로 칭송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한 3대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는 구례의 운조루는 남쪽으로 연못을 파서 경관을 완성했다. 이를 비보(裨補)라 한다. 약한 기운을 보완한다는 의미다. 길지(吉地)에 대한 관념과 풍경에 대한 욕망들이 수미상관하고 있다. 개양할미가 당굴에서 나온 것이나 여덟 딸을 낳은 것은 탄생이라는 사건의 중복이다. 여음굴이라는 공간 자체가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장치다. 이와 비슷한 풍경이 한국 관음신앙의 성지라는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등 단군신화에서부터 풍수설화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산재해 있다.

유동(流動)하는 동굴과 부유하는 돌배(石船)

동굴의 은유는 때때로 전혀 다른 요소들이 차용되기도 한다. 건국신화뿐만 아니라 마을의 기원과 관련된 설화들도 다양한 버전으로 확장되어 나타난다. 전남 영광 안마도의 당신화(堂神話)도 그 하나다. 안마도에 신씨 할머니가 살았다. 꿈에 한 장수가 현몽하였다. "나는 당나라 장수인데 한 번도 전쟁터에 출전하지 못하여 이곳 북쪽 산 너머 선창까지 왔다. 나를 이곳 산봉우리에 묻고 매년 설날에 매굿을 하여 제사를 지내 달라." 실제 당너머라는 바닷가에 가보니 궤짝 하나가 밀려와 있었다. 궤짝을 열어보니 1m 이상 되는 긴 머리털과 중국 화폐가 들어 있는 큰 주머니, 철마(쇠로 만든 말) 세 마리, 옷, 당제의 의례절차가 기록되어 있는 책이 들어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큰당에 모시고 항아리를 묻어 내용물을 넣어두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것은 마을의 기원과도 관련 있지만 정초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일종의 생산의례다. 이 유형을 해안표착형 설화라고 한다. 주로 돌배(石船)의 표착이나 궤짝의 표류, 달비(가지런히 모아놓은 머리카락) 등의 생산성(여성성) 화소는 물론 버려진 영웅, 보호하는 동물 등의 역경퇴치 서사를 갖고 있다. 전남 영암의 왕인박사 탄생설화나 법성포 마라난타 도착설화, 해남 미황사 창건설화 등 셀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변이된 이야기여도 결국 여성의 생산성, 자궁의 은유로 수렴된다. 내가 이를 유동(流動)하는 동굴, 부유(浮游)하는 석선(石船)이라고 말해온 이유다. 궤짝이 자궁으로 수렴된다는 점을 이해하거나 동의할 수 있다면 내가 즐겨 말하는 탯줄코드로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 겟세마네 동산의 동굴무덤과 버려진 모세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수의 부활사건이 상징하듯 동굴의 은유는 깊고도 넓다. 혹자들이 프레이저의 언술들, 예컨대 문화권별로 양상은 달리하지만 그 의미맥락은 같다는 주장들에 대해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들 하지만, 나는 종국에도 인류가 공유하는 이른바 여울굴의 메타포를, 그 신봉을 철회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일반이 배타와 배척 혹은 구분과 격리들을 통해 자기정체를 주장해온 오류를 수정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새삼 생각해보니 잔인한 4월이 가기 전, 무망한 시간들 사이로 동굴의 노래가 생각났던 이유를 알겠다. 서둘러 팽목항에 다녀와야겠다.

남도인문학팁

오묘한 동굴 국동대혈

고구려시대의 제사유적 국동대혈(國東大穴), 문자 그대로 나라의 동쪽에 있는 큰 동굴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 수신(隧神), 수혈(隧穴), 신혈(神穴) 등으로 불린다. 1983년에 발견되었는데 바로 남쪽에 압록강이 있어 북한이 건너다보이는 곳이다. 중국 지안(集安)현에 있는 국내성에서 동쪽으로 17Km 거리의 산 중턱이다. 내가 갔을 때는 계단 등이 설치되어 오르기 편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암석동굴이고 천장이 궁형이라 하늘과 통한다고 해서 통천동(通天洞)이라 한다. 동남쪽 입구에 제사를 모셨을 만한 넓은 바위가 있다. 통상 이 국동대혈을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을 모셨던 제사유적으로 해석한다. 유화는 주몽 탄생신화로 연결된다. 유화가 어부의 그물에 걸려 동부여의 금와왕에게 갔는데 금와왕은 유화가 천자의 아내(妃)라는 것을 알고 별궁에 가둔다. 이때 햇빛이 몸을 비추어 임신하였다. 이윽고 왼쪽 겨드랑이에서 큰 알을 낳았다. 왕이 알을 버렸으나 말과 소들이 피해가고 새가 깃으로 품어주었다. 하는 수 없이 유화에게 돌려주었다. 마침내 한 사내아이가 알을 깨고 나왔다. 한 달이 지나 말을 하고 활과 화살을 주자 백발백중으로 파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름을 주몽(朱蒙)이라 하였다. 알에서 태어난다는 건국 난생신화는 주몽을 포함해 신라의 박혁거세, 탈해, 가야의 수로 등을 들 수 있다. 나는 유화의 국동대혈과 금와왕의 별궁(別宮)을 유사 설화소로 파악하고 있다. 햇볕을 받고 임신했다는 것은 하늘과 통하는 통천동 곧 국동대혈의 다른 버전이라는 뜻이다. 호랑이와 곰이 함께 살았다는 단군신화의 동굴과도 맥락이 같다. 이를 범과 곰 즉 음양론으로 풀어 동굴 안에서의 음양 교접으로 해석하거나 아예 음양오행으로 푸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동굴에서 사람으로 거듭난 곰이 여성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단군왕검을 낳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동굴을 자궁의 은유로 해석한다. 유화의 방(宮)이나 왼쪽 겨드랑이 또한 여음골, 여음곡 등으로 빈출하는 자궁의 유사 모티프다. 동굴(窟)이 구멍(穴)이고 이것이 자궁(子宮)으로 은유되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 남성은 아홉 구멍이 있고 여성은 열 구멍이 있다 한다. 남성이 소변과 생식을 요도(尿道)라는 똑같은 통로를 이용하는 반면 여성은 소변과 생식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아기집이 주된 역할인 자궁(子宮)은 오묘한 동굴이다.

사진2. 전북 부안 죽막동 여울굴-이윤선 촬영

전북부안 죽막동 수성당의 개양할미 신도-이윤선촬영

중국 동북 집안현 국내성 동쪽 국동대혈 전경-2015년 이윤선 촬영

중국 동북 집안현 국내성 동쪽 국동대혈 내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