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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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교육의 창>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때
양인자(동화작가)
  • 입력 : 2020. 03.01(일) 14:53
  • 편집에디터
양인자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어떤 책이 기억에 남는지 등 책에 관한 질문과 책 소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한다. 읽었던 책을 되짚어 이야기하다 보면 뒤엉켜 있던 생각도 정리가 되고 쓰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점검을 할 수가 있다. 새로운 책, 좋은 작품들을 끊임없이 읽어야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최근에 여러 자리에서 칭찬했던 작품은 허가람 동화작가의 '이웃집 마법사'와 피터 브라운이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 『와일드 로봇』이다.

'이웃집 마법사'에는 복사 마법을 잘 하는 물수제비가 복사 가게를 하고, 깨금발은 높이 뛰는 마법을 부려 공부만을 강조하는 교장선생님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은은한 보름달을 그릇에 담아 차를 마시게 하는 달맞이 마법사가 등장한다. 시처럼 짧고 경쾌한 문장도 좋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대상이 마법을 부린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은 뒤, 볼펜에 그려진 토끼도 달리 보였다. 늘 쓰던 것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며 반성도 했다. 좋은 소재를 가까이 두고도 먼 곳만 보았나 싶었다.

전복적 상상력은 '와일드 로봇'도 마찬가지다. 허리케인 때문에 바다를 지나던 화물선 한 척이 침몰했다. 가라앉은 배가 거친 파도에 밀려 섬에 닿았는데 나무 상자에는 신제품 로봇이 있었다. 다른 로봇은 모두 부서지고 한 개 남은 로봇만이 해안가로 떠 밀려가 모래톱에서 놀던 해달 눈에 띄어 구조 된다. 호기심 많은 해달이 우연히 로봇 머리 뒤에 달린 단추를 누르자 로봇이 부팅되었다. 활성화된 로봇 이름은 로즈였다. 로즈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바위를 기어오르고 동물의 언어를 익히고 새끼 기러기의 어미 노릇까지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로봇은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가족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간 영화나 다른 매체에서 다루어졌던 로봇은 사람을 대신할 특별한 능력이 있는 존재였지만 이 작품에서는 달랐다. 감정이 없는 기계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보여주었다. 마치 갓난아이가 차분차분 세상을 배워가듯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로봇에 대한 고정 관념도 깨졌다.

신선했던 두 작품은 또 연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진다는 사전적 정의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딱딱하고 권위주의적인 교장선생님을 반성하게 하는 마법사들의 연대와 로즈를 찾아 나선 새로운 로봇의 공격에 그 동안 들과 산에서 만나 정이 들었던 모든 생명체가 로즈를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마법사들의 힘이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힘을 발휘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로봇을 도와준 동 · 식물들도 없는 능력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었다. 늘 하던 대로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다만 다 같이 마음을 모으고 집중했을 뿐이었다.

우리 세상사도 마찬가지다. 특출한 몇 사람의 힘만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다수 덕분에 유지된다. 힘이 강한 이는 굳이 연대할 필요가 없다. 평범한 작은 힘들이 모여 불합리한 제도를 바꿔내고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나라를 구한 역사도 있었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하루하루가 급박하고 절박한 요즘이다. 뉴스 보기가 겁이 날 정도로 수시로 양상이 달라지고 정해진 답도 없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물러설 수 없다. 지난 시절 서로를 배려하고 의지를 모았던, 우리가 걸어왔던 발자취 속에서 지혜를 가져오는 한편 편견과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한다. 변주와 비틀어보기 등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보다 새롭게 보일 것이다. 결국 우리가 읽었던 책 속에서, 살아왔던 과정 속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