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0> 요르단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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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0> 요르단 암만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20. 02.13(목) 16:35
  • 편집에디터

20-1. 시타델 남쪽에서 바라본 암만 전경. 암만 시내가 발아래에 있다.

1. 냄새

모 사진작가가 말했다. 공항마다 독특한 냄새가 있지만 공항 건물을 빠져나와 담배 한 대 피우면 담배 향이 그 모든 냄새를 덮어버린다고. 요르단 퀸 알리아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냄새가 아니라 소리 때문이다.

클랙슨 누르는 소리, 노점상 호객소리 등 소리라는 소리로 가득 찼던 이집트와는 달리 요르단은 평화로웠다. 2시간 30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을 뿐인데… 조용할수록 카이로 도로가 그리웠다. 그곳 사람들까지도.

늦은 오후 암만(Amman)에 있는 올드타운과 뉴타운을 돌아다녔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데려다주었던 우버 택시 기사 아멘이 시간을 내주었다. 아메리카 대학에 다닌다는 그는 뉴타운을 소개할 때 흡족하게 웃었다. 그의 아파트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세련된 뉴타운보다는 비교적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는 오래된 건물과 시장이 있는 올드타운 거리에 더 끌렸다. 숙소는 올드타운에 있었다.

외로워지지 않으려면 새로운 공간과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사진작가는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시간에 낯선 공간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그 정도로 나는 프로가 아니다. 일단은 숙소 근처에 있는 괜찮은 카페를 찾아야 한다. 내 흔적을 차곡차곡 쌓을 곳. 시샤(Shisha)와 터키 커피를 마시면서 긴장을 풀 곳. 간혹 노트북을 켜고 작업도 할 수 있는 곳. 여행지이면서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을 만한 장소가 필요했다.

그곳을 아지트 삼아 암만에 있는 유적지를 걸어서 둘러볼 참이다. 그런 다음 차를 렌트할 계획이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는 곳이다. 우버 택시를 불러 장거리를 뛸 때마다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요금이 비싸다. 무엇보다도 이집트의 미친 도로와 달리 얌전하다. 운전할 만하다. 장소가 바뀌면 사람도 자연스럽게 바뀌니 낯섦에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2. 요르단

요르단 여행을 계획한 것은 2017년 겨울 부다페스트에서 만났던 이스라엘 청년 모어 때문이다. 모어는 이스라엘을 적극 추천했다. 이스라엘에 오려면 다른 중동국가를 방문해서는 안 된단다. 유일하게 요르단과 이집트만 괜찮단다. 반대로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요르단과 이집트를 제외한 중동 국가에 가면 입국 금지이다. 그만큼 중동과 이스라엘은 사이가 좋지 않다.

이집트에서 만났던 밀렌드 아버지는 이스라엘 자체를 모른다. 팔레스타인이라고 말해야 알아듣는다. 이라크 출신 이즈마엘도 앞으로 만나게 될 시리아 출신 약사 J도, 그리고 아멘도…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말했다. 그곳을 여행하는 나를 걱정했다.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야. 단지 여행자일 뿐이지. 어떤 선입견도 가지지 않으려고 해."

이렇게 해서 오게 된 요르단. 이집트도 그렇지만 요르단도 의외로 둘러볼 곳이 많다. 하지만 다른 아랍 국가에 비해 물가가 턱 없이 높다. 관광지 입장료는 차별적으로 받는다. 예를 들어 페트라(Petra)의 경우, 현지인 입장료가 1디나르(1디나르는 1,700원으로 계산하면 된다)이지만 외국인은 50디나르(85,000원 정도)이다. 처음에는 그곳까지 우버 택시를 이용했다. 150디나르 달라는 것을 130디나르로 조율했다.

음식 값 등은 현지인이나 외국인이나 동등하게 받는다. 싼 길거리 음식도 있지만 웬만한 식당에서 한 끼 식사라도 하려면 만 원 정도는 우습게 내야한다. 현지인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더 클 것이다.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아 농수산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수입품이다. 그래서인지 빈부격차가 심하다.

관광수입은 높다. GDP의 8%~10%를 차지한다. 서비스업도 요르단 경제에서 80%나 될 만큼 비중이 크다. 기독교 유적지가 많아서 순례지로 각광받는다. 기후도 쾌적하다. 중동 재벌들의 별장이 많아 세금도 쏠쏠하게 걷힌다. 주변국인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산유국인데 비해 요르단은 석유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아쉬울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나는 숙소 근처에 있는 허름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카페를 찾아냈다. 광고용 전단지가 붙어있는 골목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카페 맞은편에는 서점이 있는데 서점 종업원이 곧잘 한국어를 한다. 방탄소년단 인기가 한몫했으리라. 이집트 출신인 서점 주인이 카페 주인이다.

오늘도 나는 카페에서 워터 멜론과 민트 향이 나는 시샤를 주문한다. 그리고는 암만 시내 유적지를 살펴본다.

3. 요르단 수도 암만

요르단의 수도 암만은 로마처럼 7개의 언덕을 기반으로 생겨난 도시이다. 지금은 20개의 언덕이 있다. 언덕을 잇는 가파른 계단이 많다. 암만 도착한 다음 날부터 시내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로마 원형 극장인 로만 앰피시어터(Amphitheater)를 둘러보고는 시타델(Citadel)로 향했다.

시타델에는 로마 시대에 건설된 헤라클레스 신전과 8세기 우마이야(Umayyad) 왕조 시대에 건설된 궁전이 있다. 우마이야 궁전(Umayyad Palace)은 우마이야 왕조의 통치시기에 총독이 거주했던 곳이다. 720년에 건설되었지만 749년에 지진으로 파괴되었다(아직까지 복원되지 않았다). 가장 높은 언덕에 지어진 궁전이라 뜰에 서 있으면 암만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태양이 세 개 정도나 될 것 같은 한낮의 눈부심. 높은 지형이라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나무 구경하기가 힘들다. 그래서인지 해가 지면 시장 거리는 북적거린다. 어스름이 끼면 나도 산책 겸 올드타운 거리로 나선다. 상점 바깥에 내놓은 그들의 전통 옷에 감탄하다가는 빅 사이즈 마네킹 앞에서는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덩치 큰 인형 옷매무새가 심상치 않다. 청바지 지퍼가 내려가 있다. 모스크 주변 시장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팜나무 열매를 잔뜩 사온 적도 있다. 사탕수수 대를 갈아서 즙을 내서 마시는 '슈가낑'의 달콤함에 매료되었다. 지나갈 때마다 사서 마셨다. 가성비 뛰어난 양꼬치 집을 찾아낸 것은 행운이었다. 하루에 한 번 그곳에 갔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700km 순례길을 한 달 정도 걸은 뒤 이집트를 거쳐 요르단으로 왔던 나는 옷이 없었다. 청바지와 수영복을 샀다. 기장이 긴 청바지를 단골 카페 근처 수선집에 맡겼다.

낯선 곳이 점점 익숙해져 가던 시기 나는 남자 두 명을 만나게 된다. 한 명은 디스코팡팡처럼 엉뚱했다면 다른 한 명은 미스터리 극장에서 내가 도망자 역할을 맡아야 할 정도로 썩 유쾌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만 만날 수는 없는 것이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20-2. 로마 원형 극장인 로만 앰피시어터(Amphitheater).

20-3. 뉴타운.

20-4. 과일가게가 있는 올드타운.

20-5. 사탕수수 대를 갈아서 즙을 내는 음료 '슈가낑'을 파는 가게.

20-6. 책을 파는 노인이 있는 올드타운.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