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한의 동시대 미술 수첩>동시대미술의 눈으로 조각과 공예의 관계에 대해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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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한의 동시대미술 수첩
장민한의 동시대 미술 수첩>동시대미술의 눈으로 조각과 공예의 관계에 대해 논하다.
장민한 (조선대학교, 미학)
  • 입력 : 2019. 11.05(화) 15:56
  • 편집에디터

김범, 종이로 포장된 것, 2016, 일상사물 목재, 종이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동시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14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펼치는 기획전시 <공작인: 현대조각과 공예 사이>(2019년 9월 5일 ~ 2020년 2월 23일)이 진행되고 있다. 기획 취지를 살펴보면 수공예 기법이나 재료를 사용한 조각, 설치작업을 통하여 다양한 사회적 이슈나 특정한 역사의식 등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미술이 점점 개념적이고 비물질화 되는 경향이 강한 오늘날 미술계에서도 공예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장인적 완성도와 특유의 전통적 특성이 페미니즘, 지역적 특수성, 소수자의 권익 등 여러 사회문제를 주장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로서 인간(공작인, Homo Faber)이 수행하는 두 영역의 작업, 즉 조각과 공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하면서 동시대미술이 지닌 다양성과 특수성을 이해해보자는 취지로 읽혀진다.

이번 글에서는 미술과 공예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서구의 '예술' 패러다임(fine art paradigm)과 그 패러다임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이 패러다임의 특성을 알게 된다면 미술과 공예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그리고 더 나아가서 수작업이 지닌 숙련성이 동시대미술 소통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조각 작업과 공예 작업이 예술로서 위계적인 차이가 없다. 조각 장르 안에서 훌륭한 조각과 그렇지 못한 조각을 구별할 수 있으나, 조각 장르 자체가 공예 장르보다 더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 생각이지 옛날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는 르네상스 이래로 20세기 중엽 모더니즘 시기에 이르기까지 600년간 '예술'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었다.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서구에서는 르네상스 시기부터 실용적인 물건에 장식적 가치를 부가하려는 '공예'와 예술로서 '조각'은 전혀 다른 종류의 활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공예는 실용적인 목적에 장식을 부과하는 활동인 것에 반해, 조각은 '미', 즉 진리를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미'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여겨졌다. 조각, 회화를 포함한 미술은 '진리의 은유'라고 여긴 '미'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활동이고, 이러한 점에서 미술은 진리를 추구하여 개념적으로 보여주는 과학에 버금가는 훌륭한 활동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미술은 실용적인 기술에 입각한 공예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활동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 시기에 조각가나 화가에게 공예가와 동일한 종류의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면 그들은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예술' 패러다임은 20세기 모더니즘 시기까지 지속된다. 조각을 포함한 이 시기의 미술은 자연의 이상적인 모방이라는 전통적 재현 미술의 목표를 벗어났지만, 여전히 미술의 고유한 목표가 따로 있다고 믿고 있었다. 모더니즘 작가들은 자신의 매체로 자신이 생각하는 미술만의 고유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이 시기 미술가들은 그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 일치하지 않았으나, 최소한 공예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믿음은 여전했다. 모더니즘 미술가들은 자신의 미학에 따라 미술의 고유한 가치를 미적 형식, 독자적인 양식 창안, 정서의 표현, 특정 리얼리티의 모방 등 각각 다양하게 설명했지만, 여전히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예술적 성질이 있고 그것을 찾아서 화폭에 감각적으로 옮겨놓는 일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공예는 여전히 실용적인 목적을 지닌 도구를 제작하는 기술로서 오로지 그 기능과 장식에 중점을 둔 제작 활동이라고 여겼다. '예술' 패러다임 시대에는 조각과 공예는 둘 다 손을 사용하여 제작하는 활동이지만 그 둘은 전혀 다른 종류의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술과 공예의 구분 근거가 된 '예술' 패러다임은 1960년대에 종말을 고한다. '예술'로서 이미지 작업과 '기술'로서 이미지 작업을 구분하는 시대의 종말을 뜻한다. 60년대 이전까지 '예술' 패러다임은 예술은 언제나 눈으로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고, 이러한 지각적 성질이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보증해준다는 믿음에서 출발하였다. 그런데 60년대 미니멀리즘, 팝아트 등 일상 용품들과 눈으로 구별할 수 없는 미술작품이 출현하면서, 미술작품의 지각적 성질이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하는 기준이라는 '예술' 패러다임은 종말을 맞이한다. 왜냐하면 지각적 형태가 동일한 한 쌍의 대상이 있다고 할 때, 하나는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일상사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다른 하나는 전자의 예술작품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지닌 예술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 패러다임의 종말 이후의 미술가는 진정한 미적 가치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목표를 위해 어떤 양식으로 작업할 것인지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 미술 장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각이든 공예든 자신의 성취 목표가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려고 사용한 매체와 양식이 적절했는지의 문제가 핵심 문제로 부상한다.

'예술' 패러다임이 종말을 고한 이후 생산된 미술, 다시 말하면 동시대미술은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미술의 가치를 추구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소통하려고 했는지가 중요하다. 미술 장르에 기초하여 작품의 가치를 평가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용된 매체나 기법이 그 목표를 이루는 데 효과적이냐의 문제이다. 만약 <공작인: 현대조각과 공예사이>전에 출품된 작품들이 수공적인 기법과 재료를 사용했다면, 그 작품들은 각각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그 기법과 재료가 효과적인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손작업, 혹은 기계적 작업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수공적인 재료나 기법은 작업의 숙련성과 지역적 특성을 보여주는 매개체가 되고, 이것은 그 지역 삶의 방식과 감수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이 전시 작품이 사용한 재료와 기법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전시의 장점을 꼽자면 손작업에서 보여준 숙련성과 매체의 다양성이 동시대미술의 소통에 효과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미술가의 수공 작업은 디지털 작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 하고 있다. 각각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장인적 기질이 해당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강한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한 가지 지적해야할 점이 있다. 전시 부제를 '현대조각과 공예 사이'라고 붙여놓음으로써 조각과 공예의 차이점에 주목하라는 전시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 '모더니즘 조각'과 '동시대 조각'의 차이점에 익숙하지 못한 감상자들은 전시 감상 내내 조각과 공예의 차이점을 염두에 두게 될 것이다. 이런 태도가 작품의 주제나 그 표현 방식에 집중하지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14명의 작가를 주제별로 나누고, 다양한 수작업 방식이 각 작품의 주제를 강화시키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장민한 (조선대학교,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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