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청어람(靑於藍), 득음을 닮은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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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청어람(靑於藍), 득음을 닮은 색
  • 입력 : 2019. 06.12(수) 14:49
  • 편집에디터

정관채(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기능보유자)

수의(壽衣)에서 배내옷으로, 쪽빛의 매혹

"한 인간의 존재가 그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점진적일 수도 있다. 저 자신 속에 너무나도 깊이 꼭꼭 파묻혀 있어서 도무지 새벽빛이 찾아들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어린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문득 수의(壽衣)를 밀어붙이며 나사로처럼 일어서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의외라는 듯 깜짝 놀란다. 그런데 사실은 그 수의란 다름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배내옷이었던 것이다." 내가 즐겨 인용하는 장그르니에의 섬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나도 그랬다. 홰치는 닭소리가 해무 자욱한 미명을 걷어내듯, 문득 다시 태어나는 감정에 사로잡히던 새벽의 경험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오래, 가난한 살림이라 물려주고 받을 만한 것도 없었다. 아마도 옛 짐들을 정리하던 그런 때였을 것이다. 오래된 궤짝에서 헤진 이불보가 나왔다. 어머니가 손수 베틀에 짜신 석새 무명베였다. 성글고 굵은 올들의 세월을 어찌 다 읽을 수 있으랴. 얽히고설킨 무명의 직조가 주는 영감은 한 세기를 울린 어떤 시어에도 뒤지지 않으리라. 당장 쪽물을 들였다. 헤지고 닳아진 부분들 자르고 곁달아 두루마기 하나 빠듯이 만들 수 있었다. 유언을 해두었다. 내 죽거들랑 이 옷을 입혀다오. 옛 사람들이 살아생전 수의를 만들어 두듯 나 또한 습의(襲衣)를 만들었던 셈이다. 그뿐일까? 「임원경제지」에서 언급한 두록색(豆綠色)의 쪽물이 사실은 아황색의 황벽(黃蘗)물 들인 배내옷에서 왔음을 지천명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입학시험을 치러 갈 때 교복 안쪽에 꿰매주시던 나의 배내옷. 아, 어머니! 내 안의 나사로는 어머니의 석새베를 입고서야 비로소 일어설 수 있었다.

남염(藍染)의 세계, 종횡의 시공간

"아, 그 모시의 쪽빛을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나는 한 마디밖에 모른다. 꿈결!" 조선 물집 한가 솜씨, 시인 김지하가 염색 명인 한광석의 쪽모시를 보고 쓴 글이다. 꿈결이라니! 내 어머니의 석새 무명을 말함 아니던가. 어찌 무명에만 그칠 것인가. 쪽빛의 황홀은 종으로 치달아 고대에 이르고 횡으로 치달아 세계에 이른다. 소박한 기억만으로도 무명에서 모시까지 씨줄과 날줄의 교직이 주는 영감이 크다. 때로는 성글고 때로는 섬세한 직조의 켜켜이 그리고 올올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 것인가. 우리말로 쪽물이라고 하고 한자말로는 남염이라 한다. 남색(藍色)은 푸른색의 총칭이지 쪽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쪽이 그 대표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인류가 기원전부터 상용해온 염색이다. 우리에게는 한, 중, 일의 염색이 알려져 있고 상호 영향관계를 받았다는 무수한 연구들도 있다. 신라시대 11인의 염관(染官)을 두고 홍전, 능색전, 소방전 등의 부서가 있었다니 색깔에 대한 역사적 관심들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생각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음양오행에 토대한 색의 배정이나 분별이 상용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 전통이라 호명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런 관념에 토대한다. 시간을 분절하고 공간을 분할하여 의미부여를 하는 이런 방식들은 중국이나 일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종횡으로 얽히고설킨 역사와 문명의 교직들이 무한하다. 다만 자연의 빛 혹은 하늘의 빛이라는 쪽빛에 대한 언설은 이런 관념들 속에서 성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결을 달리하는 측면들이 있다. 흔히 신록과 하늘에 비유한다. 자연에서 얻은 자연의 색깔이라는 뜻이다. 어디 자연뿐이겠는가. 꿈결보다 더 꿈결 같은 하늘 깊은 색이다. 끝 간 데 모를 우주로 향하는 궁극(窮極)의 색이요 흉중 깊숙하게 꽂히는 심연(深淵)의 색이다.

동아시아의 쪽물들이기와 우리나라의 쪽염색 복원

쪽풀(Polygomum tinctoria)은 여뀌과(科)에 속하는 1년생 생초다. 1미터까지 자란다. 우리나라의 쪽풀 재배는 한 시기 단절되었다가 장인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염색장 정관채에 의하면 목포대 박복규 교수에게서 쪽씨를 건네받아 복원에 이르게 되었다 한다. 염색장 고 윤병윤에 의하면 조일순 여사가 일본에서 쪽씨를 가지고 와 발아시키려 했지만 실패하고 본인에 의해 성공하게 되었다 한다. 우리나라가 쪽풀 재배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절되었다가 1950년대 이후 복원되었음을 알려주는 정보들이다. 중국에서는 요람, 숭람(대청), 유구람(산람), 목람(인도람) 등 4종의 쪽이 대표적이다. 숭람(대청)을 주로 사용한다. 소황옥 교수팀이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소수민족 중 특히 묘족의 쪽염을 주목하고 있다. 청색보다는 흑색에 가까운 남색을 내는 경향이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일본의 쪽염은 아마미오시마에 속하는 도쿠시마 주변에서 60~70%가 생산되고 홋카이도나 다른 지방에서 소수 생산된다. 쪽잎을 발효시켜 퇴비 상태로 만들어 사용하는 스쿠모라는 염료 만들기를 주목하고 있다.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은 유구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요람을 주로 사용한다. 인도를 포함한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인도람을 주로 사용한다. 유럽 및 미국에서는 숭람을 사용한다. 한, 중, 일에서 쪽을 염색하는 방법에는 생잎을 사용하는 방법, 쪽풀을 발효시켜 사용하는 방법, 쪽풀을 삶아 숙람으로 만드는 방법 등이 있다. 천연쪽은 온도에 민감하고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야하는 단점이 있지만 견뢰도가 우수하고 향균, 항돌연변이, 항암의 기능을 갖고 있다. 단일색소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 화학염료 염색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색상을 지닌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박지희, 소황옥이 쓴 '한중일 남염의 비교연구(2004, 한복문화)'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꽃물 만들기, 굴껍질과 꼬막가루에 잿물을 넣어

국가지정 염색장 정관채가 말하는 나주지역 쪽염색 과정을 참고한다. 팔월 초순경 쪽이 60~70cm 정도 자랐을 때 쪽을 베어 항아리에 넣고 삭힌다. 이틀 후 쪽대를 걷어내고 쪽물에 굴껍질을 구워서 만든 석회를 넣는다. 색소 앙금이 가라앉으면서 침전쪽이 생긴다. 항아리의 윗물을 버리고 바닥에 침전된 쪽앙금을 퍼낸다. 고체 상태가 되도록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다. 쪽앙금에 잿물을 넣어 7~10일 동안 발효시킨다. 색소와 석회가 분리되면서 거품이 생긴다. 이 과정을 '꽃물 만들기'라 한다. 이때가 되어야 비로소 염료 물감으로 사용할 수 있다. 천을 염료에 진득하게 담가 물을 들이고 이내 꺼낸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리기를 반복한다. 반복적으로 염색하여 짙은 색을 얻는다. 처음 꽃물에 염색하면 연녹색이었다가 공기 중에 펴면 녹색·파랑으로 변한다. 가장 진하게 염색하려면 20회까지 반복하지만 보통은 8회 정도로 물들인다. 생잎을 항아리에 넣어 이틀 정도 숙성시키는 것이나 쪽앙금에 굴껍질을 넣고 잿물을 넣어 한 순(旬) 이상을 발효시켜야만 염색 쪽물이 나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보성지역에서는 일주일 정도 쪽물을 우려내 꼬막껍질을 넣어 염료를 만든다. 나주지역에서는 하루정도 쪽물을 우려내 굴껍질 가루를 넣어 발효시킨다. 염색장 정관채처럼 여기에 콩대를 태워서 만든 잿물을 넣어 후숙시키는 방식이 나주지역의 전통으로 알려져 있다. 잿물과 석회가루 외에 막걸리를 사용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지역에 따라 환경에 따라 매염제(媒染劑)의 활용이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 성악설의 순자(荀子)가 가리킨 달

청어람(靑於藍), 쪽풀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다.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낫다는 비유로 순자가 한 말이다. 푸른빛에서 나왔는데 어찌 그 푸름보다 더 푸를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 매염(媒染)을 했기 때문이다. 하늘빛 쏟아져 바다 푸르듯, 오뉴월의 신록 쏟아져 산천 푸르듯 자연의 빛깔 그대로만 담아낸 것이 아니다. 올올이 석새베 짜던 어머니의 마음을 매염하고 나주에서 보성으로 중국에서 일본으로 시공의 결들을 중매하니 씨줄날줄의 궁극과 심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순자(荀子)는 왜 성악설을 주장했을까? 그의 손가락이 아니라 그가 가리킨 달을 봐야할 필요가 있다. 순자 언설의 핵심은 지극한 교육과 스승에 있다. 사람이 악하다는 것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반어법이기 때문이다. 교육과 스승을 그 중심에 두었으면서 왜 청출어람을 말하였나. 교육이나 스승이 불가피하게 내포한 성악(性惡)의 맥락을 염두에 둔 까닭이다. 본디 악한 것이 사람이라면 어찌 해야 하는가. 악함을 넘어서는 끊임없는 교육이 답일 수밖에 없다. 공자 또한 이르기를, 인덕을 행하는 데 비록 스승일지라도 양보하지 않는다 했다(論語, 衛靈公, "當仁, 不讓於師"). 당인(當仁)이란 어짊으로 자기의 책임을 삼는 것이다. 마땅히 용맹하게 스승을 넘어서야 비로소 인에 이를 수 있다. 쪽풀이 하나의 노래라면, 나는 쪽염색을 판소리의 득음에 비유하곤 한다. 지극한 성음을 얻기 위해 폭포와 동굴의 수련을 마다치 않던 명창들의 수련을 상고한다. 지극한 소리라고 다를까 그윽한 색이라고 다를까. 오래 삭혀야 궁극에 이르는 쪽빛과 판소리처럼 날마다 나를 채근하여 스스로를 삭힐 이유를 성찰한다. 스승에게서 받은 푸른색을 더 푸르게 가꾸는 것이 제자 된 자들의 도리다.

남도인문학팁

나주지역 쪽염색장의 역사

나주지역 정관채와 고 윤병윤이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으로 지정된 바 있다. 1959년 나주에서 태어난 정관채는 어머니 최정님으로부터 쪽염색을 전수받았다. 스승 박복규에게서 쪽씨를 건네받아 쪽재배도 시작했다. 나주영산포중학교에 재직 중이며 국립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로 출강했다. 1996년 전통천연염색전시회를 열고, 이듬해 한국전통천연염색전시회를 열었다. 일본 큐슈염색연구소 초청강사 등 국제천연염색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2001년 문화재 지정 당시 최연소(42세)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5년에는 남북교류 명품전시회, 2007년에는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대한민국 명품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쪽물염색 보존과 진흥에 매진하고 있다. 고 윤병윤(1921~2010)은 나주 문평면 명하마을에서 쪽염색을 생업으로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13세부터 쪽염을 시작하여 평생을 바쳤다. 나주 영산강에는 전통적으로 쪽을 재배하고 쪽물들이기를 생업으로 하는 분들이 많았다. 증조부(윤치문)에서 조부(윤태홍), 부친(윤주식)의 맥을 이어왔다. 1994년에는 전승공예대전에 입상하고 2001년에는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10년 노환으로 별세한 후 아들 윤대중과 며느리가 그 맥을 이어오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전통들 기반으로 나주시 다시면 회진면에 나주천연염색문화관이 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관채(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기능보유자)

쪽씨 파종-토종 쪽(요람)

소석회 제조3-준비해둔 굴과 떡굴껍질을 황토가마에 삼태기로 담아 넣는다

소석회 제조-20여일 지나면 굴껍질이 부서져 분말이 된다

잿물 만들기-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염료 추출-쪽 담은지 1일째

염료 추출-쪽대를 들어내고 나머지를 체로 건져내기

니람 만들기-쪽 색소물을 석회에 부은 다음 독에 넣는다

니람 만들기-침전쪽을 따라 붓기

니람 만들기-저장해둔 침전쪽을 손으로 훑어본다

염료 발효, 꽃물 만들기4-쪽물짓기를 위해 하루 한 번씩 고무래로 돌려준다

염료 발효, 꽃물 만들기6-쪽물이 발효(환원)가 되면 수면이 인다

쪽빛 물들이기-모시를 연색 중색 진색으로 쪽물들여 빨랫줄에 널고 있는 모습

정관채 작품사진

정관채 작품사진

쪽빛 물들이기-쪽물들여 완성된 모시,삼베,명주,무명천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