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주력 전지공작대 영웅 스물일곱 나주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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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광복군 주력 전지공작대 영웅 스물일곱 나주 청년
2019 대역사의 해 전남일보 특별기획||금성산 시민공원 권총 든 동상, 나월환을 아십니까||좌우이념없는 아나키스트 부대… 훗날 광복군 편입||지대장 맹활약하다 변절자에 피살… 조명작업 시급
  • 입력 : 2019. 04.10(수) 19:20
  • 김정대 기자

9일 나주 경현동 한수제 소공원에 건립돼 있는 '나월환 장군 동상' 모습. 해당 동상은 지난 2006년 나월환 장군 추모 사업추진위원회가 세웠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일제치하에서 활동하던 여러 독립운동가들에게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인물들은 김구·김원봉 등 거물들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무정부주의자로서 독립적인 항일무력투쟁 노선을 걷다 광복군에 합류, 군 편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나주 출신 독립운동가 나월환(1912~1942)이 대표적이다.

지난 9일 찾은 나주 경현동 한수제 소공원은 봄날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리는 가운데 벚꽃이 한철이었다.

말끔하게 정돈된 조경수 사이 조성된 너른 잔디밭에는 제복을 입고 오른손에 권총을 든 동상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2006년 건립된 나주 출신 독립운동가 나월환 장군의 동상이다.

동상을 받친 좌대에 적힌 '추모의 글'에는 나월환의 활약상이 간명하게 적혔다. 일본에 유학해 실력을 배양한 후 중국중앙군관학교 제8기로 입학, 1933년 소위로 임관해 군관학교와 헌병학교 교수로 근속하며 한·중 항일운동에 기여했다. 이후 중국군 중령으로 예편, 1939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전지공작대)를 결성했다고 적혔다.

나월환은 당대 대표적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무장세력의 한 계파를 이었던 인물이다. 인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으로 넘어가 유학했다. 당시 '흑도회' 등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천황 암살을 꾸미기도 했던 박열 등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무정부주의 사상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을 보면 그는 상당히 대담하고 용맹했던 인물로 묘사 돼 있다. 중국군에 몸담으며 군관학교 교수로 활동했던 전력이나, 1937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본국으로 압송되던 중 칭다오 부근 해상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탈출해 본대에 복귀한 일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나월환의 진가는 그가 이끌던 전지공작대가 훗날 임시정부 광복군의 주력 부대로 활약하게 된 것에 있다.

중국군 출신 군관과 아나키스트 등을 중심으로 1939년 충칭에서 결성된 전지공작대는 초창기 대원이 30여명에 불과했지만, 중국 산시·허난·화북 3성 일대에서 큰 전과를 올리며 모집된 병력이 100여명을 넘어섰다.

그동안 나월환과 전지공작대는 임시정부와는 상관 없이 독자성을 견지했다. 좌·우 이념에 휘말리지 않고 오로지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목적 삼은 무정부주의를 기조로 삼았던 까닭으로 보인다. 조선의용대 등 다른 계파의 무력세력으로부터 합류 회유를 받아오던 전지공작대는 1940년 임시정부가 광복군 창설을 선언하고 접근해 오면서, 결국 광복군 합류를 결정한다. 이듬해인 1941년 전지공작대는 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됐고, 나월환은 제5지대장이 됐다. 각종 공작과 초모(모집) 활동에 나선 제5지대는 광복군 내에서도 주력 부대로 꼽혔다.

신입 청년들을 훈련시켜 훗날 독립전쟁에 앞장 설 투사로 육성하는데 힘썼던 나월환은 1942년 3월1일 부대 내 변절자에 의해 피살됐다. 연구자들은 무정부주의를 앞세웠던 전지공작대가 광복군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홍길 전남대 교수는 "나월환은 광복군 지대장으로 활약한 부분으로 조명 받지만 그가 어떻게 해서 중국까지 건너가 항일운동에 나섰는지 등은 좀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당시 중국 등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은 해방 후 분단에 따른 이념갈등, 중국의 공산화 등으로 자유로운 연구가 어려워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배경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지역 출신 광복군도 40여명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앞으로 더 깊은 연구가 이뤄지면 조명받지 못한 인물들이 추가로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